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방이듬’ 운영하며 겪은 소회
- 세상 떠난 선배에 대한 글 담겨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나는 생각한다 / 실연한 사람에게 권할 책으로 뭐가 있을까 / 그가 푸른 바다거북이 곁에서 읽을 책을 달라고 했다 //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웃고 /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나는 참는 동물이기 때문에 / 대형 어류를 키우는 일이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쳐다본다’(‘아쿠아리움’ 중에서)
김이듬(50·사진) 시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책방에서 실연한 손님에게 책을 소개한 경험을 시에 담았다. 책방에 홀로 앉아있다 보면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가 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김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현대문학)는 2년 전 경기도 일산에 ‘책방이듬’을 열고 경험한 또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 시인은 “이전 작품까지는 떠돌며 표류하는 삶에 대해 썼는데 이번 시집은 책방이라는 공간에 처음으로 정착해서 썼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겪은 어려움, 만난 사람들, 인근 여행지에서 겪은 이야기를 시어로 기록했다”고 말했다.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라는 시집의 제목도 여행과 책방 운영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책방을 열고 2년 만에 처음 간 휴가 때 6인실 도미토리에 묵었는데 티셔츠를 널어도 마르지 않은 채 입어야 할 때가 많았다. 또 혼자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노동, 긴장으로 인해 늘 옷이 땀에 절어있었다. 마르지 않은 티셔츠의 선뜩한 촉감처럼 시집 곳곳에 노동하는 삶의 흔적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한 후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과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를 냈다. 그 저력을 바탕으로 시와세계작품상(2010년), 김춘수시문학상(2015) 등을 받았다.
거침없고 솔직한 언어로 자신만의 독특한 활력이 살아 숨 쉬는 시 세계를 구축해온 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그동안 다져온 시 세계를 더욱 확장한다. 다양한 캐릭터를 가지고 여러 장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다층적인 목소리를 38편의 시를 통해 펼쳐 보였다. 산문시의 형식을 고수하면서도 순도 높은 서정성을 놓치지 않고 자유스러운 화법을 구사한다. 김 시인은 “첫 시집부터 여성의 삶을 이야기해왔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 ‘너는 언제나 아름다웠지만 한 번도 예쁘지 않았다’에서도 할머니, 어머니, 나의 이야기가 담겼다”고 말했다.
시집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부분은 마지막에 실린 작가 에세이다. 일반적으로 시론이 실리는 자리를 대신한 ‘절대 늦지 않았어요’라는 제목의 글은 지난해 독일에서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을 추모하는 글이다. 그는 “고향(진주) 선배이자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었던 언니가 위독하다는 얘기를 듣고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썼다. 길꽃이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해도 존재 자체가 소중한 것처럼 용도가 아닌 아름다움을 견지하는 삶을 시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정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