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죽음’은 “누가 날 죽였지?”로 시작한다. 문득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로 첫머리를 장식하는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 떠올랐다. 책장을 조금 더 넘기자 주인공인 작가는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여자 영매를 만난다. 이 부분에서는 한때 국내 극장가를 눈물로 적셨던 영화 ‘사랑과 영혼’(1990)이 오버랩됐다. 진도를 조금 더 나가자 ‘엉뚱하고 유명한 죽음들’이 쭉 나열됐다. 한국 작가 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이쯤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 왜 이러지?’라는 다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잡념을 누르고 책장을 열심히 넘겼다. 드디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줄거리는 간단하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추리소설 작가가 유일하게 자신을 알아보는 젊고 매력적인 여자 영매를 만나 범인을 찾아 나선다. 달랑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줄거리에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이 소설을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누구인가. 1991년 ‘개미’로 전 세계(특히 한국) 독자를 사로잡은 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타나토노트’‘아버지들의 아버지’‘천사들의 제국’ 등에서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 작가가 아닌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소설에서도 ‘도대체 어디까지 상상력을 펼칠 작정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종횡무진 활약한다. 나폴레옹과 토마스 에디슨을 호출하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1996년 사망한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등장해 후배 총리에게 심각한 정국을 풀어내는 정치적 트릭을 알려주는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하이라이트는 명탐정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영국 추리소설의 대가 아서 코난 도일이 주인공 죽음의 비밀을 추리하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소설 속 주인공이 구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자신을 주인공에 투영시켰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 곳곳에 프랑스 문단에서 벌어지는 장르 문학과 순수 문학의 대립을 거의 전쟁 수준으로 묘사해 놓았다. 이는 장르 문학 작가로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도 읽힌다.상상력의 대가답게 결말은 반전이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를 극도로 경계했듯 이 서평 기사에서도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결말은 공개하지 않겠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