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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21> 부산시립교향악단 전 지휘자, 리 신차오

“기교보다 마음 와닿는 음악해야 … 부산 언제든 몇번이라도 오고픈 곳”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17 18:47:3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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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산골소년, 이끌리듯 음악 시작
- 부산서 6년 6개월간 다채로움 선사
- 악의적 평가·뜬소문에 결국 사의 표명
- “단원과 소통할때 가장 멋진 소리 나와
- 상처에도 마음통한 부산관객 못 잊어”

그의 이름이 부산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2006년이었다. 큐슈심포니 주최로 매년 9월 후쿠오카에서 열렸던 아시아 프렌들리 콘서트에 부산시향, 창원시향 등의 단원이 참가했다. 첫 리허설이 시작되자마자 지휘자의 탁월한 음악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페라 아리아의 감각적인 선율은 가슴 깊은 곳을 울렸고 장중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은 담백했다. 연주자들은 마치 오래된 동료처럼 멋진 하모니를 펼쳐 보였다. 그의 음악적 리더십은 신뢰 그 자체였다. 부산시향 제10대 수석지휘자로 2009~2015년 재직했던 지휘자 리 신차오(Li Xincao)와의 첫 만남이었다.
2009년부터 총 3번의 계약을 통해 6년6개월 동안 부산시립교향악단을 이끈 리 신차오 전 지휘자가 음악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짧지만 강렬했던 첫 만남… 6년6개월 인연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은 이듬해 9월 부산시향 객원 지휘로 이어졌다. 그의 음악은 단숨에 부산 관객들을 매료시켰고 단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 마침내 2009년 6월, 부산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다. “처음 부산에 왔을 때, 분명 낯선 도시인데도 이상하게 친근감이 들었어요. 하지만 수석지휘자 제의를 받았을 때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북경에서 가깝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집을 오래 떠나있기 싫었거든요.” 당시 그는 스위스의 한 오케스트라로부터 같은 제의를 받고 있었다. “아내가 부산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부산에 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부산과의 계약에 망설이거나 주저한 적 없습니다.”

계약은 2년 단위로 이뤄져 총 3번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한 번도 계약 조건을 수정해달라 요구하지 않았고 안팎으로 잡음도 없었다. 교향악단 지휘자 재계약 과정에 보기 드문 경우였다.

“계약 조건은 중국국립심포니(CNSO)보다 훨씬 까다로웠지요. 중국에서는 원하는 대로 공연횟수를 조정할 수 있는데 부산은 공연횟수와 체류 기간이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대신 제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실현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6년 6개월 동안 80여 회 공연을 지휘했다.

■오페라 공연·숨은 연주자 발탁 등 파격 시도

리 신차오 전 지휘자가 공연하는 모습.
010년에는 베토벤, 브람스, 부산의 머리글자를 딴 ‘BBB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오케스트라 연주력의 기초를 다시 한번 다지면서 관객의 요구를 만족시킴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기획이었다. 협연자 초청도 특별했다. 명성에 기대기보다는 숨은 실력자들을 많이 초청했는데 리허설 도중 그들의 뛰어난 기량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페라 in 콘서트’를 빼놓을 수 없죠. ‘토스카’ ‘라 보엠’ ‘박쥐’ ‘리골레토’ ‘피가로의 결혼’ 등 전부 성공을 거뒀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오페라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연주가 아니라 반주라고 생각하니까요. 빈필은 늘 오페라를 연주합니다. ‘노래하는’ 오케스트라죠. 이는 연주력을 유연하게 만듭니다.” 지휘뿐만 아니라 연출까지 직접 그가 맡았다. 대형 세트를 제외한 형태라 입장료는 저렴하되 공연의 수준과 완성도가 높았는데 광안대교나 부산 사투리가 불쑥 나오는 등 그 특유의 재치 넘치는 연출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오페라처럼 길고 복잡한 스코어도 마치 통째로 외우고 있는 듯한 그를 보면 이구동성 ‘천재’라 한다. “지난 1월 상하이에서 한 피아니스트와 연주를 했습니다. 공연 제목에 ‘두 명의 천재’를 넣고 싶어 했지만 둘 다 반대했어요. 그 피아니스트는 정말 천재인데도 말이죠. 재능도 중요하지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빈 유학 시절 매일 저녁 오페라와 공연을 보며 공부했습니다. 나중에는 구토가 날 지경이었죠.” 재능에 노력을 더하면 좋은 뮤지션이 될 수 있을까? “마음이 따뜻해야 합니다. 테크닉이 아무리 뛰어나도 음악을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연주하는 사람’에 불과하겠죠. 완벽한 테크닉은 아니라도 마음에 와 닿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뮤지션입니다.”

