- 장계 ‘부산파왜병장’ 토대
- 암남공원 해안산책로 등 찾아
- 장림포 앞 등 전초전 되새겨
- 166척 장사진으로 돌격
- 왜선 100여 척 격파장면 상상
- 자갈치 크루즈 운항 구간
- 상당 부분 조선수군 경로 겹쳐
- “대마도·거제도 저렇게 가깝나”
- 관광객들 선상에서 연신 감탄
- 부산, 여수·진주처럼 더 애정을
‘부산에서 왜적을 쳐부순 장계(釜山破倭兵狀)’, “삼가 적을 불태워 죽인 일로 아뢰나이다. 경상도 연해안의 왜적을 세 번 나가서 토벌한 후 가덕 서쪽으로 왜적의 흔적조차 끊어졌으나, 각 도에 가득 차 있던 왜적들이 날마다 내려오므로 장차 그 도망가는 때를 타서 바다와 육지에서 힘을 합쳐 공격하기 위하여 전라 좌·우도의 전선 74척과 협선 92척으로 전보다 배나 더 엄하게 정비하여….”
“그동안 전후로 4차례 출격하여 10번 맞붙어 싸워서 전부 승리하였으나, 장수와 군사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싸움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입니다.”(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제1권 411·418쪽) ‘실체’를 품은 문장은 허무하지 않다. 허무하지 않은 뒤라야, 문장에는 힘이 생긴다. 힘 있는 문장은 아름답다. 이순신 장군이 쓴 ‘부산파왜병장-부산에서 왜적을 쳐부순 장계’는 실체와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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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
1. 암남공원 해안산책로=지난 28일은 충무공 탄신일이었다. 부산에서는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으로 환산한 10월 5일이 부산 시민의 날) 이순신 함대의 ‘부산포해전’, 큰 승리를 새로이 진지하게 널리 기리고 알리자는 시민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마땅히 더 많은 시민이 접하고, 동참할 수 있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그 방법을 궁리하다 문득 부산 바다가 ‘부산포해전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부산포해전의 바다를 따라가 보자!” 하는 데도 생각이 미쳤다. “1592년과 지금은 형편이 크게 다르니 한계가 많겠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 관련 기록을 다시 들춰보고, 어디로 갈지 정하느라 마음이 바빴지만, 설렜다.
먼저 간 곳은 부산 서구 암남공원 해안산책로(사진 1)였다. 1592년 음력 8월 29일 닭이 울 때 가덕도를 출발한 이순신 함대는 장림포에서 왜적선을 깨트린다. 이튿날 9월 1일에도 가덕도 북쪽에서 출항해 다대포·서평포(사하구 구평동)·절영도(영도) 앞에서 왜군 배를 여러 척 깨 부순다. 그리고는 부산포 앞바다 쪽으로 접어든다. 이는 이순신 함대가 암남공원과 영도 사이 이 바닷길로 밀고 들어왔다는 뜻이다.
2. 천마산=암남공원에서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송도케이블카가 유유히 하늘을 횡단했다. 암남공원 해안산책로에서 떠오른 건 이순신 장군을 그린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의 이 대목이었다. “임진년 9월에는 부산포에서 싸웠다.…부산은 적의 교두보였으며 보급, 병참, 수송의 전진기지였다.…적선은 부수었으나 적병들을 없애지는 못했다. 그것들은 손에 닿지 않았다.…바다는 전투의 흔적을 신속히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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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왼쪽), 사진 3 |
‘바다는 전투의 흔적을 신속히 지웠다’는 문장에 동의했다. 이순신 함대의 진격로에 바짝 붙어 역사적 상상을 해본 건 좋았지만, 이곳에서는 함대의 전체 형세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암남공원에서 가까운 서구 천마산에 올라갔다. 천마산 전망 바위에 서니 ‘형세’를 상상할 수 있었다. 판옥선 전선 74척과 협선 92척이 천마산을 기준으로 서쪽 바다(사진 2)에서 동쪽 부산포 쪽(사진 3)으로 진입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여기서 ‘부산항 박사’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의 설명을 청해 들어보자.
