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63> 전동균 시인의 시집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사라진 풍경 그리워하는 마음 … 세상의 길위에 선 내 모습일 수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21 18:55:48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고교 문예반 활동하며 詩 만나
- 오랜 직장생활하다 교수로 재직

- 어린시절 뛰놀던 경주 황남동
- 천마총 발굴로 마을 강제 철거돼
- 고향 사라진 후 마음은 늘 떠돌아

- 한옥에서 자녀 안부·부고 챙기던
- 아버지의 그 살뜰한 정이 그립고
- 유교적 가풍이 더 생각나는 오늘

시를 읽는 행위는 평소에 잊고 있었지만 사실은 마음속으로는 줄곧 생각하던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시인들은 어쩌면 이렇게 근원적인 질문을,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적확한 단어로 쓰는 것일까 늘 감탄하게 된다. 전동균 시인의 시집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를 읽을 때 그런 기분을 특히 더 많이 느꼈다. 시 ‘약속이 어긋나도’에서는 “내가 새매라고, 예티라고, 부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저를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그들의 형제인 나를”이라는 구절에, ‘이토록 적막한’에서는 “나무는 왜 땅에 서 있어야 하고 새들은 하늘을 날아야 하는지// 날마다 해와 달을 깨우고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지/ 그 힘이 왜/ 없어도 좋은 우리를 여기 있게 하고/ 아침이면 눈꺼풀을 열게 하는지”에서 오래 시선이 멈추었다. 시집을 읽는 동안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라는 물음이 자꾸 떠올랐다. 이 시집에서 이야기하는 주제는 존재에 대한 성찰과 질문이다. 전동균 시인을 강원도 원주에서 만났다.
전동균 시인이 연세대 원주캠퍼스의 윤동주 시비동산에서 시집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를 이야기하다 미소짓고 있다.
■사라졌으나 잊히지 않는 고향

전동균 시인은 1962년 경북 경주에서 나고 자랐다. 경주고를 다닐 때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시를 만났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소설문학사 제정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 ‘오래 비어 있는 집’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우리처럼 낯선’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등을 냈다. 백석문학상과 윤동주 서시 문학상을 받았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입사해 오래 직장생활을 했고, 2008년부터 동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방학 중 원주시의 토지문화관에 머물고 있던 시인을 만난 곳은 연세대 원주캠퍼스였다. 지난해 제3회 윤동주 서시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캠퍼스 내의 ‘윤동주 시비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 들를 때마다 가끔 이 나지막한 언덕 위에서 윤동주의 시비를 보곤 한단다. 나무가 우거진 언덕에 천체를 형상화한 둥근 조형물 위에 ‘서시’를 새긴 시비가 있다. 시비라기보다 조각 예술 같았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언덕은 한여름 더위도 피해간 듯 시원했다.

시인의 고향은 경주 황남동이다. “경주 대릉원 고분 동네였어요.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이 아니라, 황남대총 외에는 그저 뒷동산 같은 모습이었죠. 능 사이에 집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천마총 발굴이 시작되면서 마을은 강제철거 됐는데, 그때 상실감이 컸어요.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능 바로 앞에 있는 집이 철거되기 전에 대낮에 큰 구렁이가 집에서 나와 담을 타고 능 쪽으로 기어갔어요. 동네사람들이 몰려나와 ‘지킴이가 간다’며 비손을 했지요. 어른들이 공경하는 걸 보니까, 어린 저도 그 구렁이가 무섭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적 뛰어놀았던 동네는 하루아침에 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늘 떠돌이가 된 것 같은 마음이었어요.”

그의 마음은 시집 말미의 ‘시인의 말’에서도 느껴진다. “대구로 서울로 부산으로 떠돌게 되었지만 이따금 내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소년은 그곳의 사람들과 흙냄새, 오래된 한옥들과 마당의 연꽃무늬 돌들, 무덤 위로 떠오르는 달빛과 짐승 울음소리, 새벽의 흰 물그릇…… 그 어둑하고 신비한 삶의 풍경을 더듬더듬 불러내곤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분 동네의 풍경이 떠오른다.

