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초반에 경남 고성 귀촌
- 자연 평화로움 시 곳곳에 담겨
- 새 시집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 숙성된 글위해 느리게 써내려가
“1989년 등단할 때 다짐한 게 세 가지였어요. 무거워지지 말자, 가벼워지지도 말자. 이게 하나고. 남보다 잘 쓰려 하지 말과 남과 다르게 쓰자. 이게 두 번째. 독자가 한 번 더 읽고 싶은 시. 어려워서 한 번 더 읽는 게 아니라 독자 마음으로 들어가는 시. 이것이 세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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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낸 동길산 시인. 올해 등단 30주년이다. |
동길산 시인은 올해 등단 30주년을 맞았다. 1960년생인 그는 1989년 무크지 ‘지평’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이 됐다. ‘고작’ 서른두 살이던 1992년 동 시인은 경남 고성군 대가면의 저수지가 있는 산골에 집을 마련해, 시골에서 살기 시작했다. 귀농·귀촌 같은 말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바람에 날려온 씨앗 같은 저를 거두어주고 품어준 산골 자연, 산골 사람들께 그저 고마울 뿐이지요.” 그 뒤로 시골과 도시를 오가면서 사는 그는 “일찍 산골로 들어온 건 참 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그가 펴낸 새 시집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시인동네·사진)에 실린 ‘남향집’ 같은 시에는 오랜 산골 삶에서 얻은 굳은살 박인 평화로움이 있다.
“여름엔 마루도 넘지 못하게 하는 햇살을/겨울엔 방까지 들이는 남향집/집에도 마음이란 것이 있어/추운 날 내 집에 온 손님/몸은 녹이고 가라고 방까지 들인다/남자 혼자 지내는 방이 궁금한지/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 햇살은/슬금슬금 마루에서 비비적대거나/슬쩍슬쩍 장판을 쓸어보는 기척이다/몸이 다 녹았을 만도 한데/그만 일어서려는 눈치라곤 없이/있을 때까지 있어 보자는 심산인 겨울 햇살/그러거나 말거나/이왕 내 집에 들인 손님/있을 때까지 있어 보라는 심산인 남향집”(전문)
동 시인은 “시 ‘남향집’에 나온 집은 제가 7년 살아보고 고쳤다”고 했다. 겨울엔 어디가 얼마나 추운지, 여름엔 모기가 많은지, 집의 허한 곳과 실한 곳이 어딘지 겪어보고 천천히 집 고치는 일에 나선 셈이다.
그는 ‘등단 30주년’에는 별 감흥이 없는 듯했다. 대신 “이번 시집이 여섯 번째인데 ‘뻐꾸기 트럭’(2009) 뒤 10년 만에 내게 됐다”는 사연을 은근히 말하고 싶은 듯했다. “숙성되기를 기다렸죠.” 동 시인은 “등단할 때 다짐했던 세 가지를 줄곧 생각하면서 지금쯤 이 시편들을 내보내도 될지 생각하다 보니 10년이 지났다”고 했다.
산골에 집을 두고 가끔 도시를 오가는 삶이란, 극명하게 대비되는 풍경을 봐야만 하는 시간의 연속이 아닐까? 헷갈리거나 번민하지 않을까? 그가 애초 이번 시집 표제로 삼고 싶었다는 ‘강물 벚꽃’이 대답이 될 수 있겠다.
“나무에 있을 때는 높이가 다 다르던 꽃잎이/나무를 버리면서 같은 높이가 되어/강물이 서면 함께 서고/강물이 흐르면 함께 흐른다/나무에 있을 때만큼 환하지는 않으나/구부린 데라곤 없이/생긴 그대로 드러내는 꽃잎 한 잎 한 잎/먼저 떨어진 꽃잎은/나중 떨어진 꽃잎을 받치고/나중 떨어진 꽃잎은/먼저 떨어진 꽃잎에 포개어/나무에 있을 때는/바라보기만 하던 곳으로 나아간다/나무에 있을 때는 내내 흔들렸지만/평온을 얻은 듯 묵묵히 나아가는/강물 벚꽃 한 잎 한 잎/더이상 높지는 않으나/더이상 낮지도 않은”(전문) 이 시는 꽃잎을 보며 부산 수영강을 거닐 때 몇 걸음 가다 한 행 떠올리고 몇 걸음 가다 한 행 떠올리는 식으로 온천천에 닿았을 때 완성한 뒤 1년간 고친 작품이다.
서로 대립되거나 맞지 않을 듯한 요소를, 시인의 몸속에 푹 담갔다가, 빨래처럼 꺼내 말린 듯한 인상의 시편을 만날 수 있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