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올해는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의 방문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한국과 부산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놀라면서 오랫동안 성찰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들려줬다. 또 위기를 겪고 재도약을 다짐한 BIFF에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국제신문은 거장 두 명을 만나 그들의 영화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른의 부재’ 코스타 가브라스
- “권력층이 당신 인생 바꿔도 되는지 묻고파”
- 86세에도 건재한 정치영화 대부
- 신작서 그리스 경제 위기 다뤄
- “한국영화, 독창성 있고 독특…프랑스서도 열혈 마니아 많다”
“몇몇 사람이 당신 인생을 좌우하는 것에 동의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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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영화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진지하게 질문을 듣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세계적인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86) 감독이 신작 ‘어른의 부재(Adults in the room)’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그리스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가브라스 감독은 ‘제트(Z)’(1969)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의문의 실종’(1982)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어른의 부재’는 감독의 고국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다룬 작품이다. 전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회고록을 각색해 재정 위기에 빠진 그리스 정부와 구제금융 대가로 긴축을 요구하는 유럽연합의 대결을 리드미컬하게 그렸다.
가브라스 감독은 “2010년부터 자료 조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뭔가 빠져있다는 생각에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을 만났다. 당시 책을 쓰고 있던 그의 녹취 자료 등을 참고했고 회고록을 읽은 뒤 조사가 끝났다”고 설명했다.
제목은 “이 방엔 어른이 필요하다”는 극 중 대사에서 따왔다. 그리스와 유럽연합의 회담 당시 참석자였던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IMF 총재가 실제 한 말이다. 가브라스 감독은 “어른은 인생을 알고 남을 존중하고 인간적인 감수성을 가진다는 의미의 메타포다. 라가르드 전 IMF 총재는 그리스가 채무 상환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갚으라는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 말이 안 되고 이상하고 비윤리적이라는 걸 간파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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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의 부재’ 스틸. BIFF 제공 |
그는 정치를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만들었다. “제 영화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영화가 다 정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정치인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 자체가 정치라고 봅니다. 우리 모두 권력을 갖고 있죠. 서로 상대적인 권력을 가진 피라미드 구조가 있고 권력 행사로 행복해지는 사람과 불행해지는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죠. 제 영화는 권력층이 우리 시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담았죠. 정계로 오라는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저는 현재 순간에 충실히 무조건 제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든다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가브라스 감독은 2009년 이후 10년 만에 다시 BIFF를 방문했다. 그는 “영화제가 더 커지고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도 BIFF는 주요 영화제로 손꼽히고 있다. 영화제가 위기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와보니 위기를 겪은 뒤 벗어난 것을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한국영화를 열정적으로 사랑해 시네마테크에서 한국영화를 많이 소개하고 상영한다. 프랑스 내에서도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마니아층이 많다. 한국영화는 독창성이 있고 독특하다. 한국의 뼈아픈 역사가 가져온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브라스 감독은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의지도 드러냈다. “불행히도 돈이 점점 중요해지고 개인주의가 늘어가고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나만 챙기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대기업도 바뀌어야 합니다. 새로운 세대가 반발하고 이런 것을 문제시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영화는 세상을 바꿔놓고 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영화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돼 감독의 자유도 줄었습니다. 신세대 감독이 이런 현실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미스터 존스’ 아그네츠카 홀란드
- “진실을 찾아 나선 언론인 알리고 싶었다”
- ‘토탈 이클립스’ 감독으로 유명
- 스탈린 정권 실상 세상에 알린 가렛 존스 기자 실화 바탕 영화
- “후배 여감독들, 세상과 싸워라”
“언론인의 용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지금 사회는 양극화되고 가짜 뉴스가 판치면서 진정한 저널리즘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언론인이 용기를 가지고 진실을 찾아 나서고 사실을 확인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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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이 인터뷰에서 “여성 감독들은 서로 돕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수현 선임기자 |
폴란드 출신 여성 거장 아그네츠카 홀란드(71) 감독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아이콘 섹션에 신작 ‘미스터 존스(Mr. Jones)’를 선보였다. 국내에는 1995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토탈 이클립스’를 연출한 감독으로 잘 알려진 그는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골든글로브 등을 수상했고 ‘유로파 유로파’ ‘어둠 속에서’ ‘성난 추수’ 등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인 ‘미스터 존스’는 구소련 스탈린 정권의 전체주의 체제 실상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기자 가렛 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1933년 소련으로 취재를 떠난 영국 웨일스의 젊은 기자 존스는 ‘노동자의 낙원’이라는 선전과 달리 기근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우크라이나의 참혹한 현실을 목도한다.
홀란드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든 배경에 대해 “전체주의 체제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관심이 많았다. 스탈린 정권에서 기근으로 인한 희생은 굉장히 비극적인 사건인데 잘 알려지지 않고 잊히고 있어 기억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는 포퓰리즘으로 독재 체제가 부활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전체주의 체제의 반인륜적인 범죄를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적 의제가 나오면 진실된 정보를 흔드는 가짜뉴스가 양산되고 있다. 언론인이 용기를 가지고 진실을 찾아 나선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 사회와 정치의 양극화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언론만 찾는다. 현대 정치에서 가짜뉴스나 프로파간다는 너무나 중요하고 인터넷까지 더해져 가속도가 붙고 있다. 영화를 통해 부패, 정치인의 자기 이해 추구, 사회적 무관심이 합쳐지면 굉장히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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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 존스’ 스틸. BIFF 제공 |
홀란드 감독은 ‘카핑 베토벤’ 등 영화뿐 아니라 넷플릭스의 ‘하우스 오브 카드’, HBO의 ‘더 와이어’ 등 TV 시리즈도 활발히 연출하고 있다. 그는 “TV 시리즈는 정치·사회적 주제와 혁신적인 스토리텔링을 시도하고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는 기회가 된다. 또 청년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보기 때문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넷플릭스 같은 유통 형태는 미래를 선점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배급이 어려운 작은 영화가 선보일 공간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홀란드 감독이 부산을 방문한 것은 2013년 ‘어둠 속의 빛’ 이후 두 번째다. “BIFF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화 축제로 유럽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 친구 감독들이 초청돼 온 적도 있고요. 유럽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BIFF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화제 기간 아시아 영화를 만나는 기회도 됩니다.”
후배 여성 영화 감독에게 조언도 남겼다. “젊은 시절에는 공산주의라는 하나의 적과 싸웠지만 서방에서 일하다 보니 여성 감독에게 유리천장이 있는 걸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싸워야 합니다. 서로 돕는 연대도 필요합니다. 현재 할리우드도 스스로 무엇을 볼지 선택하는 여성 관객을 중심으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변화는 진행 중입니다.”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