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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16>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

‘다리’를 욕망하는 인어… 박재현 안무의 정점을 찍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03 18:43:44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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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로 누워 바닥을 기는 인어
- ‘킬힐’ 위에 위태롭게 선 인어
- 걷기에 대한 갈망을 표현
- 분석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 강렬하고 감성적인 이미지

분석이 필요한 작품이 있지만, 이미지의 힘이 주는 감성의 공명만으로 빠져들기 충분한 작품도 있다. 박재현이 안무한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지난달 16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제28회 부산무용제 경연 참가작)은 후자에 가깝다. 분석할수록 박재현 작품의 특징인 ‘예술적 산만함’은 초라해진다.
지난달 16일 제28회 부산무용제에서 공연한 안무가 박재현의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 사진가 박병민 제공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모로 누워 바닥을 기는 가녀린 인어의 느리고 고통스러운 움직임은 활발한 춤꾼들과 대비된다. 다른 모든 것 없이 그 움직임만으로 하나의 작품이 될 만큼 강렬한 기어 다니는 인어는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와 은유가 담긴 꿈틀대는 발화체다.

흔히 알고 있는 동화의 내용과 달리 원작에서 인어공주가 왕자의 사랑을 얻으려는 이유는 불멸의 영혼을 갖기 위해서다. 물의 정령인 인어는 자기들은 300년 수명을 다하면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것에 반해 인간은 수명은 짧지만, 사후에 불멸의 영혼을 얻어 새로운 세계로 간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작과 다르게 각색된 이야기를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더 나아 보이는 세계로 편입해서 자신의 욕망을 해결하려는 의존적 시도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원작의 결말은 인어공주가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기의 정령(바람)이 되어 사랑의 실패로 인한 슬픔을 극복하고 불멸을 얻는 것이다. 인어공주가 수동적 자세로 삶의 개선을 바라다 실패한 가련한 존재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인어공주는 시련을 통해 성숙함으로써 자아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존재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다리에 대한 집착이다. 작품 시작과 끝에 박재현은 한쪽 발에만 하이힐을 신고 한쪽 발은 맨발에 발가락을 곧추세운 채 힘겹게 돌아다닌다. 이 장면은 인어공주의 이루지 못한 ‘욕망-다리(걷기)’의 은유다. 이를 더 강조하기 위해 박재현은 남성 속옷의 일종인 드로즈(drawers)를 연상할 만큼 짧은 하의를 입음으로써 ‘맨살의 다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다른 춤꾼들도 마찬가지여서 ‘맨살의 다리’는 누운 채로 기는 인어와 대비되면서 작품을 끌고 가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몇 장면에서 뒷막이 부분적으로 올라가고, 강렬한 풋라이트 역광을 받으며 등장하는 춤꾼들의 다리에는 ‘맨살의 다리’에 대한 페티시를 의심할 정도로 강한 집착이 묻어있다. 걷지 못하는 자(인어)의 간절한 욕망이자 모든 편견의 시작과 끝인 ‘욕망-다리(걷기)’를 이런 기발한 방식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해소한다.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은 박재현의 안무작 중에서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박재현의 대표작인 ‘노년의 기록’과 ‘금홍아, 금홍아’, 솔로 작품인 ‘고독’ 시리즈보다 그의 특징인 ‘산만함’이 예술적 장점으로 녹았다. 주제를 펼치는 방식이 능숙하고, 작품을 두텁게 만드는 상징 요소를 적절하게 배치했다.

특히 기존 안무법을 무시하는 ‘블로킹(blocking·무대 동선)’은 그만의 색깔을 도드라지게 한다. 일반적으로 무대 위에서 하나의 장면이 펼쳐지면 조명으로 그쪽을 집중하게 하고 다른 움직임은 없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박재현은 특정 장면에서 동시에 서너 개 상황을 진행하고 심지어 관객의 시선을 가리는 동선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러 무대 요소가 시간적 공간적 위계가 느슨한 채 흩어져 펄떡이고, 춤꾼들의 폭발하는 에너지가 더해져 시각 이미지가 풍성해졌다. 거기에다 아련한 감성의 굴곡까지 전해지면서 굳이 의미를 읽거나 이해하지 못해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현실과 꿈, 고립된 자아와 외부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몸들은 강렬하고 몽환적 장면을 연출하며 끝을 맺는다. 춤과 경쾌한 은유가 가득한 작품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박재현의 자아가 확장된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춤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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