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우·남춘모·김태호 작가 등
- 내달 5일까지 데이트 갤러리

단색화는 말 그대로 ‘단색’이라는 특징 때문에 서양화에서는 ‘모노크롬(monochrome)’으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한국 단색화는 다르다. 회화지만 수를 놓고, 긁고, 자르고, 붙이고, 쌓는 작업이 반복된다. 조각과 회화가 결합하고 물성이 바뀌는 과정을 그림 한 폭에서 감상할 수 있다. 추상(抽象)을 넘어선 작가의 수행도 엿볼 수 있다.

최병소 작가의 ‘무제’. 데이트 갤러리 제공

한국 근현대 단색화를 대표하는 신진·중진·원로 작가들의 작품이 한 공간에 모였다.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 호텔 뒤 데이트 갤러리에서 이전 개관 초대전이 열렸다. 김태호, 김춘수, 김택상, 남춘모, 박기원, 박종규, 윤상렬, 이교준, 이진우, 장승택, 천광엽, 최병소, 최인수 작가의 작품이 전시장을 채웠다.

이진우 작가는 언뜻 보면 눈보라가 날리는 산속 풍경을 묘사한 듯 착시를 일으키는 작품을 전시했다. 그는 숯덩이 위에 한지를 겹겹이 쌓고, 쇠솔로 두드리고 긁어내 그림을 완성한다. 흑과 백, 음각과 양각이 서로 교차하면서 묘한 감동을 자아낸다.

‘후기 단색화’로 분류되기도 하는 남춘모 작가의 작품은 일정한 폭으로 자른 광목천을 나무틀에 고정하고, 합성수지를 바른 뒤 일정한 크기로 잘라 구조물을 만든다. 이 구조물을 캔버스 위에 붙여 골조를 만들고, 그 위에 파란 물감을 칠한다. 그러면서 작품 속 명암과 선은 빛에 따라 파도가 춤을 추듯 다채로운 모습을 보인다.

김태호 작가는 캔버스에 수십가지 물감을 두껍게 층층이 쌓은 후 그 표면을 끌칼로 깎아내린다. 화폭에 수많은 사각형이 지어지고 층층이 숨어 있던 색이 살아난다. 최병소 작가는 물성에 대한 질문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그의 작품은 종이가 아닌 반짝이는 검정 금속판처럼 보인다. 신문지에 수천 번, 수만 번에 걸쳐 볼펜과 연필로 인쇄된 글과 여백을 지우면서 재탄생한 작품이다.

김택상 작가는 캔버스 안쪽에서 빛다발이 아른거리며 숨 쉬는 듯 미묘한 빛이 나타나는 ‘Breathing Light’, 박기원 작가는 수평과 수직 희미한 것과 분명한 것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을 대비해 보여준 작품, 박종규 작가는 픽셀을 기호화해 점과 선으로 노이즈를 표현한 ‘kreuzen’, 이교준 작가는 최소한의 구성과 색채만 사용해 미적인 본질을 표현한 작품을, 천광엽 작가는 미세한 점이 반복되면서 형성되는 세계를 표현한 ‘omni’를 선보였다.

갤러리 김경애 대표는 “작가들이 다양한 주제와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을 내놨다. 한국의 단색화의 흐름과 특유의 ‘물질성’을 강조한 작품들을 만나보며 미적인 깊이와 아름다움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5일까지. (051)758-9845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