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 문예반 활동하며 詩 만나
- 오랜 직장생활하다 교수로 재직
- 어린시절 뛰놀던 경주 황남동
- 천마총 발굴로 마을 강제 철거돼
- 고향 사라진 후 마음은 늘 떠돌아
- 한옥에서 자녀 안부·부고 챙기던
- 아버지의 그 살뜰한 정이 그립고
- 유교적 가풍이 더 생각나는 오늘
시를 읽는 행위는 평소에 잊고 있었지만 사실은 마음속으로는 줄곧 생각하던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시인들은 어쩌면 이렇게 근원적인 질문을,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적확한 단어로 쓰는 것일까 늘 감탄하게 된다. 전동균 시인의 시집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를 읽을 때 그런 기분을 특히 더 많이 느꼈다. 시 ‘약속이 어긋나도’에서는 “내가 새매라고, 예티라고, 부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저를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그들의 형제인 나를”이라는 구절에, ‘이토록 적막한’에서는 “나무는 왜 땅에 서 있어야 하고 새들은 하늘을 날아야 하는지// 날마다 해와 달을 깨우고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지/ 그 힘이 왜/ 없어도 좋은 우리를 여기 있게 하고/ 아침이면 눈꺼풀을 열게 하는지”에서 오래 시선이 멈추었다. 시집을 읽는 동안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라는 물음이 자꾸 떠올랐다. 이 시집에서 이야기하는 주제는 존재에 대한 성찰과 질문이다. 전동균 시인을 강원도 원주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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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동균 시인이 연세대 원주캠퍼스의 윤동주 시비동산에서 시집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를 이야기하다 미소짓고 있다. |
■사라졌으나 잊히지 않는 고향
전동균 시인은 1962년 경북 경주에서 나고 자랐다. 경주고를 다닐 때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시를 만났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소설문학사 제정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 ‘오래 비어 있는 집’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우리처럼 낯선’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등을 냈다. 백석문학상과 윤동주 서시 문학상을 받았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입사해 오래 직장생활을 했고, 2008년부터 동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방학 중 원주시의 토지문화관에 머물고 있던 시인을 만난 곳은 연세대 원주캠퍼스였다. 지난해 제3회 윤동주 서시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캠퍼스 내의 ‘윤동주 시비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 들를 때마다 가끔 이 나지막한 언덕 위에서 윤동주의 시비를 보곤 한단다. 나무가 우거진 언덕에 천체를 형상화한 둥근 조형물 위에 ‘서시’를 새긴 시비가 있다. 시비라기보다 조각 예술 같았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언덕은 한여름 더위도 피해간 듯 시원했다.
시인의 고향은 경주 황남동이다. “경주 대릉원 고분 동네였어요.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이 아니라, 황남대총 외에는 그저 뒷동산 같은 모습이었죠. 능 사이에 집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천마총 발굴이 시작되면서 마을은 강제철거 됐는데, 그때 상실감이 컸어요.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능 바로 앞에 있는 집이 철거되기 전에 대낮에 큰 구렁이가 집에서 나와 담을 타고 능 쪽으로 기어갔어요. 동네사람들이 몰려나와 ‘지킴이가 간다’며 비손을 했지요. 어른들이 공경하는 걸 보니까, 어린 저도 그 구렁이가 무섭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적 뛰어놀았던 동네는 하루아침에 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늘 떠돌이가 된 것 같은 마음이었어요.”
그의 마음은 시집 말미의 ‘시인의 말’에서도 느껴진다. “대구로 서울로 부산으로 떠돌게 되었지만 이따금 내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소년은 그곳의 사람들과 흙냄새, 오래된 한옥들과 마당의 연꽃무늬 돌들, 무덤 위로 떠오르는 달빛과 짐승 울음소리, 새벽의 흰 물그릇…… 그 어둑하고 신비한 삶의 풍경을 더듬더듬 불러내곤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분 동네의 풍경이 떠오른다.
시집에서 드러내놓고 고향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라진 풍경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떠돌이의 마음, 복잡하게 얽힌 세상의 길 위에서 ‘존재’라는 화두를 붙잡고 있는 시인이 보인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읽는 사람 역시 그 화두의 끝머리를 붙잡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소멸돼 가는 한 시대 담은 시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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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전동균·창비·2019 |
시집을 덮고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시 한 편이 있다. ‘한옥’이라는 시다. 오래된 집, 천천히 스러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일본 막내는 아픈 데는 없는지/ 사업하는 둘째 일은 좀 어떤지/ 아이들 공부는 나아졌는지/ 차례차례 물으셨다.” 자식들의 안부를 챙기는 아버지와, 늦가을 저녁의 풍경을 보여주던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술 한잔 천천히 아껴 드시고는/ 얇은 노트를 건네셨다/ 별일 아닌 듯이// 보면 원망할 데만 적었니라/ 부고 보낼 명단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또박또박/ 쓴”
시인을 만나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 이 시에 대해 물었다.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농경문화를 이루고 유교적 가풍을 이어가며 살았던 시대가 서서히 소멸해갑니다. 젊은이들은 그 시대를 모릅니다. ‘한옥’도 ‘아버지’도 그렇게 사라졌지요.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아끼는 시입니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시가 시인이 아끼는 시라는 말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시인의 마음과 만나는 지점을 제대로 짚은 것 같아 즐겁게 다시 시집을 펼친다. 시를 읽는 기쁨이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