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 창작 육성·발굴 AK21 공연
- 참가팀 보면 부산기반 짐작 가능
- 춤꾼 많은데 안무가는 드문 현실
- 교육기관서 공연 시스템 배우고
- 실패도 때론 수용되는 지원 필요
- 작품 올릴 다양한 무대도 필수
- 메마른 땅서 버티는 이들 살피길
‘집단, 합창’을 뜻하는 그리스어 ‘코로스(koros)’가 어원인 ‘코레이아(choreia)’는 춤, 시, 음악이 섞인 집단 가무로 춤을 중심에 두고 시(말)와 음악이 가미된 종교제의다. ‘안무’의 영어단어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는 ‘choreia(춤)’와 ‘graphia(쓰다)’의 합성어로 원래 창작이 아닌 기록(무용 기보법)과 관련된 용어였다. 이것이 분석과 창작 매체로 확장한 것은 18세기 라울 오제 푀이에와 20세기 초 루돌프 폰 라반을 거치면서다. 이후 1960년대 포스트모던 댄스의 영향으로 ‘안무’는 ‘춤을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로 통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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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열린 부산국제무용제 ‘AK(Arts Korea)21 국제안무가육성공연’에서 무대에 오른 손영일 무용단의 ‘그들만의 광기’. 사진가 박병민 제공 |
‘춤을 만드는 것’은 일차적으로 ‘움직임을 계획하는 것’이다. 즉흥이 아닌 이상 움직임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하고, ‘왜?’는 안무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이다. 답을 춤 내부에서 찾을 경우 움직임은 춤의 매체적 특성, 즉 ‘몸’에 대한 사유를 담는다. 이와 달리 답을 춤 외부에서 구할 때 예술 혹은 예술가와 사회·춤의 사회적 의미 등으로 확산한다. 이런 확산은 동시대(컨템퍼러리) 춤의 출발점이 된다.
지난 5일 부산국제무용제 프로그램으로 ‘AK(Arts Korea)21 국제안무가육성공연’(이하 AK21)이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열렸다. AK21은 세계적인 춤 작가(안무, 출연) 발굴을 전면에 내세운 부산에서는 하나뿐인 사업이다. 열한 번째인 AK21에 그동안 46개 팀이 참가했고 올해 참가한 4팀 중 부산을 활동 기반으로 하는 팀은 두 팀이다. 역대 참가팀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부산 춤 창작 환경과 기반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안무는 개인 역량 문제인데 어째서 환경에 대해 말하는지 반문할 수 있다. 이런 반문을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창작자(예술가)가 나타나려면 개인 역량만 아니라 환경의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환경이란 제대로 된 ‘교육·지원·기회’다.
제대로 된 ‘교육’은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실기와 함께 안무가의 소양이 될 인문학과 공연 제작에 필요한 시스템 전반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상적인 ‘지원’은 장기적이고 실패마저 어느 정도 수용하는 지원을 말한다. 공공지원 없이 창작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불과 수개월 만에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현재의 지원방식은 장기적으로 볼 때 창작에 도움을 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기회’란 다양한 시공간에서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무대(장소와 계기)다. 지금은 예술가를 위해 열린 기회는 없고 행정과 관리 편의가 우선된 기회가 한정적으로 제공된다. 이런 현실을 개인이 헤쳐나가 안무가로 입지를 세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재능 있는 예술가가 지역을 벗어나고 외국으로 가려는 이유는 제대로 된 환경을 찾으려는 것이다.
안무가는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 있고 주제에 대한 치밀하고 광범위한 리서치를 해야 하는 창작자이자 연구자다. 지금 환경에서 AK21이 목표로 삼은 세계가 인정하는 춤 작가 ‘발굴 육성’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공동체가 제대로 된 창작 환경을 조성하고, 그것을 양분 삼아 성장한 이들이 공동체를 위한 예술을 창작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구조의 시작은 예술가를 ‘발굴 육성’하겠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예술가란 적절한 환경에서 능동적으로 성장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할 때부터다. ‘춤꾼은 많은데 안무가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비평계의 걱정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당장 변화가 어렵다고 기다리지만 말고, 언제일지 모를 그날까지 메마른 땅에서 버티는 그들의 손이라도 잡아야 한다.
춤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