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BIFF 리뷰] ‘패밀리 로맨스’

실재를 압도하는 달콤한 허구, 그 기묘한 역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07 19:14:36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베르너 헤어조크는 탐험가이다. ‘아귀레, 신의 분노’(1972)와 ‘피츠카랄도’(1982)에서 아마존의 정글을 헤매고, ‘퀸 오브 데저트’(2015)에선 사막의 풍광을 훑었으며, 3D 다큐멘터리 ‘잊혀진 꿈의 동굴’(2010)에선 선사시대의 흔적을 되짚곤 했다. 오지를 찾아 돌아다니던 그의 카메라는 이제 바깥을 향한 관심을 거두고 세속도시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헤어조크의 눈에는 일상의 공간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삶의 양태야말로 탐구와 모험의 대상으로 비치게 된 모양이다. ‘사이버 세상에 대한 몽상’(2016)에서 인터넷과 가상현실이 실제 삶과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던 헤어조크는 근작 ‘패밀리 로맨스’(2019)에서 일본 도쿄로 건너간다.
영화 ‘패밀리 로맨스’ 스틸. BIFF 제공
영화는 주인공 이시이 유이치가 12세 소녀 마히로를 만나 요요기 공원의 벚꽃을 함께 구경하며, 자신이 오래전 곁을 떠난 아버지임을 밝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이어 우리는 청구서를 내미는 행동을 통해 이시이가 마히로의 친아버지가 아니며 마히로의 어머니가 그녀를 위해 고용한 일종의 배우라는 걸 알게 된다. ‘패밀리 로맨스’는 대역을 제공하는 서비스 대행업체이며, 이시이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정체성을 바꾼다. 철도회사 직원에게 쏟아지는 상부의 질책을 대신 받아주는가 하면, 결혼을 준비 중인 가족에게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를 대신할 대역 아버지를 제공하고, 복권 당첨이 소원인 중년 여성에게는 거짓 복권 당첨 이벤트를 열어주며, SNS 명사가 되고자 하는 여성을 위해 가짜 파파라치를 연기한다.

‘패밀리 로맨스’의 핵심은 실재와 허구 간의 기묘한 역전(逆轉)에 있다. 달콤한 허구는 실재를 압도한다. 이시이의 고객은 실제 삶에서 이루지 못하는 행복을 연극으로나마 누리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 존재하지 않는 환상에서 삶의 만족감을 얻는 인간군상의 모습은 일말의 슬픔을 동반한다. 삶은 점점 실체감을 잃고 아스라한 허깨비가 되어간다.

로봇 호텔을 방문한 이시이는 인간의 외형을 하고 손님을 맞는 로봇 종업원과 어항 속의 로봇 물고기를 망연히 바라보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과 같다고 느낀다. 인간과 물고기가 로봇으로 대체되듯 가족 또한 얼마든지 대역으로 대신하게 된 세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관계 또한 거래의 대상이 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진풍경을 헤어조크는 일체의 내레이션을 배제한 채 가만히 응시한다.

상냥하고 배려심 깊은 아버지를 연기하는 이시이를 두고, 마히로의 어머니는 자신이 고용한 ‘임대’ 남편과의 ‘실제’ 결혼을 꿈꾼다. 이대로 실제와 가상의 경계선은 무너지고, ‘즐거운 나의 집’의 이상은 현실이 될 것인가?

