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대형견이 연출해낸 ‘포즈샷’
- 회화적 묘사로 리얼리티 극대화
- 내달 25일까지 해운대 조현화랑
300호(가로 218㎝·세로 290㎝)짜리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강강훈(40) 작가의 인물화는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정밀한 극사실회화다. 얼굴의 미세한 솜털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하늘로 날리는 머리카락과 눈썹 한 올까지 붓끝에서 살아났다. 물감이 흩뿌려진 얼굴의 어린 소녀는 무표정으로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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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의 얼굴을 극사실적으로 그린 강강훈 작가의 ‘Pink in Blue’. 조현화랑 제공 |
사진처럼 그려내는 리얼리즘 작업으로 주목받는 강 작가의 개인전이 조현화랑(부산 해운대구 중동)에서 다음 달 25일까지 열린다. 6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는 작가의 딸과 대형견 도베르만을 소재로 한 신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강 작가는 자신이나 주변 인물, 유명 인사의 다양한 표정을 코믹하게 표현한 인물화 연작 ‘모던보이’와 ‘레이디’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림은 마치 사진과 같이 생생하지만 작가가 바라본 현실을 조감, 색상, 소품을 활용해 개성 있게 표현했다. 이번에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존재이기도 한 딸을 화폭에 옮겼다. 딸의 얼굴에 실제로 물감을 뿌리고 포즈를 연출해 수백 장의 사진을 찍은 뒤 작가가 선택한 일부만 캔버스에 옮겼다.
작가를 닮은 한 인생의 찰나를 놓치기 싫다는 데서 출발한 이번 작업은 자유로운 물감의 형태와 성장해 가는 딸의 얼굴을 유동적으로 표현했다.
강 작가가 추구하는 사실성은 ‘있는 그대로’의 장면이 아니다. 재현으로서의 회화를 넘어서 인물의 감정선과 내부의 목소리가 작품으로 승화된다. 작품에 주로 사용하는 블루 색상은 작가를 대변하는 색으로, 실현하고 싶은 작가의 욕망을 색으로 표현했다. 관람자는 물감을 묻힌 딸의 초상과 함께 화폭과 관람자 사이에 존재하는 아빠로서 화가의 시선을 보게 된다. 그는 “2016년부터 ‘물감 뿌리기’를 작업에 적용하면서 그동안 철저하게 계획된 연출과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됐다. 요즘에는 사진에 찍힌 일부분을 생략하거나 색상을 새로 연출하는 등 리얼리티를 재해석한 작품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헤아릴 수 없이 까마득한 수의 붓 자국에서 작가가 작품을 하면서 보냈을 시간과 반복적인 행위의 축적이 주는 미적 감흥을 느낄 수 있다. 다분히 노동적이고 어찌 보면 강박적이기까지 한 사실성을 뛰어넘는 회화적 묘사가 감탄을 자아낸다. 작가는 “더 정밀하게 그릴 수도 있지만 유의미한 것들이 표현됐다면 참고 붓을 뗀다. 사실주의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면서 전보다 붓을 떼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경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강 작가는 극사실주의 2세대를 형성하고 있다. 머리와 귀에 물감을 가득 묻힌 채 고요히 사색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 작가가 사랑하는 견종 도베르만 등 대상을 충실히 묘사한 작품은 때론 강렬하고 충격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사색적이다. 문의(051)747-8853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