시집에서 드러내놓고 고향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라진 풍경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떠돌이의 마음, 복잡하게 얽힌 세상의 길 위에서 ‘존재’라는 화두를 붙잡고 있는 시인이 보인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읽는 사람 역시 그 화두의 끝머리를 붙잡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소멸돼 가는 한 시대 담은 시 한 편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전동균·창비·2019
시집을 덮고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시 한 편이 있다. ‘한옥’이라는 시다. 오래된 집, 천천히 스러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일본 막내는 아픈 데는 없는지/ 사업하는 둘째 일은 좀 어떤지/ 아이들 공부는 나아졌는지/ 차례차례 물으셨다.” 자식들의 안부를 챙기는 아버지와, 늦가을 저녁의 풍경을 보여주던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술 한잔 천천히 아껴 드시고는/ 얇은 노트를 건네셨다/ 별일 아닌 듯이// 보면 원망할 데만 적었니라/ 부고 보낼 명단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또박또박/ 쓴”

시인을 만나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 이 시에 대해 물었다.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농경문화를 이루고 유교적 가풍을 이어가며 살았던 시대가 서서히 소멸해갑니다. 젊은이들은 그 시대를 모릅니다. ‘한옥’도 ‘아버지’도 그렇게 사라졌지요.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아끼는 시입니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시가 시인이 아끼는 시라는 말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시인의 마음과 만나는 지점을 제대로 짚은 것 같아 즐겁게 다시 시집을 펼친다. 시를 읽는 기쁨이다. 책 칼럼니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2. 2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3. 3‘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4. 4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5. 5“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6. 6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7. 7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8. 8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9. 9방호복·지뢰덧신 살펴보는 국회 국방위원들
  10. 10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1. 1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2. 2“BPA, 1년간 1조원대 채권 발행…항만공사 통폐합 강행 땐 빚 전가”
  3. 3“피지컬AI 항만 실증사업, 광양항 아닌 부산항서 해야”
  4. 4李 지지율 2주째 상승 37.9%…양당 지지도 오차범위 접전
  5. 5여야 만난 강신철 국방부 장관 “北 지뢰 확인 땐 상응 조치…은폐 없다”(종합)
  6. 6靑 재제청 요구 거부 조희대 “국감서 밝히겠다”(종합)
  7. 7부산시 ‘도시계획’ 조직개편 여파…시의회 상임위 간 신경전
  8. 8‘인천대 교수 임용 특혜 의혹’ 유승민 딸, 입건없이 10개월째 수사만
  9. 9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10. 10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1. 1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2. 2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3. 3안주고 덜준 보험금, 5년간 1000건 육박
  4. 4HJ중공업 조선업계 첫 올해 임단협 타결
  5. 53년물 국고채 4.1% 돌파…美 금리 급등 여파
  6. 6빚 갚으려고 또 빚…카드론 대환 23%↑
  7. 7“금융위 경험·네트워크로 부산 금융생태계 강화”
  8. 8부산 유주택 신혼 반토막…‘6억 초과’ 보유는 2.5배 급증(종합)
  9. 9시중銀, 부울경 전략산업 금융 확대…지역銀 영역침범 우려도
  10. 10AI로 ‘해상 교통 혼잡도’ 예측한다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3. 3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4. 4“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5. 5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6. 6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7. 7약발 없는 바가지 대책…인센티브·숙박세로 실효성 키워야
  8. 8김해 아이돌봄 대기 5개월…부모 속타네
  9. 9부산대 양산캠 유휴부지, 양산시도 나섰다…개발 TF 꾸려 대응
  10. 10약사 면허 빌려 28억 부당이득…환수 거부에 法 “토해내라” 쐐기
  1. 1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2. 2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3. 3수영·탁구·사격 부진…양궁이 ‘금빛 갈증’ 풀어줄까
  4. 4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5. 5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6. 6안세영, 천위페이도 가볍게 압승…결승 진출
  7. 7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8. 8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9. 9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10. 10[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아카데미 직행표’ 두고 세계 13편 경쟁…12편 프리미어 상영
한국문학관 기행
부끄러움 없는 삶, 오늘 우리에게 성찰을 던지는 공간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정답 없는 가족의 기록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소윤-sky above,river below,and birds between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빨래 /심여혜
잡는 법 /김만옥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9일 (음 8월 19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8일 (음 8월 18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추석 때 사람들 만나 술 마시며 시 읊은 조선 중기 권벌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