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20> 내 기억의 서랍 속 춤 하나

야외공연, 규모에 집착하다 일상과 멀어지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29 18:57:37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일광서 열었던 베란다 프로젝트
- 구멍가게 청년과 아가씨의 사랑
- 무대선 못 느낄 생동감·즉흥성
- 10분여 작품 현장 반응 폭발적

- 요즘 거리춤 대규모에 지원 집중
- 야외지만 무대공연과 차이 없어

- 잊고 살던 당연한 가치 들추는 것
- 작고 따뜻한 춤 또 만나길 기대

재작년 이맘때다. 기장 일광해수욕장에서 하야로비 무용단의 야외 춤 ‘베란다 프로젝트’(이하 ‘프로젝트’)를 기획했었다. 베란다 프로젝트는 바다와 땅이 경계를 넘나드는 해변을 베란다로 설정하고 육지와 바다에 얽힌 삶의 이야기를 춤으로 풀어내는 공연이었다. 창작 춤 네 편을 공연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나는 춤이 하나 있다. 강용기 안무의 ‘오래된 바다’가 그것이다. ‘오래된 바다’는 해변에서 몇 걸음 들어선 골목에 있는 작고 낡은 구멍가게 ‘바다슈퍼’에서 시작한다.
   
2017년 기장 일광해수욕장에서 공연한 강용기 안무의 ‘오래된 바다’. 지금은 없어진 작고 낡은 구멍가게 ‘바다슈퍼’와 작품이 어우러져 호평을 받았다. 박병민 사진가 제공
구멍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 세 들어 사는 청년은 가게 앞 평상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백수다.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괜한 시비를 걸어 코 묻은 돈을 뜯는 일 말고는 소일거리조차 없다. 청년은 어느 날 슈퍼 앞을 지나는 동네 멋쟁이 아가씨에게 추근거리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사랑하고 다투던 시간이 꿈같이 흘러 노년이 된 두 사람은 처음 사랑을 나눈 구멍가게 앞 의자에 앉아 서로를 다독이며 남은 삶의 여정을 다정히 걸어간다.

10분 남짓의 이 작품은 현장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진짜 동네 룸펜을 출연시켰다는 오해를 받은 청년(강용기)과 아가씨(정기정)의 춤과 연기는 이야기를 투박하고 맛깔나게 만들었고, 동네 아이들 역할을 한 10대의 춤과 노래, 현장에서 끼어든 동네 아저씨의 놀라운 춤 솜씨가 어우러져 한여름 해수욕장을 찾은 이들의 감흥을 한껏 돋우었다. 거리 춤은 무대공연에 비해 세밀한 표현과 무대장치를 이용한 스펙터클을 만들지 못하지만, 이 작품처럼 약간의 과장이 만들어 내는 현실보다 더한 생동감과 즉흥성은 무대공연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준다.

얼마 전 우연히 일광에 들렀다가 바다슈퍼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됐다. 주위에 카페가 즐비하고 펜션과 모텔이 가득한 동네에 두 사람이 들어서면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작은 구멍가게는 낡은 간판에 ‘슈퍼’라는 이름을 달고 세월을 견디다 기어이 사라진 것이다.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 떠들썩한 관광지에 있으리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허름한 가게를 보고 떠오른 이야기가 춤이 됐고, 같은 내용으로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도 공연했다. 이 작품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공연할 수 있었던 것은 화려하고 규모가 압도하는 곳 뒤편에 존재하는 그늘진 곳이라면 어디서든 그곳의 따스함을 일깨우는 이야기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소는 사라졌지만 춤은 남았다.

   
지금부터 가을까지 야외 공연이 늘어나는 시기다. 한때 일 년에 수십 차례 있었던 야외 춤이 어느 순간부터 줄어들고 있다. 작은 규모의 거리 춤보다 페스티벌 형식의 대규모 거리공연에 지원이 집중되고 공연할 장소를 개발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큰 이유이지 싶다. 야외(거리) 공연에서 규모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 경향은 아쉬운 일이다. 규모에 신경 쓰다 보면 거리공연의 특징인 일상에 스며드는 맛은 사라지고, 일상과 동떨어진 무대만 거리에 덩그러니 생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거리 공연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무대공연을 관조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일상의 작은 것, 너무나 당연해서 가치를 잊어버리는 것, 모른 척 덮어 둔 것에 다가가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춰내는 일은 거리 춤만이 할 수 있다. 지친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춤에 마음의 굳은살이 물러지고 소소한 상처 하나라도 치유된다면, 춤이 소중한 세금으로 조성한 지원금을 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이 여름, 동네 한 모퉁이에서 내 기억의 서랍 속 ‘오래된 바다’처럼 작고 따뜻한 춤을 다시 만나고 싶다.

