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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21> 상하이 무협영화의 탄생

상하이 혁명가와 10만 갱단, 그들 삶 닮은 ‘협객영화’에 열광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30 19:01:01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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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와 인적·물적 교류 통해
- 동북아 최대 국제도시 성장
- ‘영화’라는 신문물도 일찍 전파

- 기술·자본·대중 충분히 갖춰
- 영화산업 급속도로 발전
- 1927년 중국서 제작된 영화
- 178편 중 172편이 만들어져

- 中 전통 협객정신 찬양 분위기
- 암흑가 조직 ‘청방’ 지지 속
- 1928년 ‘불타는 홍련사’ 시작
- 활발하게 무협영화 제작

스파이더맨, 배트맨, 아쿠아맨, 아이언맨, 원더우먼이 지닌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이란 점이다. 중국인이 볼 때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들 모두가 ‘협객’이란 점이다. 중국인은 이들을 각각 거미협객(蜘蛛俠), 박쥐협객(蝙蝠俠), 물속협객(潛水俠), 강철협객(鋼鐵俠), 신기한 여성 협객(神奇女俠)으로 부른다. 약자를 괴롭히는 악의 세력을 초인적 능력(무력)으로 제압한다는 점에서 중국 전통 협객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1994년작 홍콩 영화 ‘신 불타는 홍련사’. 이 영화의 뿌리인 ‘불타는 홍련사’는 1928년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 제작된 뒤 많은 후속 작품을 남겼다. 중국 위키백과·안승웅 제공
얼마 전 서양 협객들이 총출동하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누적 관객 1300만 명을 훌쩍 넘겨 외화 흥행 1위에 올랐다는 뉴스가 있었다. 서양 협객 전성시대다.

하지만 불과 20년 전, 지난 세기는 중국발 협객의 전성시대였다. 1960년대는 중국 출생 홍콩 배우 왕우 주연의 ‘외팔이 검객’ 시리즈가 핏빛 감수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비장미 넘치는 왕우의 연기는 이 시기 20, 30대를 보낸 이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1970년대는 이소룡(리샤오룽) 영화가 있었다. TV에서 ‘정무문’이나 ‘맹룡과강’을 방영한 날이면 골목마다 쌍절곤을 돌리며 ‘아뵤’하는 괴성을 질러대는 아이들로 넘쳐났다. 1980년대는 또 어떠했나. 성룡(청룽) 홍금보(홍진바오) 원표(위안바오) 트리오의 코믹 액션이 유행했다. 우리는 명절 때마다 ‘쾌찬차’ ‘프로젝트 A’ ‘오복성’을 복습해야 했다. 1990년대는 ‘황비홍’과 ‘동방불패’ 시리즈가 홍콩 무협영화의 불패를 자랑했다. 액션이 무도처럼 아름다운 이연걸(리롄제), 중성미 넘치는 임청하(린칭샤)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리워한다.

■우리 인생을 뒤흔든 무협영화

   
근대 시기 상하이의 금성극장.
필자는 무협영화 마니아인 큰형 덕분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무협영화를 접했다. 대학생이었던 형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협영화를 볼 때마다 종종 나를 데리고 갔다. 지금은 없어진 부산 동구 범일동 보림극장에 주로 갔는데, 그때 본 ‘외팔이 드래곤’과 ‘정무문’은 잊히지 않는다. 바위를 도르래에 매달아 하나 남은 주먹을 단련하던 왕우, 총칼을 든 일본군을 향해 뛰어들어 최후를 맞는 이소룡, 이들의 모습은 40년 이상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 생생하다.

단정은 못 해도, 1970, 80년대 청소년 시기를 보낸 386세대 남성에게 무협영화는 인생 교과서였다. 당시 여고생이 즐겨 읽었던 하이틴 소설 못지않게 낭만을 꿈꾸게 했다. 주인공이 천하를 주유하며 강호의 미스터리 사건을 해결하고, ‘만독불침(萬毒不侵)’ ‘금강불괴(金剛不壞)’ ‘허공답보(虛空踏步)’ ‘탄지신공(彈指神功)’ 등의 놀라운 기량을 발휘하는 ‘초류향(楚留香)’(1977년 홍콩 무협영화)은 낭만 그 자체였다.