제안을 거절한 이시이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문안으로 들어서길 망설이며 밖에서 서성인다. 그리고 반투명 유리 너머로 흐릿한 어린아이의 형상이 드러난다. 이 집은 과연 이시이의 진짜 가족이 사는 집일까? 아니면 이 집 역시 ‘패밀리 로맨스’의 업무를 위한 또 다른 연극의 무대인 것일까? 가족주의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헛것의 작용이 실제를 움직이는 세속의 요지경을 비춘 헤어조크는 즉답을 피하고, 나머지를 관객의 판단에 맡긴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정규반 신입생 52명 뿐인 부산미용고, 구두로 폐쇄 의사 밝혀
  2. 2AG 축구 빼곤 한숨…프로스포츠 몸값 못하는 졸전 행진
  3. 3국제신문 사장에 강남훈 선임
  4. 49년새 우울감 더 커졌다…울산·경남·부산 증가폭 톱 1~3
  5. 5부산 중구 ‘1부두 市 문화재 등록 반대’ 천명…세계유산 난항
  6. 6시민사회가 주도한 세계 첫 국가공원…스웨덴 자랑이 되다
  7. 7“용맹한 새는 발톱을 숨긴다…” 잠행 장제원의 의미심장한 글
  8. 8주차 들락날락 사고위험 노출…사유지 보호장치 강제 못해
  9. 9용산 참모 30여 명 ‘총선 등판’ 전망…PK 이창진·정호윤 등 채비
  10. 10‘삐약이’서 에이스된 신유빈, 중국서 귀화한 전지희
  1. 1“용맹한 새는 발톱을 숨긴다…” 잠행 장제원의 의미심장한 글
  2. 2용산 참모 30여 명 ‘총선 등판’ 전망…PK 이창진·정호윤 등 채비
  3. 39일 파리 심포지엄…부산엑스포 득표전 마지막 승부처
  4. 4국정안정론 우세 속 ‘낙동강벨트’ 민주당 건재
  5. 5김진표 의장, 부산 세일즈 위해 해외로
  6. 6추석 화두 李 영장기각…與 “보수층 결집” 野 “총선 때 승산”
  7. 76일 이균용 임명안, 민주 ‘불가론’ 대세…연휴 뒤 첫 충돌 예고
  8. 8울산 성범죄자 대다수 학교 근처 산다
  9. 9진실화해위, 3·15의거 참여자 진실규명 추가 접수
  10. 10한 총리 여론조작방지 TF 구성 지시, 한중전 당시 해외세력 VPN 악용 접속 확인
  1. 1센텀2지구 진입 ‘반여1동 우회도로’ 2026년 조기 개통
  2. 2"오염수 2차 방류 임박했는데…매뉴얼 등 韓 대응책 부재"
  3. 3'실속형 모델' 갤럭시S23 FE 출시...3배 광학줌 그대로
  4. 4서울~양평 고속도로 타당성 조사 다시 시작됐다
  5. 5‘손 놓은’ 외국인 계절 근로자 관리… 5년간 1818명 무단이탈
  6. 6BPA, 취약계층에 수산물 선물
  7. 7기름값 고공행진에…정부, 유류세 인하 연장 가닥
  8. 8올 1~3분기 에코프로 이동채 전 회장, 주식증가율 증가액 1위
  9. 9“소비자 부담 덜어 달라”… 농식품부, 우유 업계에 협조 당부
  10. 10KRX, 시카고에서 'K-파생상품시장' 알렸다
  1. 1정규반 신입생 52명 뿐인 부산미용고, 구두로 폐쇄 의사 밝혀
  2. 2국제신문 사장에 강남훈 선임
  3. 39년새 우울감 더 커졌다…울산·경남·부산 증가폭 톱 1~3
  4. 4부산 중구 ‘1부두 市 문화재 등록 반대’ 천명…세계유산 난항
  5. 5시민사회가 주도한 세계 첫 국가공원…스웨덴 자랑이 되다
  6. 6주차 들락날락 사고위험 노출…사유지 보호장치 강제 못해
  7. 7함안 고속도로서 25t 화물차가 미군 트럭 들이받아…3명 경상
  8. 8‘킬러문항’ 배제 적용 9월 모평, 국어·영어 어렵고 수학 쉬웠다
  9. 9“을숙도·맥도 생태적·역사적 잠재력 충분…문화·예술 등과 연대 중요”
  10. 10광반도체 기술자로 창업 쓴 맛…시설농사 혁신으로 재기
  1. 1AG 축구 빼곤 한숨…프로스포츠 몸값 못하는 졸전 행진
  2. 2‘삐약이’서 에이스된 신유빈, 중국서 귀화한 전지희
  3. 3우상혁 높이뛰기서 육상 첫 금 도약
  4. 4남자바둑 단체 우승…황금연휴 금빛낭보로 마무리
  5. 5임성재·김시우 PGA 롱런 열었다
  6. 6LG, 정규리그 우승 확정…롯데의 가을야구 운명은?
  7. 75년 만의 남북대결 팽팽한 균형
  8. 8주재훈-소채원, 컴파운드 혼성 단체전 은메달
  9. 9롯데, 포기란 없다…삼성전 15안타 맹폭격
  10. 10[속보] 한국 바둑, 남자 단체전서 금메달
우리은행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산삼 음식
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토기 큰 항아리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2000년 역사 로마의 흥망성쇠 外
세상의 평화는 밥상서 시작된다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환희/전용신
가을바람 /임종찬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마스크걸’ 이한별과 고현정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달짝지근해: 7510’의 유해진과 김희선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각기 다른 장르 韓영화 4파전…추석 누가 웃을까
OTT와 경쟁 이길 수 있나…영화티켓 인하 논의할 시점
일인칭 문화시점 [전체보기]
손민수가 2년 전 약속한 협연 무대, 관객과 로비인사 재개도 감개무량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잠’ 은밀히 감춘 문제의식…웰메이드 공포물의 표리부동 미덕
‘원자폭탄의 아버지’ 삶과 고뇌…비극적 아이러니에 관한 통찰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3년 10월 4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3년 9월 27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그레이트풀 캠프 참관기
나는 솔로 16기-돌싱특집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3년 10월 4일(음력 8월 20일)
오늘의 운세- 2023년 9월 27일(음력 8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먼저 세상을 버린 벗을 그리워하며 시 읊은 조선 전기 이행
휴가 받아 고향에서 추석 쇠는 즐거움을 노래한 오숙
  • 맘 편한 부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