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수립 이후 국가 의례 모습을 볼 수 있는 궁중 기록화 ‘반차도’가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반차도는 조선 시대 국가 의례에 참여하는 문무백관 및 각종 기물 등의 정해진 위치와 행사 장면을 묘사한 기록화다. 부산박물관은 올해 마지막 ‘신수유물(新收遺物) 소개전’에 2016년 개인 소장가에게서 사들여 최근 보존처리와 장황(서화를 족자·병풍·두루마리·책·첩 등의 형태로 꾸미는 장식)을 마친 ‘어진·예진 서경 풍경궁 봉안반차도(御眞睿眞西京豊慶宮奉安班次圖)’를 전시한다. 크기는 가로 311.7㎝, 세로 49.7㎝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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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국가 의례에 참여하는 문무백관 및 각종 기물 등의 정해진 위치와 행사 장면을 묘사한 반차도. 부산시립박물관 제공 |
그림의 이름은 ‘왕의 초상화인 어진과 왕세자의 초상화인 예진을 서경에 있는 풍경궁에 봉안하러 가는 행렬을 그린 반차도’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서경은 지금의 평양이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1902년 평양부를 서경으로 승격시켰다. 어진과 예진은 1902년(광무 6년)에 고종 즉위 40년을 맞아 제작됐다. 면복본, 익선관본 2본, 군복대본, 군복소본 등 모두 5본이었으며, 예진은 앞의 5본에 복건본이 추가되어 6본이었다. 이들은 모두 경운궁 흠문각에 모셔졌으나, 익선관본 어진과 예진 각 1본은 풍경궁 태극전과 중화전에 옮겨 모셔졌다.
어진과 예진이 옮겨졌던 풍경궁은 평안남도 평양에 있던 대한제국의 이궁(離宮, 임금이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이다. 1902년에 건설을 시작했으나, 러일전쟁 중 일본군의 평양 점거로 공사가 중단됐고 궁 주변은 병참기지로 사용됐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근대식 병원으로 바뀌었다. 이듬해 풍경궁에 봉안되어 있던 어진은 덕수궁 정관헌으로 옮겨졌다. .
부산박물관 관계자는 “근대 복식의 변화와 당시 국가 의례 형식과 궁중 기록화의 제작 양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신수유물 소개전은 부산박물관이 기증받거나 구입한 유물과 보존처리가 끝난 유물 중 시민들에게 공개하지 못한 유물을 새롭게 소개하는 전시다. 내년 2월 16일까지. 입장료는 무료. 문의 (051)610-7132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