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예술가·마을 장인 힘 합쳐
- 작업터 재조명 설치작품 등 전시
- 28일까지 ‘새로신암’ 프로젝트
지난 2일 부산 부산진구 신암로 155번길. 과거 부산 신발·재봉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산업의 쇠퇴와 함께 공동화가 진행 중인 이곳은 여느 원도심 지역과 다를 바 없었다. 오랜 세월을 한자리에서 버텼을 것 같은 3, 4층짜리 낡은 건물이 연달아 있고, 좁은 골목엔 차량과 행인이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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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부산진구 신암로 155번길에서 열리고 있는 ‘새로신암’ 전시장 모습. 리 프로젝트 제공 |
그러나 골목을 조금만 둘러보면 옛 시설을 살린 미술 작품 전시장이 곳곳에 숨어 있다. 간간이 들리는 재봉틀 소리와 구두 굽 못질 소리 등 지나간 역사의 소리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건물의 담벼락에도 작가의 작품이 채워져 있다.
부산지역 청년 미술 작가 10명으로 구성된 예술가 팀 ‘리 프로젝트(RE Project)’는 오는 28일까지 이곳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 ‘새로신암’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수십 년 동안 신발·재봉 산업을 생업으로 삼아온 장인과 작업 터를 재조명하고, 새로운 전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참여 작가는 강민기 박한샘 신누리 유은석 정은율 조나경 조정현 황인지 등 8명. 설치와 영상, 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신암마을 내 4곳의 전시공간에서 선보인다.
기획을 맡은 윤보람 큐레이터는 “부산의 청년 예술가들과 마을의 신발, 봉제 장인이 함께 지역적 특성을 살린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을 시도하고자 기획했다. 여러 매체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마을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기 위한 감각적인 작품을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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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누리 작가의 ‘지속가능성과 변화(Sustainability and Change)’. |
전시는 마을 초입에 위치한 갤러리형 카페인 ‘세로 커피’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선 전통 산수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국적 산수화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박한샘 작가의 대형 작품과 신암이라는 마을이 과거의 번영에서 이제는 잊혀가는 마을로 전환되는 과정을 표현한 유은석 작가의 조각을 선보인다. 나머지 전시장 3곳은 빈 공장과 창고를 활용했다. 신누리 작가는 “처음 신발공장을 방문했을 때 43년의 세월을 보낸 신발 주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삶의 파편들이 위태롭게 서 있으면서도 새로운 형태로의 탄생을 준비하는 것을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황인지 작가는 1960~70년대 당시 이곳에서 일했던 여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들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지만 사회에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던 상황을 회화 작품으로 선보였다. 강민기 작가의 ‘변질된 상징’은 그물(Net)을 통해 사회의 지배체제로 사라져버린 신암의 문화를 은유했다.
정은율 작가는 전시장을 연결하는 골목길 곳곳에 다양한 포스터를 내걸었다. 그는 “신발을 만드는 장인들을 인터뷰한 내용과 작업장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노동과 예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조정현 작가의 ‘눈먼 흐름과 결과물’은 과거와 현재가 충돌했을 때 맞닿아 나타나는 혼돈의 상황을 우레탄 조각과 동물 박제를 사용해 표현한 작업이다. 조나경 작가의 1분짜리 영상작업은 이곳 신발 공장의 작업 풍경과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신발 부자재를 활용한 책갈피, 에코백, 엽서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팝업숍도 선보인다. 정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