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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31> 서구인의 동아시아 바다여행기

한문성경 들고 동북아에 신문물 전한 귀츨라프 … 유럽에 한글 알리기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15 19:06:37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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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출신 선교사이자 관료로
- 많은 동아시아인 접촉한 인물

- 세 차례 中 동부 해안 탐사기
- 광저우서 발행되는 영문 잡지
- ‘차이니스 레포지터리’에 투고

- 두 번째 여정에서 조선도 방문
- 고대도 머물며 서양 문물 전수
- 주기도문 번역하며 한글 익혀

- 다른 문화에 대한 열린 자세로
- 당시 동양의 모습 생생히 기록

우리에게 여행은 현실 너머의 피안(彼岸)이며, 또 꿈의 현현(顯現)이다.

여기서 잠시 200여 년 전 우리 동아시아의 바다로 넘어 들어왔던 한 서양인의 여정을 살펴보겠다. 우리 현대인이 여행 자체를 단순히 문화 소비로 인식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그 시기 즉 19세기 전반 동아시아 바다를 횡단했던 한 서양 선교사의 궤적을 살피는 것은 여러 가지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근대적 여행의 문화적 함의가 개인 차원의 경험 축적에만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대화적 성격이 내포돼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의 주체들이 상대방 지역과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재구성했으며, 그에 비춰 어떻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조정해 나갔는지 살피는 인식적 거울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거울의 사례로 19세기 초 중국에서 발행된 최초 영문 잡지 ‘차이니스 레포지터리(The Chinese Repository)’와 그 안에 실린 ‘귀츨라프의 중국 동부 해안 탐사기’ 같은 글을 들 수 있다.
   
동아시아 바다를 넘나들며 여행한 귀츨라프가 중국 광둥식 옷을 입은 모습. 오른쪽 그림은 18세기 중국 청나라 황실을 방문한 영국의 매카트니 사절단을 그린 그림이다. 이보고 제공
■‘차이니스 레포지터리’ 네트워크

‘차이니스 레포지터리’는 1832년 5월 광저우에서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 엘리야 브리지먼(Elijah Coleman Bridgman·1801~61년)과 사무엘 윌리엄스(Samuel W. Williams·1812~84년) 그리고 중국 최초 개신교 선교사 영국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ison·1782~1834년) 등이 창간해 1851년까지 20년간 출간된 영문 잡지이다. 이 잡지는 당시 광둥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지역 서양인 네트워크와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그 네트워크는 말라카, 싱가포르, 인도차이나반도, 마카오, 타이완, 류큐, 일본, 조선, 중국 동부 해안 등지를 포괄했다. 이 네트워크에는 상인, 외교관, 군인, 선교사, 여행가는 물론 학교나 병원, 교회 등의 사회활동 단체, 영국과 미국의 학술단체와 협회 등이 광범위하게 속했다. 이들은 말라카와 광동을 거점 삼아 바닷길로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이 잡지를 매개로 백과전서식으로 정보와 자료를 축적하며 내용을 공유했다. 말하자면, 이 잡지는 여행기나 기사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 논문을 통해 이들 지역에 대한 지식 플랫폼의 역할을 담당했다.

■귀츨라프 동아시아 바다 탐사

귀츨라프(Charles Gutzlaff·독일·1803~1851년)는 선교사이자 관료, 지역 언어 전문가이자 이 잡지 주요 필진이었다. 그는 문명과 기독교 전파자 역할을 자임하며, 주로 바다를 건너 많은 동아시아 국가의 현지인과 접촉하고 대화한 인물이다. 그가 ‘차이니스 레포지터리’에 투고한 ‘귀츨라프, 카알, 1832~33년까지 캔톤성으로부터 만주 타타르의 랴오둥에 이르기까지의 항해 일지; 1832~33’(1833년 5월) 와 같은 여행기에 그가 동아시아 바다에서 본 풍경은 생생하게 기록됐다.

