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년 부산 무용계의 단면 반영
- 전국무용제 출전 발판용 치부돼
- 작품성보다 물량공세에 고득점
- 대학 교수팀·동문단체 경연장은
- 출신 다른 춤꾼 설 자리 잃게 해
부산무용제가 올해로 28회를 맞았다. 부산무용제는 1992년 문화관광부가 지역 무용인 창작 의욕 고취와 지역 무용의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전국무용제를 개최함에 따라 이에 참가할 대표를 뽑는 경연 형식으로 같은 해 시작됐다. 예술을 ‘발전’ 개념으로 보고 그 방법으로 경쟁을 선택한 것까지 다분히 관료적 인식이 반영된 행사가 부산의 대표적 무용 축제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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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8회 부산무용제 대상을 받은 한국춤모임 짓의 ‘푸른 점, 취한 꽃’(안무 배정현·왼쪽)과 우수상을 받은 댄스시어터 경희의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안무 박재현). 부산무용협회·사진가 박병민 제공 |
부산무용제의 연혁은 1990년 이후 부산 무용계 역사의 단면이다. 제1회(1992년)부터 17회(2008년)까지 대상작은 대부분 대학교수 작품이나 교수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동문 단체가 받았다. 대학 무용 전성기를 1990년대까지로 보지만 2000년대 초에도 영향은 여전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2000년대 초까지 부산무용제는 각 대학교수와 동문 단체의 경연장이었다.
당시 중·대극장 규모의 작품 제작은 충분한 인원과 연습공간을 가진 대학에서만 가능했기에 이런 현상은 당연했다. 2008년 강미리 할 무용단의 대상을 기점으로 교수 작품과 동문 단체의 작품이 부산무용제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손영일 박성호 허경미 박재현 신승민 이용진 김수현 등 교수나 동문 단체와 관계가 느슨한 안무가 중심의 단체가 부산무용제를 채웠고, 이들이 대상을 거머쥔다. 이들은 출신 학교와 상관없이 예술적 공감과 인간적 연대로 작품을 만들었다.
부산무용제 28년 동안 경연에 참여한 팀이 가장 많았던 것이 9개 팀(제3회, 제7회)이었다. 12회(2003년) 이후 매년 4, 5개 팀을 유지하다가 지난해에 참가 팀이 3개 팀으로 떨어졌을 때 부산의 춤 창작환경이 바닥까지 온 것이라 생각했다. 무용제 참가 작품은 10여 명의 전문 춤꾼과 상당한 경비가 필요한데, 이 조건을 갖추기 힘들어진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무용제에는 대상을 두 번씩 받은 안무가(박재현, 손영일)의 두 팀이 다시 참가했다. 이들 두 안무가가 세 번째 같은 무용제에 참가한 것은 규모가 큰 작품을 창작해서 올릴 무대가 필요해서다. 부산에서 중견 안무가가 예술적 역량을 펼 무대를 무용제 말고는 찾을 수 없다. 이왕 경연에 참여했으니 대상을 받고 싶겠지만, 이들의 반복 참가 이유가 수상 욕심만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올해 부산무용제 기간(지난 15~17일)에 이틀 동안 공연을 보면서 누가 대상을 탈 것인지 관심이 없었다. 부산무용제가 전국무용제 출전을 전제하기에 작품의 예술성보다 이른바 물량 공세라고 하는 화려한 무대장치와 효과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심사에 가타부타할 자격은 없다 해도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고 무대효과는 상금(지원금)으로 보강하게 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작품의 가능성은 평가 절하되고 시각효과가 강한 경연용 맞춤작품만을 고른다면 부산무용제가 부산의 무용 생태계에 어떤 도움을 줄지 의문이다.
부산무용제가 열리기 하루 전날 경성대 무용학과 재학생의 마지막 발표회가 있었고, 무용과가 통폐합된 모 대학 한 학년 전체가 자퇴해서 한 개 학번 자체가 없어질 지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그즈음이다. 부산무용제와 국제무용제 그리고 국제 즉흥 춤 축제 등 큰 축제가 10년을 넘어서는 동안 대학 무용학과는 줄줄이 사라졌고, 젊은 춤꾼들은 주저앉거나 원망을 남기고 떠났다. 인정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능성이 무시당하고 기회마저 빼앗겼을 때, 그들은 다시는 춤추지 않겠다고 말한다.
대학 무용과 무용 축제가 젊은 춤꾼들을 희생 삼아 그만큼 전성기를 누렸으면 그들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 빛의 화려함만 좇지 말고 당신들 축제의 그늘을 보라. 그 그늘에서 누가, 왜, 어떤 환경에서 춤추는지, 앞으로 누가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를.
춤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