춤비평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2. 2센텀2 분수령 풍산 부지보상 본격화…1조 관측
  3. 3‘부산검찰청’ 떼고 ‘공소청’ 간판
  4. 4한달간 부산은 축제도시…‘페스티벌 시월’ 시작
  5. 5“부캉이 왜 쫓아내나”vs“먹이활동 안 해 폐사 우려”
  6. 6김해공항과 ‘50년 동행’ 부산은행…영업점 단독 응찰
  7. 7HJ중공업 7900TEU급 ‘가닛’ 명명식…중대형 컨선 14척 인도
  8. 8센텀2 배후지 ‘트리븐 센텀’ 뜬다
  9. 9“부캉이 테마공원 만들자”…동구는 조형물 설치 검토
  10. 10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1. 1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2. 2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3. 3국정원 “우크라가 北포로 송환 비공개 먼저 요청”(종합)
  4. 4‘김종서함’ 울산 진수식 찾은 이재명 대통령 “자주국방이 주권”
  5. 5여야 “軍, 북한에 강력 대응” 촉구
  6. 6이 대통령 "김지용 후보자, 검사 출신 이유로 배제하면 중수청 망쳐"
  7. 7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8. 8“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9. 9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10. 10[속보] 김여정, ‘DMZ 북한 지뢰’ 발표 전면부인…“서울의 자작광대극”
  1. 1센텀2 분수령 풍산 부지보상 본격화…1조 관측
  2. 2한달간 부산은 축제도시…‘페스티벌 시월’ 시작
  3. 3“부캉이 왜 쫓아내나”vs“먹이활동 안 해 폐사 우려”
  4. 4김해공항과 ‘50년 동행’ 부산은행…영업점 단독 응찰
  5. 5HJ중공업 7900TEU급 ‘가닛’ 명명식…중대형 컨선 14척 인도
  6. 6센텀2 배후지 ‘트리븐 센텀’ 뜬다
  7. 7“부캉이 테마공원 만들자”…동구는 조형물 설치 검토
  8. 8해운 대기업 부산 이전 효과 내려면…“산업 생태계 구축돼야”
  9. 9반도체 호황에…올 국세수입 478조 역대 최대 예측(종합)
  10. 10삼영이엔씨, 회생계획 인가…3자배정 100억 유증
  1. 1‘부산검찰청’ 떼고 ‘공소청’ 간판
  2. 2전재수 전 보좌진 4명 ‘증거인멸’ 유죄(종합)
  3. 3[한 손 뉴스]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들, 올 연말 중국으로 떠난다(종합)
  4. 4朴시정 선거악재 우려 ‘생곡 용역’ 중단…백지화 소문 키워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일
  6. 6“110억 투입 부산 의료버스, 플랫폼업체에 예산 1/3 지급”
  7. 74년 방치 창원 짚트랙, 새 체험시설 만든다
  8. 8바리케이드 걷힌 소녀상…2년여 만에 시민 품으로(종합)
  9. 9“비영리법인 설립, 법 기준 세워야”
  10. 10창녕 2세 아들 숨지게 한 父 징역 17년
  1. 1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2. 2중원 황인범·투톱 변화…승리 축포 쏠까
  3. 3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4. 4역시 안세영…AG 2번째 ‘금빛포효’(종합)
  5. 5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중국에 역전승 거두고 결승 진출
  6. 69회 4실점 진땀…롯데, 키움에 가까스로 승리
  7. 7공격에 쏟아붓다가 골문 열린 모레노호
  8. 8일본 대회운영 왜 이러나…한국 육상 남자 400m 계주, 판정 논란 딛고 동메달 지켰다
  9. 9고성군, 통영시 거제시와 손잡고 2029년 도민체전 공동개최
  10. 10한동희 시즌 23호 홈런 '쾅'…롯데, 키움에 4-2 역전승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日 70년史부터 ‘올나잇’ 상영회까지…애니 세계로 초대
미리보는 제31회 BIFF
연상호 ‘실낙원’ 홍상수 ‘눈 둘 데가 없네’ 등 한자리에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자현-꾸지 않는 꿈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일 (음 8월 21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30일 (음 8월 20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