이처럼 사랑받았던 중국의 협객 이야기는 어떻게 바다 건너 우리에게 전해지게 됐을까? 이는 곧 우리 대중문화사에서 큰 흐름을 차지하는 무협영화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근대 시기 동북아 최대 국제도시 상하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 시기 서구와 모든 인적, 물적 교류는 바닷길을 통해 이뤄졌다. 그래서 상하이 같은 해항도시는 일찍이 국제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고, 동북아의 그 어느 도시보다 이른 시기에 영화라는 신문물을 받아들였다.

■‘흥행’의 모든 조건 갖췄던 상하이

   
상하이 청방의 전설적인 두목 두월생(점선 동그라미).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만든 뒤 1896년 상하이에 영화가 전해지자마자 상하이 영화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영화는 태생적으로 과학기술과 자본 그리고 상업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상하이에는 이미 서구의 기술과 자본이 유입됐고 광범위한 대중이 갖춰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27년 중국영화산업연감’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한 해 만들어진 영화가 전국적으로 178편이었는데 이 중 172편이 상하이에서 제작됐다. 상하이의 무협영화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상하이의 무협영화는 1920년대 중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28년 ‘불타는 홍련사(火燒紅蓮寺)’가 발표됨으로써 무협영화는 중국영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 첫발을 내디딘다. ‘불타는 홍련사’는 비록 무성영화였지만,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1931년까지 18편이 연속 제작됐다. 국민당 정부가 무협영화 제작 금지령을 내린 1932년까지 그 짧은 기간에 무려 227편의 무협영화가 만들어졌다. 무협영화에 대한 열광은 국민당 정부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데 상하이의 발달한 영화산업만으로 무협영화가 이처럼 흥성했다는 점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근대 시기 동북아해역 중심도시 상하이의 특수성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상하이는 그 어느 지역보다 상무(尙武)정신이 팽배한 도시였다. 동북아 최대 국제도시 상하이는 세계의 다양한 정보가 집결되는 곳이었다. 그랬기에 중국인은 중국이 처한 처지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엄복(嚴復)이 ‘천연론’이라는 이름으로 T. H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번역해 소개한 이래 중국 지식계에서는 ‘생존경쟁’ ‘적자생존’이 국가 차원의 화두가 됐다. 수많은 지식인이 중국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애국계몽운동의 하나로 상무정신을 고양했다. 마침 세계적으로 일본 전통의 무사도 정신이 주목받고 있었다. 섬나라 일본이 중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저력을 무사도 정신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무사도 정신이 상하이에 소개되자 많은 지식인은 의도적으로 중국 전통의 협객정신을 찬양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는 상하이에서 무협영화가 발전하는 정신적·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원래 협객의 도시였다

다음으로 상하이는 협객의 도시였음을 들 수 있다. 국제도시 상하이에는 조계가 설치돼 있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민족과 중국 각지 중국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이들 중에는 사회적 규범에서 일탈한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 피식민지국가의 독립운동가와 중국의 혁명가 그리고 생존을 위해 암흑가에 뛰어든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혈혈단신으로 상하이에 뛰어들어 추구하는 바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삶은 칼 한 자루에 의지한 채 강호를 유랑하는 협객의 삶과 닮았다. 특히 청방(靑幇)이라 불린 암흑가 조직 사람들의 삶은 협객의 삶과 더욱 닮았다. 시인 이육사는 1935년 ‘공인 ‘깽그’단 중국청방비사소고(中國靑幇秘史小考)’라는 글을 발표해 상하이의 청방 두목 두월생(杜月笙) 황금영(黃金榮) 장숙림(張肅林) 등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때 상하이에는 10만 명의 ‘깽그’(갱)가 있다고 언급했다. 10만이나 되는 ‘깽그’는 그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듯한 무협영화를 좋아했다. 때로 이들의 삶 자체가 무협영화의 소재가 됐다.

   
결국, 상하이에서 무협영화가 탄생하고 발전한 것은 상하이가 동북아해역 인문네트워크 속 중심도시로 성장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계의 정보, 이주민, 자본, 문물 등을 제한 없이 잘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은 세계적인 영화도시로 도약하려는 우리 부산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안승웅 부경대 HK 연구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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