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에 ‘발굴’된 김동식의 글
- 공장노동자서 화제 작가로 도약
- 20년 넘게 써온 시 묶어낸 시집
- 정신과 상담기록 에세이도 화제
- 부산문화재단서 문학창작 지원
- 출판 이후 사후관리 등엔 미흡
- 지역사회 유통경로 등 염두둬야
우리나라에서 소설가, 시인, 평론가 등으로 인정받으려면 ‘등단’을 해야 한다. 연말 신춘문예에 입상하거나 문예지에서 신인상을 받는 등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등단 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지적이 그동안 끊이지 않고 제기됐다. 하지만 이제는 등단을 하지 않아도 책을 내고 작가가 되는 길이 열렸다.
■ 작가 등장의 새로운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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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져 소설집 7권을 낸 김동식 작가. SBS 제공 |
베스트셀러 작가로 혜성처럼 등장한 ‘회색인간’의 김동식 작가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던 글들을 눈 밝은 편집자가 발굴해 출판으로 이어졌다.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도, 등단한 적도 없는 노동자에서 바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부산의 소요유 출판사에서 나온 ‘마개 없는 것의, 비가 오다’도 등단하지 않은 이승재 시인이 20년 넘게 써온 시를 묶어낸 시집인데 감동과 울림이 커서 문단 바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독립출판이나 1인 출판이 활성화되면서 등단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주제나 경험, 재능을 바탕으로 글, 사진, 그림을 모아 책으로 엮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우울증부터 주거, 독립, 노동, 젠더 등 개인의 삶과 경험의 구체성, 내밀함이 담긴 에세이 등이 책으로 출판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제작 전에 만들어질 책의 콘셉트와 내용에 대해 선구매하거나 투자하는 크라우드 펀딩이나 소셜 편딩은 새로운 관점의 내용과 형식의 책 출판과 더불어 새로운 작가가 등장하는 환경이 되고 있다.
자신의 정신과 상담 기록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독립출판 형식으로 제작되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호응을 받기 시작해 40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출판사나 작가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부산에서도 여성의 독립 생활의 어려움을 다룬 ‘내 방구같은 만화’, 1인 주거에 대한 에세이 ‘일인분의 삶’, 아버지를 대신해 부품회사를 운영했던 어머니에게 헌정하는 책 ‘엄마와 세종기업’ 등 지속적으로 독립출판이나 1인 출판으로 개성 있는 출판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SNS시인으로 유명해진 하상욱 시인처럼 SNS에 꾸준히 쓴 글들이 책으로 엮이거나 브런치 등 글쓰기 플랫폼에 연재하던 글이 책으로 출판되기도 한다. 축적한 작품을 등단을 통해 세상에 내보여 평가받는 방식이 아니라 웹상에서 글에 대한 반응을 바로 확인하면서 작가로 활동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 기초예술 문학 지원 한계
2018년 한 해 부산문화재단 기초예술 지원으로 시, 수필 등 문학 창작을 지원한 사례를 보면 개인 128명과 단체 35곳이다. 몇 년간의 흐름을 살펴봐도 한 해에 100권 이상의 개인 작품집이나 계간지 등의 발간을 지원하고 있다. 책을 잘 안 읽는 시대에 지역에서 연간 100권 이상의 책이 지원 제도를 통해 발간되는 것은 외적으로 큰 성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천천히 뜯어보면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지원 제도는 문학을 기반으로 한 작품의 유통이나 대중과의 소통 확대, 새로운 작가 발굴, 작가들의 창작 의욕 증대나 작품 생산 환경 개선 등을 포함해 왜소해진 문학 씬의 외연을 확대하거나 출구를 찾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지원 방향이 단순하다. 그러다 보니 지원을 받은 작가가 어떤 제목으로 책을 냈고, 서점이나 인터넷서점을 통해 유통이 되고 있는지 등 성과 관리의 개념이 없다. 부산문화재단의 문화예술 아카이브에서 연도별·영역별 자료를 확인하기 어렵고, 존재하지 않거나 작가와 작품이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경우도 많아 기본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힘들다.
또 2018년의 경우 300만 원을 일괄적으로 지원했는데 장르에 따라 다른 환경을 반영할 수 없고, 인쇄부터 출판까지 진행하기에도 현실성 없는 금액이다. 이로 인해 작가가 사비를 더하거나 출판사가 출혈을 감내하면서 제작하고, 정식 출판하지 않은 채 보고용이나 지인들과 나누는 정도로만 인쇄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8년 지원받은 작가의 이름과 장르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 지원 시기 이후 발간된 책 제목이 확인되지 않거나, 제목이 확인되더라도 일반 유통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40건이 넘는다.
게다가 지원 조건이 3년 이내에 ‘문예지, 전문지, 동인지’에 작품이 실리거나 ‘개인작품집’을 발간했거나, ‘기타 신문, 잡지’에 작품을 기고한 실적이 있어야 한다. 회원제 중심으로 운영되거나 등단한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문예지 등이 다수인 상황에서 적은 금액의 지원마저도 문학 제도의 이너서클 내에서 기회를 나눠 가지는 정도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문학 가능성 상상하는 지원 필요
현재 창작의 결과물을 발간하는 것에 대한 소규모 단순 지원과 진입장벽이 높은 지원 조건이 결합되면서 폐해가 발생한다. 우선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따른 생산 주체의 유입이나 작가의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양질의 작품이나 콘텐츠 생산·유통의 관점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또 문학이 대중예술로서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방향이 아니라 문화재처럼 보호받아야 하는 논리로 씬과 작가의 위치를 왜곡·축소시킬 위험이 있다. 지원 형식과 제도가 창작자들을 스스로 박제화하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물을 때다.
따라서 지원 건수를 성과로 볼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과 책이 얼마나 지역사회에서 회자되고 유통이 되느냐 등으로 관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소액 다건이 아니라 양질의 작품을 발굴하는 방향으로, 환경 변화에 따라 등장하는 다양한 작가를 수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단순 창작 발간이 아니라 출판사·독자까지 확장해 유통·소통·순환을 염두에 두는 방향으로, 전문가 중심의 심사가 아니라 파격적으로 일반 독자를 심사위원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등 상상의 여지는 많다. 지원이 지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씬을 생기 있게 만드는 것이 문화예술을 위한 진정한 지원일 것이다.
박진명 ‘생각하는 바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