그는 동아시아 해역을 세 차례 탐사했다. 1차는 1831년 6~11월, 2차 1832년 2~9월, 3차 1832년 10월~1833년 4월이었다. 그 가운데 두 번째 여정에서 조선에 발을 내디딘 흔적이 충남 보령 앞바다의 고대도(古代島)에 교회와 기념관으로 아직 남아 있다. 그는 1832년 7월 17일 장산에 도착한 뒤 22일 녹도 근해를 거쳐, 26일 고대도에 닻을 내린다. 그는 조선 관리를 통해 외국인으로서 처음 조선 국왕에게 정식 통상을 원하는 서한을 보내고 한문 성경을 비롯해 26종의 책과 서양 물품을 진상하도록 전달했다.

그리고 그 답을 기다리는 동안 고대도에서 주민에게 한문 성경과 전도 문서, 서적과 약품을 나눠주었다. 감자 재배법과 포도주 만드는 법도 전수하면서, 주기도문의 한글 번역을 통해 한글 자음과 모음을 학습한다. 이 시기 배운 한글 정보는 ‘차이니스 레포지터리’ 에 기고돼 유럽인에게 처음으로 전파된다. 이 같은 접촉 상황은 여행기의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매우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귀츨라프가 ‘차이니스 레포지터리’ 잡지에 실어 유럽인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한글.
■‘장원양우상론(張遠兩友相論)’

여행기에서 우리가 다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있다. 낯선 동아시아 바다와 벌이는 사투의 생생한 스케치뿐 아니라 바이터우촨이라 불린 중국의 정크선(junk)에 현지 언어로 번역한 ‘기독교 간이 교리서’를 가득 싣고 항해하며 현지인과 만나는 풍경이다. 귀츨라프가 중국 저장성 저우샨(舟山)군도 해안의 한 사찰에 올라 불교 승려와 나눈 대화를 묘사한 대목에서는 그가 해당 지역 언어에 얼마나 능통했고 또 문화적 수용력의 기초가 얼마나 단단했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우리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 가운데 다수 지적인 이들은 우리가 나누어준 책을 유심히 봤다. 우리가 나누어 준 책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그리스도교도 장(張) 씨와 무지한 이교도 원(遠) 씨 사이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 작품은 애도해 마지않는 고(故) 밀른 박사의 것으로, 매우 적확하며 올바른 주장을 담고 있으며 내내 중국인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책이었다.”(귀츨라프의 여행기) 이 책이 바로 조선에도 한문 문장으로 전해진 기독교 교리서 ‘장원양우상론(張遠兩友相論)’이다.

■낯선 문화를 대하는 자세

미국의 여행문학 전문가 메리 루이스 프랫은 ‘제국의 시선’에서 근대 시기 식민지나 반식민지에 대한 여행기는 “유럽의 독자들에게 일종의 소유라는 감각, 그러니까 탐험되고 침략되고 투자되고 식민화되고 있는 세계의 저 먼 지역을 소유하고 명명할 권리와 그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감각을 심어줬던 것이 사실”이라 말하며 “그 책들은 호기심, 모험심, 흥분 심지어 유럽의 팽창주의에 대한 뜨거운 도덕적 품성을 자극했다”고 비판한다.

귀츨라프의 여행기 또한 ‘차이니스 레포지터리’를 통해 전파되면서, 아시아에 관심이 있거나 그 지역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당시 유럽 또는 미국의 독자 그리고 현지 활동가에게 전 지구적 차원의 기획에 참여하는 주체의 감각을 제공한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의 여행이 개인의 종교적 차원을 넘어 배후의 제국주의적 확장 욕망과 완전히 절연돼 있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 같은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우리가 다시금 되새길 점은 귀츨라프가 중국 남방 양식 정크선에 싣고 항해했던, 한문으로 번역된 교리서가 상징하는 문화적 확장성이다. 그는 대서양과 인도양, 말라카해협과 동남아 해역을 건너 동북아시아 바다까지 건너오면서 자신들의 콘텐츠를 현지 언어와 문화에 맞게 해 들여왔다. 그가 현지 복장을 즐겨 입고, 중국어는 물론 일본어나 조선어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했다는 점은 여행자로서 본질, 즉 다른 문화와 대화 가능성에 대해 열린 자세와 자질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문화 접촉 과정에서 발화자 위치에 맞는 훈련과 대화자의 태도를 유지했다.

   
그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중간지대·중간자’의 정체성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도 꾸준히 마주하는 문화적 혼종이라는 낯섦과 어떻게 대화하며,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지 되묻게 하는 거울이 되어준다.

이보고 부경대 글로벌자율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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