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BIFF 폐막작인 ‘윤희에게’는 윤희와 준이라는 두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된다. 조카 준의 방을 정리하던 고모는 탁자 위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발견한다. 수신자의 이름을 확인한 고모는 조카 몰래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홋카이도에서 부친 편지는 바다를 건너 한국에 도착하지만,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은 윤희가 아닌 그녀의 딸 새봄이었다. 호기심에 편지를 뜯어본 새봄은 이제껏 몰랐던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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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에게’ 스틸. BIFF 제공 |
‘윤희에게’는 임대형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 속의 영화라는 독특한 형식과 죽음을 앞둔 중년 남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연출력으로 주목받은 데뷔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로 BIFF 넷팩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임대형 감독은 두 번째 작품으로 BIFF 폐막작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윤희에게’는 어긋난 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이자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성장 영화다. 그런데 어긋난 인연이 제자리를 찾고 상처받은 자아가 회복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어긋난 편지였다. 우연의 중첩이라는 판타지 영화를 연상케 하는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섬세하고 진중하다. 이런 전개를 가능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배우들이다. 비밀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살아가는 윤희 역의 김희애와 남몰래 엄마의 상처를 다독일 계획을 세우는 새봄 역의 김소혜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요소다.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기주봉이 연기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냈던 임대형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연기자들의 역량을 십분 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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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은 윤희이지만, 사실상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인물은 새봄이다. 윤희와 새봄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처럼 보인다. 윤희가 우울하고 예민한 탓에 주위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인물이라면, 새봄은 십 대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인물이다. 또한 버려진 물건 하나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남몰래 엄마가 옛 연인과 재회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정도로 담대하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새봄이 엄마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때 새봄처럼 밝고 담대하고 섬세했던 윤희는 왜 주위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그 해답의 단서는 윤희와 비밀을 공유했던 준의 말을 통해서 드러난다. 준은 료코라는 인물에게 “여태까지 숨기고 살아온 게 있다며 앞으로도 계속 숨기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윤희와 준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벽을 만들고 그 안에 숨어들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준의 집 주변에 쌓여있던 눈더미는 윤희와 준의 얼어붙은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벽 바깥에서 외로움을 호소해왔지만, 정작 벽 안에 몸을 숨긴 윤희와 준의 외로움은 아무도 헤아리지 못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차가운 벽을 녹아내리게 만든 것은 ‘새봄’이었다.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했던 두 사람은 새봄 덕분에 마침내 재회하고, 얼어붙은 채 살아가던 윤희는 그 만남 이후에 비로소 희미한 웃음을 보여준다. 김이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