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개월 작품 전시 사례비 4만 원
- 오랜 연습 끝 춤무대 선 후배에
- 턱없이 낮은 액수 제공한 선배
- 예술가도 엄연한 비물질 노동자
- 원로·새내기 등 똑같이 적용되고
- 이득 얻는 쪽서 비용 지불해야
- 부당함 알면서 악습 따라선 안돼
지난 21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시에 약 5개월간 작품을 전시한 작가가 4만 원이 조금 넘는 사례를 받았다는 제보가 있었다. 실제로 지난 3월 문체부는 미술창작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주는 보상으로 ‘2019 미술창작 대가 기준(안)’을 공시했다. 이 기준은 1일당 금액에 전시 기간을 곱하여 참여 작가 수대로 나누어 지급하는 방식인데, 작가가 많을수록 한 사람당 지급 금액이 줄어든다. 문제가 된 전시에 책정된 예산은 하루 5만 원이고 참여 작가는 200명이었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8350원인데, 출품 사례가 하루 25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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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뮤지컬 ‘눈의 여왕’ 무대 인사 모습.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이 없다. 사진가 박병민 제공 |
이보다 앞서, 한 춤꾼이 SNS에서 상대를 지목하지 않은 채 격한 감정을 쏟아 낸 일이 있었다. 이 춤꾼은 평소 예의 바르고 힘든 공연도 마다하지 않고 참여하는 이였다. 사람들은 누구를 향한 것인지 궁금해했고, 그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SNS의 글은 얼마 후 본인이 내렸지만, 혹시 대상이 자기일까 걱정하는 몇 사람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는 웃지 못할 소동이 있었다. 내용은 후배 춤꾼이 수개월 연습을 거쳐 다른 지역까지 가서 두 번이나 공연했는데, 말도 안 되는 액수의 사례비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춤을 추는 이가 후배를 그렇게 대우했다는 것이 그를 더욱 화나게 했다. 춤꾼이 춤꾼을 그렇게 대하는데 어디에서 정당한 사례를 말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두 사례는 예술가에게 정당한 사례비를 지급하지 않아서 일어났다. 예산은 없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면 참여는 예술가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사전에 예술인에게 정확한 사례비를 밝히고 합의하는 것이 예술계 표준계약서의 목적이다. 하지만 두 경우 원칙을 무시했다. 첫 번째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과 그것의 부당함을 알면서도 기계적으로 적용한 행정처리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두 번째는 무용계의 잘못된 관례를 답습한 경우다.
대학을 거치는 춤꾼 대부분의 첫 무대는 교수나 동문 춤패의 공연이다. 이 경우 학생에게 돌아오는 출연료는 없다. 공연을 통해 배운다는 이유 때문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학생을 공연 연습에 오랜 시간 가두는 것은 다양한 것을 배워야 하는 학생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 한 가지, 그런 공연은 정식 교과에 포함되지도 않고, 공연으로 얻는 작품· 경력·명예 등은 학생의 몫이 아니다. 이득을 얻는 쪽에서 비용을 당연히 지불해야 한다. 학생은 이득을 보는 입장이 아니며, 오히려 공연에 필요한 소모품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도 심한 경우 의상비마저 떠넘긴다. 표준계약서는 학생에게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사례는 흔한 일이라 잘못된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관례로 굳어져, 당한 자가 어느 정도 위치에 이르면 같은 방식으로 후배나 제자를 대한다. 예전 한 무용단 기획을 맡았을 때, 외부 사람이 우리가 젊은 춤꾼에게 출연료를 지급한다는 이유로 ‘버릇을 잘못들이고 있다’는 말을 한다고 전해 들었다. 아픈 이야기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이고 현실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예술가는 비 물질노동을 하는 노동자다. 비 물질노동도 물질노동과 같이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무대에 오를 만큼 춤추기 위해서 보낸 시간과 비용은 정당하게 보상받아야 하고, 춤꾼이 생산하는 예술의 공공적인 가치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새내기 춤꾼이나 원로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개인·기관·예술 단체 모두가 지켜야 하는 철칙이다. 우리 사회는 느리게나마 춤과 춤꾼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지만, 무용계는 춤추는 것에 대한 정당한 사례를 외면하는 경우가 여전히 남아있다. 며칠 전 전화기 너머 춤꾼의 서글픈 분노가 아직도 생생하다. 춤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