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지사·자산 풍부한 기장
- 2011년 항일운동기념탑 건립
- 인물·역사 구체적으로 알리려
- 주민들, 기장군·군의회 뜻 모아
- 2016년 운동비 보완 추진위 결성
- 올해 3·1절 100주년 맞춰 제막
- 김도엽 구수암 기장여자청년회…
- 독립유공 서훈자 명단 더 새기고
- 명정의숙가·애국의 노래도 담아
문화와 관련된 일의 가치를 높여가는 방법은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꾸 돌아보고 꾸준히 가꾸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두루뭉술하지 않게 아주 구체적으로 내용을 채우는 데까지 나아감을 뜻한다. 정성을 다해야 구체적일 수 있으며, 아름다움은 구체성에서 나올 때가 많다. 자꾸 돌아보고 꾸준히 가꾸는 것은 더욱 중요한데, 한 번 완수한 사업이라 해서 관심을 끊고 더는 돌아보지 않는 게 아니라 행여 모자란 게 없는지 잘못된 건 없는지 알아보고 보완하는 태도를 말한다. 문화란 그런 ‘과정’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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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0주년 3·1절이었던 지난 3월 1일 제막한 기장 독립운동 비석 조형물에 관해 공태도 옹이 설명하고 있다. 이 조형물은 부산 기장군 기장읍 새마을어린이공원에 2011년 조성된 기장항일운동기념탑을 보완해, 바로 곁에 조성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2011년 4월 ‘기념탑’ 완공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새마을어린이공원 안에 ‘기장항일운동기념탑’이 서 있다. 기장 향토사학자 공태도(85) 옹의 설명을 들어보자. “기장항일운동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를 꾸리고, 많은 분이 힘을 모아 노력한 끝에 2011년 4월 기장항일운동기념탑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 탑만 세울 수 있었습니다.” 2011년 완공된 기장항일운동기념탑 형상에 관해 해설해주는 비석을 따로 조성해 둔 점이 이채롭고도 사려 깊다는 인상을 준다.
그 해설에 따르면 기장항일운동기념탑은 ‘다섯 개 기둥(오개지주)이 태극구(球)를 떠받친 형상’이다. 오개지주는 기장군 5개 읍·면(기장읍·장안읍·정관읍·일광면·철마면)민이 하나 되어 독립 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상징한다. 태극구는 항일운동의 지향이자 결실인 조국 광복을 시각화했다. 탑신을 받치는 기단은 오각형으로, 기장의 기반을 이루는 5개 읍·면을 담았다. 기단 벽면에는 기장 사람의 독립운동 모습을 부조로 새겼다. 어린이부터 어르신, 기장 사람부터 다른 지역에서 온 방문객까지 다양한 사람이 보는 이런 공공 조형물은 이처럼 ‘친절한’ 설명을 붙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기념탑 보완 추진위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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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 향토사학자 공태도 옹. |
공태도 옹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런데 기장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가 정말 많았습니다. 항일운동도 치열했죠. 독립운동과 관련한 인물과 자산이 아주 많은 곳이 기장입니다. 막상 기장항일운동기념탑을 세우기는 했는데, 기념탑만 있다 보니 아쉬움이 내내 가시지 않는 겁니다.”
3·1절에 이곳에서 기념행사를 하고, 헌화·분향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지만, 막상 기념탑 현장에 와도 그 많은 기장의 독립운동가 성함을 알 길이 없고 기장 독립운동사의 자산도 제대로 알릴 수 없어 기장의 뜻있는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2016년 기장항일운동비 보완 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희)가 만들어진다. 주민과 군의원, 시의원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공태도 옹과 기장의 향토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황구 씨, 허모종 씨가 자문을 맡았다.
추진위의 문제의식과 취지에 공감한 기장군은 이 보완사업에 예산 1억2000만 원을 배정했고 군의회도 함께했다.
■항일·독립운동 치열했던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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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항일운동기념탑 |
“부산지역에서는 1919년 3·1 만세운동 때 동래, 구포, 기장에서 큰 시위와 운동이 있었습니다. 일제는 강력하게 탄압했죠. 이때 세 지역에서 각각 만세운동을 주도한 분들을 일제가 검거해 내린 ‘최고 징역 형량’을 보면, 동래는 1년3개월이고 구포는 1년6개월이며 기장의 경우 김도엽 선생께 2년6개월이 선고됐습니다.” 공태도 옹은 “상대적으로 작은 고장인 기장에서 민족독립운동이 치열했던 한 증표”라며 이 사례를 들려줬다.
