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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타파 공감대…세대·남녀 간 이해 계기 됐다”

논란의 중심 영화 ‘82년생 김지영’ 난 이렇게 봤다

  •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
  •  |   입력 : 2019-11-12 19:21:26
  •  |   본지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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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킹맘 가정·사회서 죄인 취급
- 남성들 박탈감에 ‘여혐’ 표출
- 곳곳에 뿌리깊은 가부장문화 탓
- 능력보다 인맥 중시 직장문화
- 여성의 능력 저평가 고착화시켜
- 서로서로 공감하려 노력하면
- 이런 갈등도 긍정적 작용할 것

2016년 발표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제도적 성차별이 사라진 시대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성차별을 그려내 출간과 동시에 논란과 화제와 중심에 섰다. ‘성차별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는 평가와 ‘과도한 피해 의식의 결과물’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지난달 23일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자 한쪽에서는 ‘영혼 보내기 운동’(관람 없이 예매만으로 관객 수를 올리는 행위), 반대쪽에선 ‘평점 테러’를 하는 등 소설 출간 당시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 11일 국제신문 편집국에서 고윤정 노진숙 유영현 이승경 김민정 김삼수(왼쪽부터) 씨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국제신문은 지난 11일 각계 남녀 6명과 함께 ‘82년생 김지영, 나는 이렇게 봤다’ 토론회를 열고 세대·남녀 갈등을 포함, 혐오사회로 치닫는 우리 사회 현실을 들여다봤다. 미혼 남녀인 유영현(28)·김민정(39) 씨, 육아기 남녀 김삼수(40)·고윤정(40) 씨, 장년 남녀인 노진숙(51)·이승경(63) 씨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영화에 관해 2시간 동안 열띤 의견을 나눴다.

■공감과 반성의 기회로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 한 장면.
“또래 이야기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맘충이라는 소리도 들어봤고 육아휴직도 힘들게 했습니다. 조리원 동기 10명이 있었는데 6년 후에도 일하는 이는 두 명뿐이에요.”(고윤정)

여성 참가자들은 영화가 과장이라는 주장에 대해 ‘오히려 순화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영화가 지적한 것처럼 하루빨리 경력 단절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고, 공동보육 시스템이 자리 잡기를 소원했다. 퇴근 후 6살 난 딸과 함께 토론회에 참석한 공공기관 직원 고윤정 씨는 “영화처럼 아이 때문에 카페에서 욕을 먹은 뒤 다시는 가지 않는다. 힘들게 얻어낸 육아휴직 후 복직하려고 아이돌보미를 신청했는데 대기가 너무 길었다. 육아기 여성은 이 사회에서 점점 눈치 보는 사람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김민정 씨는 “가정에서는 물론 직장에서도 여성은 죄인이다. 남성도 육아에 참여하면서 가정 내 사정은 나아졌지만 직장의 배려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전했다.

남성 참가자 역시 반대보다는 공감을 표했다. 부산시의회 김삼수 의원은 “남성이지만 제 이야기라 본다. 아이와 공식적인 자리에 가면 ‘왜 애를 데려오느냐’는 시선이 너무나 따갑다. 딸 아이와 외출하면 화장실 문제에 부닥치기도 한다”며 “남녀를 떠나 모두에게 부당한 사회구조를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2.8점vs9.52점

온라인상에서는 한때 ‘82년생 김지영’을 향한 남성의 집중포화가 이어졌다. 평점이 3점대로 내려가거나 여자주인공 정유미에게 악플 세례가 쏟아졌다. 이에 여성도 관객 수 증가 운동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서로를 향한 혐오와 적대 감정이 표출되기도 했다. 현재도 포털사이트 영화 평점 집계를 살펴보면 남성 2.8점, 여성 9.52점(11일 기준)으로 성별에 따라 만족도가 크게 나뉜다. 남성의 거센 반발을 사는 이유로는 ‘박탈감’이 꼽혔다. 취업준비생 유영현 씨는 “여권 신장으로 기성세대 남성이 당연히 누리던 것을 향유하지 못하게 되면서 일부 남성이 ‘빼앗긴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며 “여성이 겪던 부당함이 바로 잡힌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화장실 가기, 택시 타기 등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에 대해 남성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윤정 씨는 “성인지 감수성에 관한 부산문화재단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다. 50,60대 남성보다 20,30대가 더 높은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며 “남성 저변에 깔린 그런 박탈감이 영향을 끼친 결과로 보인다”고 동의했다.

■시스템 문제… 변화속도는 ‘글쎄’

참가자는 사회에 내재한 가부장 문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시스템을 지적했다. 누가 더 많이 가졌나, 덜 가졌나를 두고 남녀가 서로를 혐오하며 싸울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 노진숙 씨는 “구조적 문제이고 개인이 해결할 수 없으므로 시스템 개선이 우선”이라며 “다만 제도를 만드는 이의 성별을 보면 남성이 더 많다. 이들도 부당한 것이 당연한 문화 속에 살다 보니 익숙해졌을 것”이라며 “개인 인식과 사회구조가 함께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 능력보다는 인맥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직장문화도 도마 위에 올랐다. “술과 회식으로 형성되는 직장문화가 유리천장이 돼 여성의 능력이 저평가된다”는 노진숙 씨의 말에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가 변한다는 데는 모두 공감했지만, 변화 속도를 두고는 세대별로 의견이 갈렸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이승경 씨는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사건을 겪은 장년으로서 ‘언젠가 변한다’는 믿음이 있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건 장년층은 ‘나서면 피해 본다’는 생각이 역사적으로 학습돼 있기 때문”이라며 “젊은 층을 적극적으로 돕지 못해도 마음으로는 응원한다”고 전했다. 이에 유영현 씨는 “젊은 층은 아무래도 매일 겪는 일이다 보니 당장 바뀌길 원한다”며 “어른의 말씀도 이해가 가지만 조급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참가자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대·남녀 간 이해다. 서로 공감하려 노력한다면 이 같은 갈등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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