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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16> 문화예술교육 연구자 조영미

홀연히 무대 떠난 춤꾼 … “남 아닌 나를 위한 몸짓 꿈꿔요”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25 19:04:0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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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정적 춤사위 펼치던 무용가
- 기획자 거쳐 문예교육자 변신
- 새로운 영역 낯설고 힘들지만
- ‘예술 뿌리’라는 마인드로 버텨

- 과학·예술 융합 콘텐츠 제작
- 교육 프로그램 논의·실험 반복
- 예술가 창작의 고통 못지 않아
- 아무도 안 간 길 ‘예술고리’ 찾아
- 무대 서는 날 나의 무대 담고파

무대는 꿈의 공간이자 잔인한 공간이다. 보는 이에게는 환상과 스펙터클을 주지만 만드는 이에게는 때로 블랙홀이다. 예술에 대한 열정, 젊음, 명성과 돈, 땀과 눈물 등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과장으로 읽힐지 몰라도 원하는 무대를 실현하기 위해 논 팔고 집 파는 예술가들이 의외로 많다.

“제가 예술가라고 한다면 다른 예술가들에게 큰 실례가 될 것 같아요. 저는 무대 위의 삶을 꾸준히 이어가지 못했어요. 창작 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예술가들을 정말 존경합니다.”

조영미(45)는 누구보다 춤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무대를 거침없이 누비던 현대 무용가다. 부산의 ‘현대무용단 줌’과 뉴욕의 ‘나니첸 무용단’에서 활동했으며 ‘조영미현대무용단’을 꾸리기도 했다. ‘에로스에게 묻는다’, ‘춤추는 마리오네뜨-인연’, ‘통-어울림의 변주’ 등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오랫동안 각인되는 독특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기대와 관심을 한껏 끌던 그의 작품은 어느 날 불현듯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그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무용가에서 문화예술교육 연구자로

   
무용가에서 기획자, 문화예술교육 연구자로 활동하는 조영미가 최근 연구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2011년 9월 14일, 부산시립무용단 기획 담당으로 입사했습니다. 그때까지 줄곧 창작자와 퍼포머(performer)로만 지내 왔는데 기획은 새로운 영역이었죠. 기획자는 창작자와 다른 시각이 필요했습니다. 일정한 규율에 따르는 역할에 몰두하다 보니 춤도 틀과 형식에 맞추어 짜려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재미도 없고 만족할 수도 없었지요.”

입사하기 불과 사흘 전까지 개인 공연을 했으니 인생의 변곡점이었을 만큼 큰 도전인 동시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이기도 했다. 창작자로서의 감각을 기꺼이 내려놓는 일이 도리라 생각했고, 그러한 대가를 치르는 만큼 치열하게 일했다. 5년 1개월 동안이었다.

기획자라는 시간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몸과 움직임으로써 자신을 표현하고 창의력과 공감 능력을 일깨우는 작업이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 샴페인(University of Illinois-Urbana Champaign)에서 안무와 무용 교수법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무용과 연기 전공자를 가르쳤지만, 비전공 청소년을 가르치는 일, 더욱이 단순한 기능교육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의 근본 가치를 구현하는 일은 새로운 영역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체계적입니다. 안무자로부터 도제 방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툴(tool)을 가지고 있죠. 제가 배웠던 방식을 교육에 활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움직임 조각 하나를 창작하여 제시합니다. 트레이닝으로 이 조각을 자신만의 움직임으로 만들고 최종 작품으로 완성하도록 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더 잘 가르치기 위한 열정이 무용이론, 교육이론, 예술경영학, 문화이론 등 다양한 분야를 횡단하며 연구자로서 새롭게 활동하게 되었다. “2015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문화예술교육과 관련된 5편의 연구보고서와 학술지 논문 4편을 썼습니다. 요즘은 무용실기 관련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두렵죠. 하지만 전혀 낯선 영역이 아니라 모두 무용과 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스스로 잘 할 수 있다 응원하며 힘을 냈습니다.”

■교육 콘텐츠 창작!… 다시 무대 꿈꿔

   
무용가로 공연할 때의 모습.
무대를 떠나 기획자, 문화예술교육자, 연구자로서 거쳐 온 시간이 최근 하나의 결실로 이어졌다. 과학과 예술을 융합해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창의예술교육 랩’의 연구 책임을 맡았다.

“지난 5월에 시작해 지금은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온 상태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학습자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협업 체계를 구축하여 집단 지성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창작자로서의 본성과 감각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논의와 실험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매뉴얼화하는 과정이 예술가의 창작적 고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다시 무대를 사유하고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말이었다. 툴에 입각한 체계적인 안무 교육을 받았지만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의 자유롭고 순수한 움직임을 동경하던 안무자의 귀환이 아닌가.

“언어는 춤보다 명확하고 직선적이지만, 춤은 언어보다 더 명쾌하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춤으로는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춤의 매력입니다. 다시 무대를 만들게 된다면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작품이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한 작품을 소담하게 담아내고 싶습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늘 ‘인연’이었다. ‘손끝과 머리끝에서 흘러나온 에너지가 긴 라인을 이루며 뻗어 나간다. 두꺼운 선이 아니라 가볍고 투명한 여운을 남기며, 내뿜는 에너지보다 다시 가지고 오는 에너지가 더 중요하다’는 몸짓에 대한 철학도 인연에 가 닿는다. 어떤 인연이 그를 무용가이자 기획자, 문화예술교육자, 연구자로 이끌었을까. 조영미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떠났고, 그 길을 연결하는 예술의 고리를 찾아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 길의 어디쯤에서 소박한 자신만의 무대를 꿈꾸는 그를 무엇이라 부른들 무슨 상관이랴. 인연의 발자국마다 전에 없던 꽃을 피워냈으니. 

 공연기획자·부산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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