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佛 대표 안무가의 모던 발레극
- 원전 비트는 특유의 해석 없이
- 자유의지 남성·수동적 여성 그려
부산에서 규모 있는 국내 춤 작품이나 외국 작품을 접할 기회가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일 부산문화회관을 찾은 프렐조카주 무용단의 모던 발레극 ‘프레스코화(La Fresque)’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는 1984년 데뷔해 35년 동안 활동하면서 50여 개 작품을 안무한 프랑스 무용계를 대표하는 안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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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거장 앙줄랭 프렐조카주가 연출한 ‘프레스코화’의 한 장면. 부산문화회관 제공 |
‘프레스코화’의 줄거리는 중국의 기담을 모은 포송령의 ‘요재지이’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탕이다. 두 명의 여행자가 비바람을 피해 찾은 사찰에서 한 여행자가 여인들이 그려진 벽화를 발견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현실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다. 이런 이야기는 익숙하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도 비슷한 구조이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는 많이 있다. 프렐조카주는 흔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탄탄하고 풍성한 플롯을 구성해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반복이다. 반복은 비현실성과 점층적인 진행을 강화한다. 니콜라스 고딘의 음악은 반복과 확산이 이어지는 안무와 하나로 엮어져 담백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조명은 무대 공간의 물리적 분할에 변화를 더하고 포인트를 드러내면서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고 갔다. 춤꾼의 높은 기량을 포함한 모든 요소는 안무자가 창조한 공간에 절묘하게 통합됐다.
하지만 굉장히 아쉬웠던 건 원전을 비트는 프렐조카주 특유의 해석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프레스코화’는 무난한 편이다. 이런 무난함 때문에 관객에게 쉽게 다가갔지만, 파격적 무대를 기대한 입장에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프레스코화’의 줄거리에는 사랑에 대한 여성의 수동적 자세가 녹아있다. 여자 주인공은 벽화에 갇혀 있다. 갇혔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는 활동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와 대비해 남자 주인공은 여행자다. 여행자는 속박을 벗어난 자유의지가 있다. 수동적 여성과 능동적 남성을 대비해 놓고, 사랑도 남성이 여성의 속박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자는 여자를 속박에서 구원해 줄 것처럼 다가가고 그런 남자 때문에 여자는 갈등한다. 무엇이 여자를 얽매고 있는지 실체가 분명하지 않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중요한 메타포인 머리카락으로 유추할 수 있다. 처음에 벽화 속 여자는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고, 두 사람이 사랑하고 다시 서로의 세계로 떨어진 후 여자의 묶은 머리에는 붉은 꽃이 꽂혀있었다. 후반부에 다섯 여인의 머리에 마치 운명의 끈처럼 한 묶음의 줄이 하늘과 연결된 장면이 나온다. 이 줄은 남자들의 등장으로 풀리는데, 머리카락과 줄이 여성을 얽매는 제도며 관습이고 그것에서 벗어나게 할 존재가 남성이라는 의미다.
마지막에 벽화 세계를 수호하는 전사들이 남자를 추방한다. 관습을 어지럽히는 자유연애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림 속에 남은 여성은 속박을 벗어나지 못하고, 금기의 선을 넘은 남자는 추방당하는 것으로 용서된다. 아마도 포송령이 살았던 중국 명말 청초의 여성에게 더 가혹한 사회제도와 관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프렐조카주라면 이것을 전복시킬 것이라 상상했다. 하지만 상상은 어긋났고 아쉬움이 남았다. 원전의 성 불평등을 비튼 ‘프레스코화’는 비록 기대에 그쳤지만, 잘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더구나 춤에서 ‘젠더 감수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으니 말이다.
춤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