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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좋아하는 이야기보다 ‘갑갑한 영화’ 만드는 게 제 몫”

‘포럼 비프’ 이창동 감독

  • 국제신문
  •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  |  입력 : 2019-10-10 19:34:3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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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강연
- 젊은 감독·제작자 홀 가득 메워
- “요즘 영화 흥행코드만 집중
- 창의성 위기 고민해야 할 때”
10일 부산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포럼 비프에서 이창동 감독이 ‘시네마 : 삶의 균열과 재생’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박수현 선임기자
10일 해운대구 센텀시티 부산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이창동(사진) 감독의 강연 현장. 세미나홀을 가득 메운 젊은 영화감독과 제작자는 이 감독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기록하며 강연 내용에 집중했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이 감독은 ‘시네마 : 삶의 균열과 재생’을 주제로 영화, 삶, 역사에 대한 통찰을 풀어놨다.

이날 행사는 부산국제영화제(BIFF) 지석영화연구소가 개최한 ‘포럼 비프’의 하나로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이 감독의 기조 발제를 시작으로 대담, 패널토론을 통해 한국 영화사를 균열과 충돌, 공백의 관점에서 다뤘다.

이 감독은 “아시아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 고 김지석 씨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한국영화의 출발을 알린 ‘의리적 구토’(1919년)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민족수난사를 다룬 명작 ‘아리랑’(1926), ‘오발탄’(1961) 등 한국 영화사를 빛낸 작품을 언급하며 한국 영화 100년사를 되짚었다.

이 감독은 “영화는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을 포착하고 그 속에서 보편성, 필연성을 찾아내는 매체다. 역사 속에 숨은 집단의 욕망과 무의식을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며 “즉, 개인적·사회적 삶의 균열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이며, 균열의 미학이 한국 영화사의 전통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영화의 위기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외화 직배로 위기를 맞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며 문화계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기를 끌 만한 흥행 코드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전에도 본듯한 비슷한 소재에 식상한 극 전개가 반복되면서 관객이 흥미를 잃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감독은 “한국영화의 위기는 곧 창의성의 위기”라며 “창의성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 산업 자체가 성장했기 때문에 젊은 영화인이 굳이 창의성에 도전하지 않아도 작업이 가능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사의 운명은 영화 매체의 운명과 같이 한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할 때다”고 강조했다.

소설가 출신인 이 감독은 1993년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박광수 감독·1993)의 조연출로 출발해, 1997년 연출 데뷔작 ‘초록물고기’를 선보였다. 이후 2002년 ‘오아시스’와 2010년 ‘시’로 베니스영화제와 칸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과 각본상을 받았으며,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지난해 그가 연출한 ‘버닝’이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 부문에 진출해 화제가 됐다.

그의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직접 다루기보다 격변의 주변부, 소시민의 부서진 일상을 다룬다는 지적에 대해 이 감독은 “영화 또는 서사가 어떤 방식으로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가는 어렵지만 본질적인 질문이다. 어린 시절 겪은 가난 때문에 소시민의 고통이라는 게 이데올로기나 정치적인 주장처럼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아닌 매우 복잡한 것임을 체득했다. 관객이 좋아하는 아이템도 잘 알고 있고 작품으로 만들 수 있지만, 제 몫은 아니다. 갑갑한 사람들의 갑갑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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