3. ‘우암포’와 ‘초량해변’=“조선 수군은 초량목·용미산 해변(롯데백화점 광복점)·자갈치와 영도 대풍포(대평동) 일대를 포괄하는 초량해변에서 적정을 살폈으리라 봅니다.”(‘부산파왜병장’에는 부산포해전에 총력전으로 들어가기 직전 왜적의 큰 배 4척을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근처였을 것 같다.) 그는 “부산포는 지금의 자성대 쪽을 일컫지만, 부산포해전 때 일본 수군 주력 함대는 우암포에 주둔해 있었다”고 했다.
‘부산파왜병장’을 다시 보자. “그때 뒤에 있던 우리의 여러 배들은 승세를 타서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면서 장사진(長蛇陳·긴 뱀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의 진법)으로 돌진해 들어갔습니다.” 한산도해전에서 학익진을 펼쳐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 함대를 전멸시키고 전세를 일거에 뒤집은 이순신 함대는 여기서는 장사진을 선보인다. 격군이 노를 저어 전선을 기동하던 시대에 얼마나 훈련하고, 수군 전체의 전술 이해도가 얼마나 높았기에 이런 기동을 펼쳤을까. “왜적의 배들은 부산진성 동쪽에 있는 산에서 5리쯤 되는 언덕 밑 세 군데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큰 배, 중간 배, 작은 배 모두 합쳐 대략 470여 척쯤 되었는데, 왜적들은 우리의 위세를 바라보고는 겁을 먹고 감히 나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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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4(왼쪽), 사진 5 |
4. 자갈치 크루즈=이순신 함대는 하루 내내 싸워 적선 100여 척을 때려 부순 뒤 날이 저물자 배를 돌렸고 자정께 가덕도로 돌아왔다. 천마산에서는 우암포 쪽이 보였으므로 427년 전 그 전투 장면을 그려봤다. 부산포해전 때 조선 수군과 왜선이 바다에서 ‘직접 맞붙은’ 적은 없다는 점은 덧붙여둔다. ‘근거리 함포 사격전’이 이순신 함대의 주된 전투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차원’을 달리해서 보고 싶었다. 자갈치 크루즈를 탔다. 관광객을 싣고 하루 네 차례 자갈치~남항~송도 방면~태종대를 운항하는 자갈치 크루즈의 운항 구간은 상당 부분 부산포해전 때 이순신 함대가 밀고 들어온 경로와 겹친다. 부산포해전의 자취를 찾아 자갈치 크루즈를 탔던 지난 28일은 모처럼 시야가 트여 거제도(사진 4)와 대마도(사진 5)가 잘 보였다. 승객들은 연신 “대마도와 거제도가 저렇게 가깝냐”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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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 |
임진왜란 때 일본 선봉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가 출발한 곳은 대마도였고, 이순신 함대는 거제도 쪽에서 그들을 쳐부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부산으로 밀고 들어왔다. 부산은 그 여러 현장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다(사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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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7(왼쪽), 사진 8 |
5. 여수 이순신광장·국립진주박물관=내친김에 이순신 함대가 최초로 발진한 전라좌수영이 있던 전남 여수(사진 7)와 임진왜란에 특화된 국립진주박물관(사진 8)과 진주성에도 다녀왔다. 잘 조성된 여수의 이순신 광장은 시민과 관광객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진주성 안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정유재란에 관한 태도가 깊고 진지했다. 부산포해전 큰 승리의 기억이 선명하고 풍성한 부산이 좀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듭 생각해도, 부산포해전은 큰 승리였다. 한산도해전 이후 극도로 위축돼 조선 수군만 보면 왜적들이 무조건 도망가면서 경계하던 상황에서 적의 ‘안방’인 부산포로 짓찧고 들어가 적의 본거지를 박살냈다. 그 승리의 가치는 지극히 높다.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