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 회화·조각·설치 등 180여 점과
- 현장기록 가치 담긴 드로잉 선봬
- 부산시립미술관 10월 13일까지
1979년 제1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한 한국인 작가의 이채로운 퍼포먼스가 세계 미술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닥에 쪼그려 앉은 작가는 분필을 바닥에 대고 좌우로 선을 그리면서 전진했다. 그의 두 맨발이 분필 선을 지우면서 뒤를 따랐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를 통해 느림과 시간을 성찰한다는 의미다. 이 독특한 퍼포먼스는 이건용(77) 작가의 작업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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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용-이어진 삶’에서 전시 중인 ‘신체드로잉 87-A-3’.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이 작가는 1970년대 한국 행위 미술, 실험 미술의 도입과 발전에서 중요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1975년 발표한 ‘동일면적’과 ‘실내측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80여 편의 행위미술 작품을 발표했다. ‘달팽이 걸음’ 외에 소지품을 모두 꺼내 연결하면서 작가 자신이 누드가 되는 ‘이어진 삶’, 건빵을 먹는 행위를 반복하는 ‘건빵 먹기’, 그림은 왜 화면을 마주 보면서 그려야 하는가에 의문을 제기하며 화면 뒤에서, 옆에서 또는 화면을 등지고 불편한 자세로 작업한 ‘신체 드로잉’ 등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동시대 한국미술의 흐름에서 주목해야 할 작가를 소개하는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전의 두 번째 순서로 이건용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는 1969년 ST(Space and Time) 미술학회를 결성했고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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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체항 71-2019’. |
전시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흐름의 최전선에 섰던 이 작가의 작품세계 50여 년을 정리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업으로 회화, 조각, 드로잉, 설치, 영상 등 180여 점을 전시 중이다.
전시는 ‘이어진 삶’이란 부제 아래 8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현재부터 과거의 작품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구성됐다. 신작 ‘시방(十方)’은 네 개의 방향, 네 개의 모퉁이, 상하, 즉 열 방향의 상징을 정방형의 전시 공간에 구현했다. 네 개의 방향은 무형물인 공간적 의미에서 접근하고 네 개의 모퉁이에는 4개의 회화를, 위아래는 퍼포먼스 ‘이어진 삶’을 재연했다. 이 공간에서 관객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장소와 객체의 관계는 서로의 소통 속에서 이루어짐을 알게 된다.
조은정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시방은 이건용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이를 통해 다음 전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1970년대 후반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 혹은 중요 작품의 모태가 된 드로잉을 보여준다. 1980~90년대 사회구조와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회화와 설치 작품도 전시돼 있다. ‘장독’을 통해 한국 문화의 정체성과 회고 시스템에 대해, ‘물’을 소재로 통제되고 억압된 사회와 자연재해, 잊힌 기억을 구현했다.
작가는 1975년부터 ‘이벤트 로지컬’이라 명명한 행위 미술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퍼포먼스는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됐으며, 이를 확장한 드로잉들은 현장 기록으로서 가치와 개념의 확장을 보여준다. 작가의 예술적 전성기 시절 선보인 ‘신체 드로잉’은 일정한 제약 속에서의 행위가 평면과 만남으로써 이뤄지며 ‘그린다’는 의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그리는 행위가 소멸할 때 그 흔적은 완결된다. 이외에도 평면 회화의 일루전과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포’ 시리즈,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뿌리가 박힌 지층과 함께 통째로 옮겨온 듯한 대형 설치작품 ‘신체항’, 탈춤을 형상과 색의 움직임으로 파악해 단순화시킨 ‘구조’ 작업 등도 볼 수 있다. 전시는 10월 13일까지. (051)740-4246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