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혀둔 작품 레퍼토리화 의도
- 서사 담긴 감성 드라마는 물론
- 고정관념 비튼 유쾌한 공연 연속
- 조건 없이 뭉친 ‘작은 춤 축제’
- 젊은 세대 새로운 연대 반가워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린 ‘리프레시(REFRESH)’는 ‘3일간 3개 도시 9개 단체가 펼치는 작은 춤 축제’를 위한 민주공원 상주단체 댄스 프로젝트 에게로의 기획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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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8일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린 댄스 프로젝트 에게로의 기획공연 ‘리프레시’에 참여한 스트레인지 댄스 컴퍼니 이상훈의 ‘Flow’(왼쪽), POD 댄스 프로젝트 이종윤·이진우의 ‘공차적응’. 사진가 박병민 제공 |
9개 단체를 한자리에 모으는 기획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춤판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단체들의 일정 조정부터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기획에서는 단체들을 유인할 기획 요소가 필요하다. 주로 행사의 역사나 권위를 말하는데, 이런 요소가 약하다면 출연료라도 많아야 한다. 그런데 에게로는 가진 것 하나 없이 이 엄청난 일을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치렀다. 과정의 어려움은 에게로의 몫이었고 우리는 사흘간 다디단 열매를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춤은 실연과 동시에 소멸하는 특성 때문에 레퍼토리화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 공연은 묵혀 둔 작품을 재생해 레퍼토리화하려는 의도로 기획됐다. 멀게는 2012년부터 2015년에서, 2019년 9월 초연까지 9개 참가작은 어느 하나 뒤처지는 작품이 없었다. ‘몸-움직임’에 천착한 이용진의 ‘Chain Reaction’과 이상훈의 ‘Flow’에서 수렴·확산하는 ‘몸-움직임’은 서사 없이 단순화한 춤의 형식미를 보여주었다. 반면 김영찬의 ‘먼지’와 허성준의 ‘사막을 건너는 히치하이크’는 서사를 담은 극적 구성을 엮어 보였다. 최우석·배민우의 ‘무의미한 이야기’와 이주성의 ‘전라도’는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비틀어 긴장한 관객의 의식을 한순간에 무너트렸고, 김요셉의 ‘창백한 푸른 점’과 이언주의 ‘지독했던 오후’, 이종윤·이진우의 ‘공차적응’에는 세계를 대하는 자신만의 시각과 패기가 묻어있었다.
각각의 개성과 함께 9개 작품에는 삶을 대하는 거시적 미시적 태도 차이가 나름의 방식으로 녹아있다. 김영찬의 ‘먼지’는 초연에서 먼지를 움직임을 유발한 소재로 다루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존재와 관계를 성찰하는 매개로까지 먼지의 의미를 확대하면서 한편의 감성 드라마를 완성했다. 김요셉의 ‘창백한 푸른 점’은 다양하고 치열한 인간 삶과 자연의 변화를 담은 움직임과 어둠 속 불빛을 대비한다. 여기서 거시적 시각은 어둠 속 작은 불빛들의 움직임이다. 춤꾼의 격렬한 움직임과 땀은 오히려 미시계이며 거시적 시각에 수렴되면 창백한 작은 빛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주적 시각에서 하찮아 보이는 인간 삶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거시든 미시든 그것을 인식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이주성의 ‘전라도’에서도 독특한 시각으로 삶을 관조하는 자세가 있다. ‘전라도’는 전라도 여행이 남긴 심상의 흔적이라서 굳이 전라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자신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아슬아슬한 여정을 함께한 대걸레 자루 ‘봉숙이’와의 관계는 인간과 사물의 구분을 넘어서는 관조적 삶의 경지다. 최우석·배민우는 ‘무의미한 이야기’에서 춤·사랑·관계의 심각함과 무게를 기분 좋게 비튼다. 이들의 엉성하고 천진해 보이는 춤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 있는 무의미’ 혹은 ‘무의미의 가치’가 담겨있다.
기획자 이용진은 단체들이 기획 의도를 듣고 흔쾌히 달려왔다고 말한다. 그들은 조건에 개의치 않고, 자신처럼 버티고 춤추는 이들을 만나 동지애를 느끼고 연대하고 싶어서 달려왔다. 그렇게 해서 기성의 권위와 역사에 기대지 않은 그들의 역사가 시작됐다. ‘리프레시’는 잠자던 작품을 소생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기성 춤판의 변화 양상까지 반영한다. 사흘 동안 기성의 수직적 권위가 힘을 잃고 새로운 세대의 연대가 부상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작품 못지않게 기획 의도와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내년에도 그 후에도 절대 작지 않은 이 ‘작은 춤 축제’가 계속되기 바란다.
춤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