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9> 무용수 권봉정

군무도 독무처럼 신들린 듯 추니 ‘수석’돼 있더라는 그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19 18:46:37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26년째 부산시립무용단원
- 어마어마한 입담으로
- 관객 홀리는 분위기 메이커

- 발등이 곧게 펴지지 않는 결함
- 다리 결점 극복하려는 노력 덕에
- 아름다운 자태와 춤선 갖게 돼

- 현대무용 전공자였던 그를
- 단숨에 전통춤에 빠져들게 한 건
- 기품 넘치는 엄옥자의 원향지무

1993년부터 부산시립무용단에서 활동 중인 베테랑 무용수 권봉정(48)을 만났다. 유쾌한 인터뷰였다. 부산시립무용단의 춤극 ‘마당춤판’과 ‘춤 동화’에서 맛깔스러운 입담으로 관객을 일순에 웃기고 울리는 그녀답다. 미리 짠 것도 아닌데 현장 분위기에 척척 들어맞는 애드리브가 기가 막힌다. “사람들과 눈빛과 호흡을 나누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요. 관객이 무대로 들어오고, 제가 객석으로 나가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진행합니다. 박제된 공연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공연이죠.”

■밝고 유쾌한 무용수 수석 꿰차다

   
무용수 권봉정이 부산시민회관에서 인터뷰 중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다. 전민철 기자
말 잘하기로는 변호사라고 하는데 변호사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을 정도로 흥을 타고났나 보다. 즉흥적으로 쏟아지는 이야기에도 어쩌면 그처럼 재치 있게 응수할까 궁금했다. “글쎄. 제가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저는 좋아하는 책은 반복해서 읽습니다. 삼국지를 열 번 넘게 읽었는데 요즘 또 읽고 있어요. 카페나 음식점에 걸려 있는 짧은 시 구절도 마음에 들면 꼭 기억하려고 해요. 제가 느낀 재미나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으니까요. 그런 것들을 상황에 적절하게 응용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특유의 재치와 유머, 밝고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직장에서도 분위기 메이커다.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모인 시립무용단이다 보니 처음에는 주인공이나 좋은 배역을 맡지 못했다. “승진하기 전에는 군무를 췄어요. 군무를 해도 관객이 나만 쳐다볼 거라고 생각하고 진짜 열심히 했어요. 어떤 역할이든지 제 몫을 다하는 게 중요하죠. 그러다 보면 자기의 재주를 발산할 기회도 오고, 자신만의 춤을 출 수 있는 무대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가 평단원에서 수석단원으로 초고속 승급했던 기회는 2002년 예술단 정규 오디션이었다. 대개 전통춤 위주로 오디션 과제가 제시되는데, 그 해에는 아무런 제한 없이 5분짜리 춤을 추라고 했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춤을 추었더니 오히려 높은 점수가 나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했던가. 수석이 된 후에는 더욱더 열심히 춤을 췄고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늦은 무용 입문… 노력이 만든 결실

   
권봉정(왼쪽)과 인터뷰하는 모습.
무용에 입문한 때는 고등학교 시절로, 많이 늦은 시점이었다. 어릴 적부터 재능을 보였지만, 아버지가 공무원인 데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때문에 선뜻 무용을 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섯 남매라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말, 죽어도 무용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군대에 있던 큰오빠에게 눈물로 쓴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장남의 조언은 효과가 있었다. “변덕이 심해 곧 그만둘 터이니 시켜나 보라”는 큰오빠의 현실적인(?) 설득 덕분에 부모님의 승낙을 받았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몸은 이미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발을 쭉 뻗어 발등을 다리와 일직선으로 만드는 포인(point)이라는 기본 동작이 있는데 그게 안 됐어요. 처음엔 몸이 굳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포인이 안 되는 신체구조를 타고났더군요. 선생님은 무용을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재활원도 다니고 고주파 치료도 받으면서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장롱 밑에 발을 집어넣어 억지로 펴곤 했죠. 나중에는 무릎과 골반까지 나빠졌어요. 뼈가 부서지도록 애를 써도 남들만큼 다리가 길어 보이지도 않고, 차는 동작도 몇 배 더 힘껏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체를 더 예쁘게 표현하려고 애쓰게 되었죠.”

