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 사업 실패로 시련의 시간
- 가치 있는 삶 추구토록 이끌어
- 어린이 영어 뮤지컬 극단 창단
- 외부 지원 없이 작품 18편 제작
- 힘들어도 아이들 위해 포기안해
- 언제나 위로 되는 음악이 좋아
- 성악가·지휘자로도 무대 꾸준
화가의 딸 서정아(50)는 다재다능한 아이였다. 그림을 배우지 않고도 우유갑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니 미술 선생님은 미술을 권하셨고, 레슨 한 번 받지 않고도 노래대회에서 상을 받아 오니 음악 선생님은 음악을 권하셨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시 쓰기와 사람의 마음 헤아리기 그리고 아이들을 좋아했기에 시인이나 심리학자,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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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라노 서정아가 인터뷰 중 아버지 서상환 화백의 작품을 보이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
꿈도 많고 재능도 뛰어났기 때문이었을까. 노래로 향하는 길은 도리어 늦게 열렸다. 타고난 목소리와 남달리 풍부한 예술적 감성 덕분인지 노래는 이내 그의 삶이 되었다. 부산대 음악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이탈리아 밀라노 음악원과 오르페오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2003년 귀국해 소프라노, 합창 지휘자, 음악 교육자, 어린이 뮤지컬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 서정아를 만났다.
■영어뮤지컬 극단 창단…작품 18편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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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공연 모습. |
“저는 리릭 소프라노예요. 소프라노는 가벼운 레쩨로, 극적인 드라마틱, 화려한 콜로라투라 등 타고난 성대와 음색에 따라 세분됩니다. 자신에게 맞는 노래와 역할이 따로 있는 셈이죠.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때 선생님은 먼저 저에게 맞는 곡을 선곡하고, 그 노래를 ‘예쁘게’만 부르려 하지 말고 ‘나뚜랄레’, 자연스럽게 부르라 하셨습니다.”
세계적인 성악가를 길러낸 스승의 평범하지만 큰 지혜였다. 노래를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니 노래를 편안하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무대 위의 삶을 꿈꾸며 나날이 행복했다. 그런데 남편의 사업 실패와 악재가 겹치면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평탄했던 삶이 큰 고비를 맞은 것이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너무 힘들었어요. 원망도 많이 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구를 탓하기보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삶에 대한 마음가짐도 사뭇 달라졌습니다.”
2년 6개월간의 유학 시절이 소프라노로서 노래를 ‘다시’ 부르도록 만들었다면, 시련의 시간은 그를 화려한 삶보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도록 이끌었다. 작은 일부터 최선을 다하자며 임했던 7년간의 초등학교 합창단 트레이너를 거쳐 도달한 지점이 바로 어린이 영어뮤지컬 극단 ‘꿈꾸는 아이’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18편의 작품을 제작했으며, 오는 8월에는 19번째 작품으로 ‘신데렐라’를 올릴 예정이란다. 연간 두 차례 작품을 무대화하고 있는데, 외부 지원 없이 이처럼 꾸준히 활동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작품의 수준 또한 아이들이 하는 교육용 뮤지컬 또는 학예회 정도를 연상하면 큰 오산이다. 제대로 갖춘 무대와 완성도 높은 노래, 연기, 참신한 연출로 고정 팬까지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제, 밀양 등 인근 지역의 초청을 받을 정도다. 성악가로서 갖추어 온 전문성과 안목, 경험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아이들 변화·행복이 기쁨…“힘들어도 계속하겠다”
그러나 공연을 만들면서 정작 그가 공을 들이는 부분은 따로 있다. “히키코모리 같은 아이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전혀 어울리지 못했는데 차츰 노래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그 아이가 공연을 거의 주도하다시피 했습니다. 그것이 음악의 힘이죠. 춤과 노래, 연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기도 하고, 힘든 연습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의 존재가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아이들은 늘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그를 믿고 따른다. 노래나 춤, 연기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꿈을 꿀 줄 아는 아이, 노래하며 행복한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그의 진심을 알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세트, 음향, 조명, 의상, 소품, 분장 등 제작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수익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어렵다. 소싯적 미술 전공을 권유받았던 솜씨와 재능을 발휘해 의상과 소품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제작비를 줄이려 여러모로 노력해도 여전히 힘에 부친다. 아이들 공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사업에 배제되는 일도 잦다. “노래가 정말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하면 할수록 더 좋아집니다. 부르면 부르는 즐거움이 있고 들으면 듣는 즐거움이 있어요.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하는 용기를 주기도 하죠. 힘들어도 계속해 볼 생각입니다.”
■성악가·지휘자로 무대를 꿈꾼다
자신이 꿈꾸던 무대를 오롯이 아이들에게만 내어준 것은 아니다. 1987년에 창단된 아미티에 성악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부산문화회관 챔버홀에서 ‘3인 음악회’를 선보였다. 각자의 음색도 독특하지만 오랜 우정을 바탕으로 한 깊이 있고 편안한 앙상블로 갈채를 받았다.
이 밖에 반석교회 성가대와 부경대 합창단 등 합창 지휘자로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합창은 호흡과 소리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단다.
한번 시작하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성품은 아버지를 빼닮았다. 서상환 화백이다. 세상이 좋아하는 작풍이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소신껏 추구하는 성상화(ICON)의 거장이다. 기도하는 화가의 뒷모습을 보면서 작업실에서 배접을 돕고, 작품 한 점이 팔리는 날이면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던 아이들은 성악가와 판화가(서아희)가 되었다.
물과 공기처럼 삶에 스며든 예술은 아이를 꿈꾸게 하였고,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를 꿈꾸던 아이는 이제 또 다른 아이들을 위한 무대를 준비한다. 이 무대를 딛고 아이들이 세상이라는 새로운 무대로 성큼 나아가는 것, 서정아의 꿈이다.
공연기획자·인제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