■가난한 산골 소년… 마음에 와 닿는 음악 최고

음악을 대하는 이러한 마음가짐은 음악가로의 성장 과정이 꽃길만은 아니었던 데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그는 윈난성 산골 바오샨(保山)에서 자랐다. 양친은 음악가였지만 문화대혁명을 겪었기에 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지 않았다. 초등학교 수업 중 우연히 들어간 창고에서 운명의 광고 포스터를 발견한다. 윈난성 성도 쿤밍에 설립될 음악학교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바오샨에서 쿤밍까지는 버스로 꼬박 3일 걸렸다. 그는 하모니카를 꺼내 연주했고 청음 테스트를 받았다. 절대음감을 확인한 심사위원들은 입학을 허락했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극심했다. 오디션 때 그를 눈여겨본 한 교수가 바오샨까지 버스를 타고 방문해 어머니를 설득했고, 드디어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교수가 플루티스트였기에 자연스럽게 플루트를 전공하게 된다.

어느 날,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합주를 마친 그는 무엇인가에 이끌린 듯 지휘단에 섰는데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1988년 윈난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중국국립방송교향악단에서 수석 플루티스트로 1년간 연주했다. 1989년 중국 중앙음악원에 입학, 본격적인 지휘 공부를 시작했고 1993년 중국지휘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는 중국국립오페라·발레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다. 1996년 빈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났고 이듬해 브장송국제지휘콩쿠르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졸업 후 1999년 중국국립심포니 상임지휘자로 발탁되면서 귀국했으며 2000년부터 현재까지 수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맡게 되면 주요 자리의 주자들을 외부에서 초빙하거나 단원 배치에 변화를 도모하곤 한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 “테크닉 좋은 사람 몇 명을 더 채워 넣는다고 오케스트라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고 때로는 악화되기도 하죠. 지휘자의 악기는 지휘봉입니다. 단원들과 소통할 때 가장 멋진 소리를 낼 수 있답니다.”

■악의적 소문에 수모… 부산, 언제든 만나고파

갈등과 다툼을 싫어하는 것은 타고난 성품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부산에서 씻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 그에 대한 악의적인 평가와 교향악단 운영을 둘러싼 근거 없는 소문이 사실처럼 둔갑해 지휘자의 권한에 심각한 침해를 당했고, 급기야 수사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고통과 아픔 속에 임기 만료 전 사의를 표명했지만 그를 믿고 사랑하는 단원들과 관객들이 눈물로 만류했다.

“입국 심사장에서 한 직원이 여권을 살펴보다가 저를 알아보고 ‘오, 마에스트로, 부산을 떠나지 마세요’라고 하시더군요. 관객들이 보내주신 편지도 여러 통 받았지요. 그 일을 생각하면 부산을 미워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부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부산 관객들께 전할 메시지를 청하자 “부산 관객은 정말…”하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마지막 연주 때 앵콜곡을 소개하며 ‘간주곡입니다’고 하자 어느 관객이 ‘마농레스코?’라고 답했습니다. 앵콜로 잘 연주하는 곡이 아닌데도 어떻게 아셨을까요? 세계 어디에서도 공연이 끝나면 환호와 갈채를 받지만 그처럼 마음이 통하는 관객들이 또 있을까요. 언제라도, 몇 번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1년에 몇 차례 한국에서 공연을 한다. 어느 도시를 방문하건 부산에 들러 친구도 만나고 단골 음식점에도 간다. 자주 오지는 못한다. 2년 전부터는 중국의 정치자문위원회(CPPCC)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중국에 더 오래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실력과 음악만으로 단원, 스태프, 관객을 하나로 모으는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부산시향을 중흥시켰다. 중국의 산골 마을에서 자란 소년이 바다의 도시 부산으로 와 그토록 행복한 시간을 함께 나누던 시절을 무엇이라 추억할 수 있을까. 인연이었다. 비록 그 속에 악연 또한 있었을지언정 오래오래 좋은 인연으로만 남기를 바란다.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최고의 마에스트로니까.

공연기획자·부산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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