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보고 해상활동 근거지 완도
- 청해진 설치해 해적 소탕하고
- 신라가 해상무역 호령케 한 곳
- 현재 청정바다 수도·부자 섬
- 동상·기념관·공원·대교 등에
- ‘장보고’ 이름 붙여 브랜드화
- 장도 등서 유물 출토 잇따라
- 관련 해양산업 열 올리는 중
- 中·日 해양영토 확장 노골화 속
- 해양주권 수호 되새기게 돼
최근 개인적으로 부쩍 자주 가는 곳 중의 하나가 영도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이다. 대형 수족관 속에서 유영하는 크고 작은 어류, 미니 수조 안에서 숨었다 꼬물꼬물 나타났다 하는 신기한 모양의 해양생물과 원색의 알록달록한 물고기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의 관심 속에 연신 카메라 세례를 받기 바쁘다. 나 역시 그런 것에 살짝 시선이 쏠리기도 하지만 실상 내 관심은 세계 해도첩, 세계의 주요 해양 탐험로, 선사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우리의 해양 활동, 통신사 노정, 표류·귀환 경로 등의 해양 교류와 네트워크 관련 사항 그리고 해양 영웅에 있다. 세계의 해양 영웅으로 소개되는 인물 중에서 포르투갈의 네브가도르 엔리케와 바스쿠 다가마, 이탈리아의 콜럼버스와 마르코 폴로, 스페인의 마젤란, 영국의 제임스 쿡,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 중국의 정화와 정성공은 비교적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 밖에 상당수는 낯설어 다소 머쓱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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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도 청해진 유적지에서 본 장보고 동상. 오른손에 칼, 왼손에 교역물품 도록을 들고 있다. |
■동북아해역을 누빈 장보고
이쯤 되면 당연히 우리나라 해양 영웅은 누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박물관에서 선정한 인물은 장보고, 이순신, 안용복이다. 다른 나라의 해양 영웅이 주로 개척자나 정복자, 혹은 상인 신분인 반면 우리나라의 세 영웅은 각기 그 성격과 역할이 다르다. 이순신 장군과 안용복은 우리나라를 수호한 인물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이순신 장군은 국가의 위기 앞에서 세계사적 해전을 치러 나라를 지켜냈다. 조선의 어부 안용복은 국가의 공도정책 속에서 두 번이나 일본으로 가 일본 정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아 우리의 해양영토를 수호했다. 이들이 방어적 의미에서 나라를 지킨 인물이라면, 장보고는 한·중·일 3국을 넘나들며 해상무역을 주도하고 해상 네트워크를 형성해 바다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신라 시대에 동아시아 해상권을 장악하고 동서양의 무역망을 하나로 연결해 해상 실크로드를 완성했다. 장보고야말로 그 시선을 세계로 확장해 진정 동북아해역을 힘차게 누볐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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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진 마을 주민과 병사가 식수와 빨래터로 사용했다는 장군샘. |
장보고는 역사책을 통해 익숙한데 특히 최수종이 출연한 TV 드라마 ‘해신’으로 한때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미천한 신분이었던 그는 당나라로 건너가 젊은 나이에 무령군 소장을 지냈으며 신라인이 해적에 납치되는 것을 보고 청해진을 설치한 뒤 대사가 됐다. 해적을 소탕하고 서남부 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는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했으나 자신의 딸을 왕비로 삼으려고 하다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한때 동북아해역을 호령했던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가 보기로 하고 청해진 유적이 있는 장도와 장보고기념관, 장보고공원, 장보고어린이공원, 장보고 동상 그리고 이들과 다소 떨어진 곳에 있는 청해 포구 촬영지를 목적지로 정했지만, 부산에서 완도까지 300㎞가 넘는 여정은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길이었다.
■완도 곳곳에 살아 있는 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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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드라마 ‘해신’의 청해 포구 촬영지. |
265개의 섬으로 구성된 완도는 오늘날 흔히 부자 섬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표적인 패류 양식 품종인 전복 생산량은 전국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다시마 70%, 톳 60%, 미역 54%를 생산하는 등 각종 해조류 양식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여기에 매년 국제해조류박람회와 장보고수산물축제를 개최하고 ‘대한민국 청정바다 수도 완도’를 표방하며 해양치유산업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장보고의 후예들이 무역 선단을 이끌고 세계로 뻗어 나가고자 했던 조상의 기질과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하면 억지일까?
아무튼 그 옛날 동아시아 국제 해상무역의 거점항이었던 완도는 오늘날에도 장보고를 브랜드화하고 해양산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예로 장보고기념관, 장보고공원, 장보고어린이놀이공원, 장보고 동상, 장보고대교, 장보고대로 외에도 장보고 이름은 마트, 빌라, 민박집, 인력센터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번 여정에서 다소 의외였던 것은 장보고 동상의 위치였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나의 편견으로 인한 것인데, 장보고 동상이 어린이놀이터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예전 10여 차례 완도를 오가면서 멀리서 늘 봤던 것인 데다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완도 주민의 말에서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던 탓에 부산의 용두산공원처럼 완도를 상징하는 어떤 곳에 있을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라~”했던 생각이 들었나 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영웅을 접하며 성장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그 때문에 번쩍 치켜든 오른손에 칼, 왼손에 교역물품 도록을 들고 배 위에 서 있는 약간 어색한 자세에서 진취적인 기상마저 느끼게 됐다.
■장보고의 해양 개척정신 되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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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도 청해진 유적지. 주변의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나 있다. |
장보고기념관을 중심으로 남쪽에 장보고 동상이 있다면 북쪽의 장도라는 섬에 청해진 유적지가 있다. 장도에 관해 바다를 천연의 해자로 활용한 매우 독특한 형태라고 설명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바다가 천연의 요새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곳은 원래 인근 주민이 밭으로 이용했지만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갯벌이 깎여 방어 혹은 접안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목책(원목열)이 드러나면서 알려지게 됐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3차례에 걸쳐 발굴이 진행돼 복원됐고 출토된 통일신라와 당나라 유물은 장보고 해상활동의 근거지로서 청해진의 실체를 규명하는 기초 자료가 되고 있다.
장보고가 이끌던 선단은 중국 남방지역에 진출해 아랍 상인과 교역하며 이슬람 도자기, 유리 제품 등을 신라와 일본에 공급했고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까지 왕래해 국제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이때 본거지가 됐던 청해진은 일본 하카타(博多)와 중국의 츠산(赤山), 쑤저우(蘇州), 양저우(揚州) 등지를 잇는 동아시아 무역의 중심지로 동남아, 인도 항로, 동아시아 항로를 연결했다. 이를 통해 신라와 일본으로 이어진 세계무역, 즉 해상실크로드를 완성해 해상을 통한 문물 교류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한다. 828년에 설치된 청해진은 장보고가 죽은 지 23년 만에 폐진되고 청해진 사람도 강제로 추방당했다고 하는데, 바다를 통해 세계로 뻗어 나가려 했던 그 힘찬 기세와 찬란했던 영화(榮華)가 힘없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오늘날 바다는 우리에게 여전히, 어쩌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로 다가오고 있다. 여전히 동북아해역의 중심에 있는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중국이 21세기 해양실크로드를 하나의 축으로 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내세워 바닷길을 장악하려 하고, 일본이 섬 늘리기로 해양영토 확장에 집착하는 속내를 제대로 파악해 장보고가 했던 해양 개척정신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곽수경 부경대 HK 연구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