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은
- 일찌감치 충무로 기대주로 관심
- 칸 본상 도전 두 번 만에 최고상
# 영화사 새 역사
- 칸 초청 35년간 대상작 못 내다
- 한국영화 100주년에 최고 선물
# 한국적 정서 주효
- 외국엔 없는 반지하 주거공간에
- 빈부격차 양극화 사회문제 투영
봉준호(50)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아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다. 2000년대 초·중반과 비교해 최근 10여 년간 한국영화가 세계 영화제에서 크게 활약하지 못했던 상황이어서 이번 수상은 올해로 100년을 맞은 한국영화가 다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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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오른쪽) 감독이 주인공이자 17년간 함께한 배우 송강호에게 무릎을 꿇은 채 트로피를 건네며 수상의 영광을 돌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영화감독 꿈꾸던 12살 소년
봉 감독은 예술가 집안 출신이다. 어머니 박소영 씨는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로 유명한 작가 박태원(1910~1986)의 딸이며 아버지 봉상균 씨는 미대 교수이자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다. “12살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수상 소감처럼 예술가 집안이라는 남다른 환경은 그를 일찍부터 영화에 빠져들게 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할 때는 연극영화과 대신 사회학과를 택했다. 영화를 공부하는 것보다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그는 ‘노란문’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었으며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영화 문법을 익혔다.
봉 감독은 일찌감치 충무로 기대주로 관심을 모았다. 초기 단편영화가 다수의 국내외 영화제에서 초청받았고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가 뮌헨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았고 1301만 관객을 모은 ‘괴물’(2006)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봉 감독은 ‘괴물’로 처음 칸영화제에 초청된 뒤 ‘도쿄!’(2008) ‘마더’(2009) 등으로 꾸준히 칸을 찾았다. 그러다 2013년 ‘설국열차’로 할리우드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7년 넷플릭스 제작 영화 ‘옥자’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처음 진출했다. 하지만 ‘옥자’는 ‘넷플릭스 작품을 영화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을 낳았고 수상에는 실패했다.
■속단 않던 수상… 韓영화 100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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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포스터. |
봉 감독의 두 번째 칸영화제 경쟁 부문 도전작 ‘기생충’은 지난 22일 공식 상영 직후부터 수상 가능성이 점쳐졌다. 상영 뒤 8분 넘게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외신의 호평도 쏟아졌다. 영국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 데일리’는 경쟁 부문 출품작 가운데 최고점을 줬고, 칸영화제 공식 소식지 ‘르 필름 프랑세즈’ 또한 ‘기생충’이 유럽의 15개 매체 중 9곳으로부터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봉 감독을 비롯해 한국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속단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뒤 35년 동안 수많은 한국영화가 황금종려상에 도전했지만, 수상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4)에 돌아간 심사위원 대상이 가장 큰 성과였으며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받은 이후 본상 수상마저 끊겼다. ‘아가씨’(2016) ‘옥자’(2017) ‘그 후’(2017) ‘버닝’(2018) 등이 경쟁 부문에 진출해 수상을 기대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기생충’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황금종려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봉 감독은 수상 직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 최초의 황금종려상인데, 마침 올해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다. 칸영화제가 한국영화에 의미가 큰 선물을 줬다”고 기뻐했다.
■반지하·수직 … 한국적인 것 통했다
한국인에게 익숙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에겐 낯선 ‘반지하’가 세계 영화계에서 통했다. 지난 22일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 때 봉준호 감독은 “반지하는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주거 공간” “곰팡이가 피고 눅눅하지만, 햇빛이 드는 순간 지상이라고 믿고 싶은 지하” “여기서 더 힘들어지면 완전히 지하로 갈 수 있다는 공포감도 존재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태껏 서구 영화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지점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기생충’은 처지와 형편이 완연히 다른 두 ‘4인 가족’을 극명하게 대비하며 한국의 심한 빈부 격차를 기본 틀로 짜놓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봉 감독이 “저와 스태프는 이 영화를 (계단이 나오는 장면의 비중이 높아) ‘계단 영화’라고 많이 표현했다”고 했을 만큼 ‘기생충’은 계단, 반지하 등 수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를 놓고 극심한 경쟁, 경제적·정신적 곤경, 양극화 등을 오늘날 한국 사회 특유의 이미지와 설정으로 표현한 방식이 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칸영화제를 현장에서 직접 참관한 부산국제영화제(BIFF)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는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갖는 계급 문제를 독창적인 스토리텔링과 다른 영화에서 보기 힘든 이야기 전개로 보여준 점이 높은 점수를 받은 듯하다”고 말해 이런 평가를 뒷받침했다.
조봉권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