이뿐 아니다. ‘구수암 의사 장례식’(2015년 10월 14일 자 국제신문 13면 ‘박창희 대기자의 말하는 두레박’ 참조)은 3·1운동 전체 역사에서도 거듭 그리고 새롭게 조명하고 기릴 만한, 눈물겹게 멋진 장면이다. 기장 청년 구수암(1901~1920)은 기장 3·1 만세운동을 주동했다. 일제는 그를 붙들어 1년6개월 형을 선고하고 대구형무소에 가뒀다. 감옥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해 극도로 쇠약해진 구수암을 일제는 형기 만료 6개월을 앞두고 가석방했다. 구수암은 가석방 사흘 만에 타계하고 만다.
■구수암 의사 장례 모신 기장 여성들
이때 기장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기장 명정의숙 출신의 기장여자청년회(당시 대표 박자선) 소속 젊은 여성(16~20세) 18명이 시집갈 때 쓰려고 모아둔 돈(봉창돈)을 조금씩 떼어 조위금으로 내고 상여 앞에 들고 갈 만장을 1장씩 모두 18장 만들어 장례식 때 직접 들었습니다. 게다가 구수암의 장례를 면민장으로 하기 위해 노력해 관철시켰죠.”(공태도 옹)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기장의 젊은 여성 청년들이 해낸 이 일은 지금 상상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감동을 준다.
이와 함께 1916년 당시 기장광복회 총무를 맡고, 여성 교육기관 명정의숙 교장으로 활약했으며, ‘기장군자금사건’을 주도하다 희생된 박세현,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두봉 선생을 비롯해 한 집안에서 독립운동가를 무려 9명이나 배출한 기장의 명문가, 명정의숙 학생들이 불렀던 ‘애국의 노래’….(공태도 옹은 1914년 지은 이 노래가 1936년 만들어진 안익태 작곡 ‘애국가’보다 앞서지만, 현재 곡은 남아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독립지사도 많다.
■새 비석에 ‘빈자리’ 따로 둔 사연
‘기장이란 고장은 대체 어떤 곳이기에’라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풍성한 독립운동의 역사와 문화 자산을 더 많이 담아낸, ‘보완된’ 기장항일운동비는 올해 3월 1일 제100주년 3·1절 기념일에 드디어 제막식을 열었다. 이날 기장군 새마을어린이공원에서 열린 제막식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 있다. 이 동영상을 보면 항일운동비를 보완하는 일이 만만찮은 과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상희 추진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경과보고를 통해 “기장항일운동비 보완을 위해 새로운 비석에 넣을 내용을 확정하고 비석 형태를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토론과 감수, 자료 확인, 다른 지역 답사와 검토를 거쳤다”고 밝혔다.
새로운 비석에 이름을 새길 기장의 독립운동가는 국가에서 독립유공서훈을 받은 분을 우선 선정했다. 그리고 ‘기장군지’ 등을 통해 거듭 검토했다. “독립운동에 공헌했음에도 이념 문제 등으로 이견이 있어 빠진 분은 앞으로 사회적 합의와 더욱 객관적 논의를 거치겠다”고 이상희 추진위원장은 설명했다.
공태도 옹은 “앞으로 정부에서 발표되는 기장군 출신 서훈자가 더 있을 수 있으니 비석에 따로 공백인 자리를 만들어 두었다”고 말했다.
■거듭 살피고 가꾸다
이렇게 해서 공태도 옹이 새로 쓴 비문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살다 간 기장사람들’, ‘명정의숙가’와 ‘애국의 노래’, ‘구수암 만가’, ‘기장군 독립유공 서훈자 명단’(19명), ‘3·1운동 읍면별 주동 인물 명단’(26명), ‘기장광복회원(1916년) 명단’(16명)을 새긴 ‘보완된’ 비석이 기장항일운동기념탑 곁에 탄생했다. 이름을 불러드린 것이다.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