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18> 리뷰: 댄스 프로젝트 에게로의 창작춤 ‘회귀’- 유쾌한 판타지의 애잔한 소극(笑劇·farce)

선배들의 춤 감성을 무대로 부산 현대무용 새 길 찾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01 18:47:09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돌아갈 곳은 결국 새로운 지금”
- 누구나 가진 일상 섬세히 표현
- 창작춤 그룹 ‘연분홍’ 오마주
- 전통춤보다 가까운 과거로 접근
- 동시대 리얼리티 살려내 획기적

커다란 여행 가방 위에 한 여인이 주저앉았다. 가방이 큰 이유는 버리지 못하고 마구 쑤셔 넣은 지난 시간의 생채기들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었던 삶의 생채기는 이제 감당 못 할 짐이 됐고, 몸은 짐의 크기와 무게 때문에 현실에 닿지 못한다. 여인이 가방에 쌓인 먼지를 닦아 입으로 불면 시곗바늘이 된 춤꾼 세 명이 가방을 축 삼아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툭 치는 소리와 함께 꿈과 현실이 뒤섞인 판타지가 펼쳐진다.
지난달 15, 16일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 공연한 댄스 프로젝트 에게로의 ‘회귀’. 사진가 박병민 제공
‘회귀’(지난달 15,16일 민주공원 소극장)는 두 가지 요소로 판타지를 만들어 낸다. 그중 하나는 주연인 김미란(부산시립무용단 부수석)의 연기다. 김미란은 기쁘고 슬프고 허탈한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캐릭터가 처한 혼란한 상황과 감정적 리얼리티까지 전달한다. 마치 팝업 북처럼 가방에서 튀어나온 하얀 종이 집 때문에 상황은 유쾌하고 따스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으로 바뀌고, 이런 판타지를 만드는 것은 무대 디자이너 김호진의 무대 세트다. 세트는 허술해 보이지만 성긴 구조 사이로 조명과 춤꾼의 감정 그리고 관객의 시선이 부담 없이 스며들게 해 무대 공간을 감성으로 가득 채운다. 아픔인 줄 모르고 꼭꼭 숨겼던 생채기에 대한 처방은 겨우 술 한 병이다. 소주 한두 잔만으로도 어느 정도 잊을 만큼 아픔은 일상과 어깨를 겯고 있었다. 관객에게서 걷어 들인 아픔이 약통에서 산산이 부서져 꽃잎처럼 흩날린다. 그렇다. 나만 그런 줄 알고 그토록 아파했던 일들은 누구나 가진 일상의 다른 모습이었다. 아픔은 나누고 조각낼 수 있었고 심지어 모두가 가진 것이었다. 이제 가방은 감당할 만큼 작아졌고 돌아갈 때가 됐다. ‘회귀’는 피안으로 가는 거창한 여정이 아니었다. 삶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대지에 두 발을 디디고 서서 지금에 머무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순간이 아니던가.

회귀할 곳은 새로운 지금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주제라면 숨은 의미는 ‘오마주(homage)’에 있다. 오마주는 주로 영화에서 다른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존경의 의도로 다른 작품의 장면과 대사 등을 인용하는 기법이다. 이용진은 예전에 느꼈던 선배들 춤의 감성을 ‘회귀’에서 오마주했다고 말한다. 그가 오마주하는 시기는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한 전무후무한 프로젝트형 창작춤 그룹 ‘연분홍’의 전성기다. 연분홍 멤버들은 주제를 유려한 춤과 감성으로 세밀하게 풀어냈고, 이런 방식은 후배 춤꾼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용진은 연분홍의 춤과 직접 접촉하고 그 감성을 알고 있는 마지막 세대다. 김미란을 주역으로 선택한 이유도 김미란을 통해 연분홍 시기의 표현방식과 감성을 재현하려는 의도다.

‘회귀’의 오마주는 단지 존경에 그치지 않는다. 연분홍은 부산을 기반으로 2000년 초까지 10년 남짓 활동을 했고, 이용진은 이러한 지역 춤 역사의 일부를 내면화했다. 문화재라는 이름이 지역의 전통·민속춤을 오히려 지역으로부터 대상화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전통춤이 아니라 가까운 시기 지역의 춤 감성을 창작 소재로 건져낸 것은 동시대의 지역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새로운 접근이다. 블랙홀 같은 중앙의 흡입력이 닿지 못하는 지점도 바로 지역의 디테일과 리얼리티다. 내부의 역사를 경험적 사실에 따라 소재 삼은 이런 방식은 지금까지 부산 현대무용 판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심각하고 진지하지만 변별점을 찾기 힘든 작품들에 지쳐갈 때 나타난 이 ‘애잔한 소극(笑劇·farce)’이 어쩌면 부산 창작 춤의 한 전형이 될 듯하다.

춤비평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3. 3부산국제영화제 11년 만에 ‘관객 20만’ 재돌파
  4. 4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5. 5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6. 6[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7. 7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8. 8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9. 9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10. 10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3. 3‘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4. 4北 "전날 동해서 2종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
  5. 5신임 靑 비서실장에 임광현 국세청장(종합)
  6. 6김민석 격주 부산행 PK 민심잡기…부마항쟁 기념식 찾는다
  7. 7이 대통령 "부마항쟁 헌법 조문화, 이제는 실천할 때"
  8. 8김민석, 강훈식 서울시장 후보론에 “가능성 열려있다”
  9. 9李 대통령 지지율, 2주 전보다 소폭 오른 44%…부정 평가 49%
  10. 10강훈식 다음 수순은 서울시장 출마?(종합)
  1. 1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2. 2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3. 3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4. 4‘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5. 5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6. 6모건스탠리 “고물가 고착화 위험에 한은 내달 금리 올릴 듯”
  7. 7AI 투자 회의론 고개…글로벌 반도체주 ‘먹구름’
  8. 8부산항에 석유 보세구역…북극항로 선박연료 생산·공급
  9. 9커피향 가득한 미래 작가들 ‘사랑방’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15일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3. 3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4. 4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5. 5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6. 6“장림항 레저보트 철수명령 정당” 대법 확정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6일
  8. 8예고 임용강사·학원장 겸직, 전국서 부산예고 가장 높아
  9. 9거짓자백 받았나…法, 17년전 ‘창원 택시기사 살인’ 재심청구 인용
  10. 10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 배재정 전 의원 실형 구형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5. 5[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쉽게 따라 배우는 걷기명상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윤상건-Creature
박지은- little talk-Venice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경비원 /박필상
자화상 /최은지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5일 (음 9월 5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4일 (음 9월 4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비 오는 가을밤에 읊은 시
생육신 남효온이 가을 강변의 풍경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