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태백 집성촌서 출생·성장
- 결혼 이후 본격 소설 집필 시작
- “아버지는 광부가 아니었어요
- 탄광촌 친구·지인 삶 그렸죠”
- 막장 무너져 남편 잃은 사연 등
- 산업화 시대 서민의 애환 담아
‘눈앞이 캄캄하다’. 별생각 없이 쓰는 말이다. 닥쳐온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할 때 이렇게 말한다. 때로는 엄살이기도 하다. 그런데 매일 가야 하는 일터가 땅 밑 깊은 곳이라면, 안전모에 달린 불빛에 겨우 의지해야 하는 갱도라면, ‘눈앞이 캄캄한’ 것은 현실이 된다. 더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힘든 삶을 버텨낸 광부들이 매일 매 순간을 견뎌 낸 그 자리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심봉순 소설가의 장편소설 ‘탄(炭)’은 산업화시대를 땅 밑에서 떠받친 광부들과 그 자녀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심봉순 소설가를 강원도 영월의 탄광문화촌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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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봉순 소설가가 강원도 탄광문화촌의 마차식당에서 소설집 ‘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광부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
심봉순 소설가는 1964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났다. “밤터골, 넉넉하지는 못해도 인정은 넉넉했던 심씨 일가 집성촌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집성촌 촌장이었습니다. 마을에서 태어나는 아이들 이름도 지어주고, 마을 대소사와 각 집의 제사 축문도 써주셨지요. 그 영향을 받았는지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하이틴 로맨스 분위기를 낸 소설을 써서 친구들에게 읽어주었다. 학창 시절 내내 읽고 쓰는 걸 좋아했고, 관동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결혼하면서 평창으로 온 이후 본격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2년 산문 ‘출렁다리’로 김유정 전국문예 공모 대상 수상, 2006년 계간 ‘문학시대’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소매각시’ ‘라스베가스로 간다’, 고향마을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쓴 장편소설 ‘밤터골 아라레이’ 등을 냈다. 2017년에 단편소설 ‘제천’으로 현진건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2019년에 펴낸 장편소설 ‘탄’은 탄광촌 사람들의 애환과 깊은 한숨까지 절절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부산에서 KTX를 두 번 타고 서울을 거쳐 강원도 평창역에서 심 작가를 만났다. 차로 40여 분 거리에 있는 영월로 다시 이동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는 높은 산자락마다 노랗게 물든 낙엽송이 빛났다. 탄광에서 갱도를 지탱하는 갱목으로 사용된 나무이다. 광부들은 갱목을 지고 막장까지 들어갔고, 막다른 갱에서 탄을 캤다. 그 사연을 알고 바라보는 낙엽송은 어쩐지 좀 처연해 보였다.
강원도 탄광문화촌은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 있다. 마차리는 마차 광업소의 배후 마을로, 1960~70년대 석탄 산업이 최고로 번성할 무렵 ‘제2의 명동’이라고 불렸다. 검은 황금 석탄을 캐는 마차리는 대도시 못지않게 사람이 많았고 최신 유행과 자본이 몰렸다. 이제는 탄광문화촌에서 옛날을 짐작해볼 수 있다. 주차장 옆에 있는 마차식당은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식당을 들어서면서 사람이 많구나 싶었는데, 다시 보니 작업을 마친 광부들이 술 한 잔 들이켜는 모습의 벽화이다. 광부들이 먹었다는 음식도 팔고 있다. 탄광문화촌은 야외 채탄시설 전시장, 탄광촌 생활관, 갱도 체험관으로 꾸며져 있다.
심 작가와 함께 생활관과 체험관을 둘러보았다. 마치 소설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한 독자에게서 ‘탄’을 읽고 난 다음 탄광문화촌을 일부러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소설 속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 여기를 와 봤다고요. 어떤 분은 가족 중에 광부가 있어서 ‘탄’을 읽는 내내 마음 아파 눈물을 흘렸다고 전화도 해주셨어요. 제가 보았던 탄광촌 이야기에 감동을 하는 독자분들이 있다는 건, 그 시절 광부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겠죠. 그 시절 그 사람들을 다음 세대가 잊지 않는데, 제 소설이 조금은 도움이 될까요?” 작가의 질문이 채 떨어지기 전에 그렇다고, 고마운 소설이라고 답해주었다.
■광부의 삶에 바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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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
심봉순·북인·2019 |
‘탄’은 생생한 소설이다. 탄광촌에 살면서 마을 사람들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심 작가를 만나자마자 광부의 딸인지부터 물어보았다. “아버지가 광업소에서 일했지만, 갱도에 들어가는 광부는 아니었어요. 처음에 갱도에 들어갔다가 무서워서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도 도저히 그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하셨어요. 저는 광부의 아들딸이었던 친구들,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았어요. 그 모든 것이 오래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소설로 나온 겁니다.” 그는 광부의 딸이 아니었다. 그러나 ‘탄’을 쓰면서 이 땅 모든 광부의 딸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철이 없어 잘 몰랐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광부 가족의 삶이 어떤지 알게 됐다. “퇴근하는 친구 아버지의 모습을 봤어요. 샤워 시설도 없는 개인광업소라 집에 와서 씻어야 했답니다. 얼굴까지 새까매진 모습으로 집에 들어오시던 모습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시절 광업소의 복지시설이 열악했어요. 친구 엄마들이 작업복을 빨면 검은 물이 끝없이 나왔죠. 탄광촌에는 탄가루가 구석구석 내려앉았고요. 아이들은 냇물조차 검은 그림을 그렸고, 탄광촌으로 발령받아 온 교사들은 그 그림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수업 중에 받았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소설 속에는 작가가 보았던 일, 친구들에게 들었던 이야기, 탄광촌 사람들의 사연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로 남편이 사망하자 “그렇게 갱도에 들어가길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매일 아침 도시락까지 싸서 보냈다”며 가슴 치는 여인의 사연 대목에서 필자도 절로 눈물이 났다. 가족의 생계를 온몸에 짊어지고 어두운 막장을 향해 걸어 들어갔던 광부들의 삶과 그 절박한 마음이 감히 짐작도 안 된다. 갱도 체험관에서 갱도가 무너지는 순간을 재현한 곳을 지나는 순간, 그 긴박한 순간이 연상돼 아찔했다. 체험관을 벗어나 마지막 문을 열자 환한 햇살이 느껴졌다. 밖으로 나왔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장편소설 ‘탄’은 어둡고 깊은 땅 밑에서 생애를 보냈던 광부들에게 보내는 빛이다. 심 작가는 이 소설의 ‘작가의 말’에 ‘태백의 모든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제목을 붙였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