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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 머리도 당당하게…유쾌한 암투병

암 환자들의 투병·극복기 편견깨는 자서전 잇단 반향

  •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  |   입력 : 2019-11-13 19:29:46
  •  |   본지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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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숙 씨 ‘…비키니는 입고 싶어’
- 윤지회 그림책 작가 ‘사기병’ 등 
- ‘아픈 시간도 소중한 삶’ 강조
- 다른 환우들에 용기·희망 전달

“내 나이 서른일곱. 머리는 군인 스타일에 그마저도 항암치료 중이라 듬성듬성 빠져 있다. 한쪽 가슴엔 긴 수술 자국까지 나 있다. 하지만 기뻤다. 해변에서 오랫동안 꿈꾸던 모습을 현실로 만드는 날이 오다니. 외모는 어떨지 몰라도 기분은 20대 생기 터지는 인터넷 사진 속 그녀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한숙 씨(왼쪽), 윤지회 씨. 본인·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이한숙(38·필명 미스킴라일락) 씨가 쓴 ‘유방암이지만 비키니는 입고 싶어’(산지니)의 한 구절. ‘다음 브런치’(콘텐츠 창작 플랫폼)에 올린 투병 일기를 엮어낸 에세이가 잔잔한 반향을 얻고 있다. 지난달 나온 이 책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힘든 치료 과정을 담은 눈물겨운 투병기가 아니다. 유방암 환자지만 난생처음 간 해외여행에서 꿈에 그리던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배드민턴 레슨을 받는 등 ‘엉뚱 발랄’한 일상을 담았다.

암이나 희소병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유쾌하게 다룬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저자들은 ‘환자복과 삭발한 머리’로 대표되는 우울한 모습이 아니라 밝고 담담하게, 그리고 희망을 담아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왼쪽부터 ‘유방암이지만 비키니는 입고 싶어’(산지니), ‘사기병’(웅진지식하우스),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인생’(턴어라운드).
부산이 고향인 이한숙 씨는 5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2년 전 폐로 전이돼 항암치료를 받고 여전히 석 달에 한 번 병원을 찾아 몸속의 암세포를 확인하는 환자다. “투병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10개월 동안 혼자 쓴 글을 모아 여러 출판사에 투고했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하나씩 올렸는데 어느 날 제 글이 다음 홈페이지 메인에 떴어요. 호응을 얻어 출간까지 하게 됐죠.”

이 씨는 글을 통해 치유를 받고 희망을 품게 됐다고 했다. “환우 한 분이 제 글을 보고 연락해 왔어요. 본인도 죽기 전에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했는데, 들어보니 상황이 저보다 심각해서 쓸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제 입장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책 작가이자 두 돌 아기 엄마가 암과 투병하는 일상을 그린 부산 출신 윤지회(40) 작가의 ‘사기병’(웅진지식하우스)은 구독자 12만 명에게 사랑받은 인스타툰을 엮어 만든 책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투병 생활은 그간 잊고 지냈던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했다. 생전 안 하던 사랑 고백을 쏟아내는 ‘경상도 남자’ 친정 아빠, 산책과 커피 한 잔, 냉면 한 그릇, 다시 먹게 된 김치 같은 것 등등. 윤 씨는 책을 쓴 이유를 소개한 인스타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위암 4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부터 온갖 수기를 찾기 시작했는데 정보가 너무 없어서 답답했어요. 항암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죠. 저와 같은 환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응원의 댓글과 희망 사례를 올려주셔서 오히려 제가 힘을 얻고 있답니다.”

‘갖다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턴어라운드)은 18세부터 재생불량성 빈혈로 6년간 투병하다가 골수를 이식받고 새 삶을 얻은 하수연(26) 씨 얘기다. 하 씨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일상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아픈 시간마저 나의 일상이다’며 버리고 싶은 악조건마저 긍정하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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