지난 3월 그는 부산시민회관에서 ‘원향지무(遠香之舞)’(원향은 영남춤의 대가인 엄옥자의 호)를 선보였다. 섬세하게 정제된 기교의 춤사위는 단연 아름답고 우아했다. 춤판의 흥은 간데없고 예인의 기품이 흘러넘친다. 남들보다 더 많은 연습, 다리의 결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남달리 아름다운 자태를 선물한 셈이다. 사실 현대무용 전공자인 그에게 전통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원향 선생의 춤은 그를 단숨에 매료시켰다. “엄 선생님 춤은 아름다움 그 자체예요. 흐트러지지 않는 호흡 속에 손가락 끝까지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표현됩니다. 배울수록 어렵고 부족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요.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닮아가고 싶습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오직 ‘춤꾼’

   
키가 조금만 더 컸다면 뮤지컬 배우가, 공부를 잘했다면 스포츠 기자가 되었을 것이라 한다.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판소리, 가야금도 배우고 싶다 한다. 실로 예술의 경지라 생각하는 아이돌 스타의 댄스도 배울 계획이란다. 인생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인 남편이 이제는 제발 몸을 돌보라 간곡히 당부할 때 ‘그러마’ 하고 답하면서도 내심 ‘더 열심히 춤춰야지’ 다짐했던 것을 지면에 밝혀도 될까. 어쩌면 무용수는 작품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천생 춤꾼인 그녀는 몸이 허락하는 한 오직 무용수로 남고자 한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오래 무대와 마당춤판을 지키리라 기대한다. 주변까지 덩달아 행복하게 만드는 신명과 갈수록 깊어지는 예인 정신이 그의 힘이다.

공연기획자·인제대 외래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2. 2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3. 3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4. 4[도청도설] 부캉이가 띄운 북항
  5. 5“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6. 6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7. 7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8. 8‘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9. 9영화숙·재생원 진실규명 공로 손석주 ‘민주시민상’
  10. 10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1. 1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2. 2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3. 3폭풍 SNS, 배우자 외부활동…총선운동 방불케 한 추석행보(종합)
  4. 4與 “민생 더 챙기라는 말 많아” 野 “대선 언제냐며 시민 분노”
  5. 5안보·사법·與 내홍…추석 이어 국감정국 달군다(종합)
  6. 6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 DMZ 사고 조사 지연…연휴 일파만파(종합)
  7. 7[2026 국감 브리핑] 김희정 "'대입 원서 접수번호로 경쟁률 유추 가능' 사실로 확인…정부 대책마련해야"
  8. 8연휴 강타한 우크라 포로 송환· DMZ 지뢰사고 늑장조사 논란
  9. 9李대통령, 미국·멕시코 순방 후 귀국…한미회담 등 성과 점검
  10. 10울산 북구·구의회, 노동자 권익 보호 위해 맞손 잡았다
  1. 1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2. 2“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3. 3K-팝 효과 끝? 관광수지 넉 달만에 적자 전환
  4. 4늘어나는 법무수요…부산도시公 사내 변호사 찾기 안간힘
  5. 5금고 과당경쟁 제동…지역은행 판도 촉각
  6. 6한화에어로 ‘경력직 가이드라인(특정 학력·나이)’ 논란…“채용과정 개선할 것”(종합)
  7. 7“독자 기술이 미래 경쟁력…내년 매출 4100억 목표”
  8. 8CG 없이 대규모 전쟁·액션신 뚝딱…생성형 AI 활용 본격화
  9. 9세 가지 맛 한 번에…CU 트리플 삼각김밥 가성비 한 끼 호응
  10. 10대출 갈아타라더니…은행 16곳 중 11곳 주담대 ‘금리 역전’
  1. 1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2. 2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3. 3‘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4. 4영화숙·재생원 진실규명 공로 손석주 ‘민주시민상’
  5. 5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6. 6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7. 7금정구의원이라 믿었는데…임대보증금 1년 넘게 안 줘
  8. 8양산 춘추공원 재정비…6년 만에 변경안 고시
  9. 9선거때 식사대접 혐의 사하구 체육회장 송치…돈봉투 수사는 무혐의
  10. 10부산지하철노조 쟁의 가결…조정 거쳐 내달 파업 예고
  1. 1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2. 2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3. 3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4. 4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5. 5[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6. 6높이뛰기 우상혁, 2m22로 동메달
  7. 7한국 야구, 일본 꺾고 금메달…아시안게임 5연패 달성
  8. 8우승 타이틀 박탈 위기…맨시티 ‘유죄 판단’보도에도 회장 “결백 입증하겠다”
  9. 9[속보]'약속의 8회’ 한국 야구, 일본 3-1로 꺾고 AG 5연패
  10. 10남동헌,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금메달
미리보는 제31회 BIFF
‘아카데미 직행표’ 두고 세계 13편 경쟁…12편 프리미어 상영
한국문학관 기행
부끄러움 없는 삶, 오늘 우리에게 성찰을 던지는 공간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정답 없는 가족의 기록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소윤-sky above,river below,and birds between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빨래 /심여혜
잡는 법 /김만옥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디세이’ 6주 연속 1위 질주, 역대 외화 관객 수 7위 올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8일 (음 8월 18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3일 (음 8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추석 때 사람들 만나 술 마시며 시 읊은 조선 중기 권벌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