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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지하도시 헤쳐 나가는 ‘루저’의 성장기

데린쿠유 - 안지숙 장편소설/산지니/1만5000원

  •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  |   입력 : 2019-07-11 19:48:37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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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지숙 작가 첫 장편소설
- 등장 인물에 생기 불어 넣는
- 디테일한 심리 묘사 돋보여

안지숙(사진) 작가의 첫 장편소설 ‘데린쿠유’는 소리나 자국도 없이 슥 마음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고는 “너는 이 소설 어땠어?” 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이기도 했다. ‘루저’ 현수가 ‘대견한’ 현수가 되어 “지하실을 나와 문을 닫는”(이 소설의 맨 끝 대목) 장면은 화려하지 않고 차분하다. 그런데 빛난다. 흥! 데린쿠유 따위.

데린쿠유는 “터키에 있는 대규모 지하 도시. ‘깊은 우물’이라는 뜻. 기독교인들이 아랍인들을 피해 우물을 파듯 지하 곳곳을 파고 내려가서 거주한 지하도시”(130쪽)를 뜻한다. 이 장편소설에서 데린쿠유는 단지 상황의 비유로 쓰일 뿐, 실제 등장하지는 않는다.

키 180㎝ 몸무게 110㎏ 나이 스물여덟. 현수는 명리학자 경술(현수의 아버지다)이 소유한 지독히 낡은 3층 건물에 깃든 예술가 공동작업실 ‘철공소’(풀 네임은 철학공작소다)의 관리인으로 일한다. 말이 관리인이지 경술에게서 월 50만 원을 받고 연명하는 알바 신세다. 성격, 외모, 역량, 경제력, 비전, 식성…거의 모든 면에서 현수는 ‘번듯한 데 취직해 남들처럼 살’ 형편은 못 되고 그런 걸 꿈꾸지도 않는다.

게다가 상처. 현수는 어릴 때부터 복임(현수의 엄마다)한테서 이상하게 불편한 느낌을 받는다. 스트레스와 억압감 그리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두려움을 ‘엄마’한테서 느끼며 자랐다. 명수라고, 현수의 형이 있었는데 복임의 사랑은 명수한테로만 향했다. 그런데 어릴 때 명수가 사고로 죽고 만다. 현수 혼자 남는다.

자! 여기까지가 장편소설 ‘데린쿠유’의 주인공 현수에 관한 소개다. 어느 날 ‘세라 고모’가 현수의 인생에 개입한다. “남들한테야 백수의 하루지만, 사실 현수의 하루는 일과 놀이와 휴식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101쪽) 이랬던 현수의 생활 패턴은 딱 여기까지다. 현수 인생은 지진을 맞은 것처럼 흔들린다. 현수는 세라 고모에게서 “양명시장 선거에 예비후보로 나온 송찬우의 ‘본색’을 까발려 인터넷에 올려주면 차 한 대를 뽑아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실행에 옮긴다.

얼떨결에 이 제안을 받아들인 직후에는 현수도 혼란스럽다. ‘맥도날드 더블 1955 버거 세트를 얻은 먹느라 받아들이긴 했는데, 이 일을 꼭 해야 하나?’ ‘왜 하필 나지?’ 그런데 이 장면 뒤로 장편소설 ‘데린쿠유’는 ‘루저’ 현수가 자신의 한계와 아픔을 직시하고, 거기에 응전하면서, 자아를 발견해가는, 그리고 그렇게 자아와 맞대면한 덕에 내면에서 차오르는 자존감을 맛보게 되니 심지어 ‘사랑’에도 (일단은) 성공하는 ‘빛나는 성장기’로 탈바꿈한다.

이 모든 과정이 작가 안지숙의 섬세한 문장, 세심한 구성, 심리의 디테일을 그려내는 묘사에 힘입어 ‘소리나 자국도 없이’ 전달된다. 현수가 흠모하는 다솜, 나쁜 놈인 것은 분명한 듯한데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송찬우, 세라 고모의 동업자인 수다 여왕 정숙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이 작품 속에서 생기 있게 살아 움직이는 모습도 인상 깊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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