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28> 프렐조카주의 ‘프레스코화’

세계 유명 공연마저도 … 무대 위 전형적인 남녀 역할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25 18:38:08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佛 대표 안무가의 모던 발레극
- 원전 비트는 특유의 해석 없이
- 자유의지 남성·수동적 여성 그려

부산에서 규모 있는 국내 춤 작품이나 외국 작품을 접할 기회가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일 부산문화회관을 찾은 프렐조카주 무용단의 모던 발레극 ‘프레스코화(La Fresque)’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는 1984년 데뷔해 35년 동안 활동하면서 50여 개 작품을 안무한 프랑스 무용계를 대표하는 안무가다.
프랑스 거장 앙줄랭 프렐조카주가 연출한 ‘프레스코화’의 한 장면. 부산문화회관 제공
‘프레스코화’의 줄거리는 중국의 기담을 모은 포송령의 ‘요재지이’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탕이다. 두 명의 여행자가 비바람을 피해 찾은 사찰에서 한 여행자가 여인들이 그려진 벽화를 발견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현실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다. 이런 이야기는 익숙하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도 비슷한 구조이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는 많이 있다. 프렐조카주는 흔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탄탄하고 풍성한 플롯을 구성해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반복이다. 반복은 비현실성과 점층적인 진행을 강화한다. 니콜라스 고딘의 음악은 반복과 확산이 이어지는 안무와 하나로 엮어져 담백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조명은 무대 공간의 물리적 분할에 변화를 더하고 포인트를 드러내면서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고 갔다. 춤꾼의 높은 기량을 포함한 모든 요소는 안무자가 창조한 공간에 절묘하게 통합됐다.

하지만 굉장히 아쉬웠던 건 원전을 비트는 프렐조카주 특유의 해석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프레스코화’는 무난한 편이다. 이런 무난함 때문에 관객에게 쉽게 다가갔지만, 파격적 무대를 기대한 입장에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프레스코화’의 줄거리에는 사랑에 대한 여성의 수동적 자세가 녹아있다. 여자 주인공은 벽화에 갇혀 있다. 갇혔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는 활동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와 대비해 남자 주인공은 여행자다. 여행자는 속박을 벗어난 자유의지가 있다. 수동적 여성과 능동적 남성을 대비해 놓고, 사랑도 남성이 여성의 속박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자는 여자를 속박에서 구원해 줄 것처럼 다가가고 그런 남자 때문에 여자는 갈등한다. 무엇이 여자를 얽매고 있는지 실체가 분명하지 않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중요한 메타포인 머리카락으로 유추할 수 있다. 처음에 벽화 속 여자는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고, 두 사람이 사랑하고 다시 서로의 세계로 떨어진 후 여자의 묶은 머리에는 붉은 꽃이 꽂혀있었다. 후반부에 다섯 여인의 머리에 마치 운명의 끈처럼 한 묶음의 줄이 하늘과 연결된 장면이 나온다. 이 줄은 남자들의 등장으로 풀리는데, 머리카락과 줄이 여성을 얽매는 제도며 관습이고 그것에서 벗어나게 할 존재가 남성이라는 의미다.

마지막에 벽화 세계를 수호하는 전사들이 남자를 추방한다. 관습을 어지럽히는 자유연애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림 속에 남은 여성은 속박을 벗어나지 못하고, 금기의 선을 넘은 남자는 추방당하는 것으로 용서된다. 아마도 포송령이 살았던 중국 명말 청초의 여성에게 더 가혹한 사회제도와 관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프렐조카주라면 이것을 전복시킬 것이라 상상했다. 하지만 상상은 어긋났고 아쉬움이 남았다. 원전의 성 불평등을 비튼 ‘프레스코화’는 비록 기대에 그쳤지만, 잘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더구나 춤에서 ‘젠더 감수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으니 말이다.

춤 비평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2. 2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3. 3“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4. 4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5. 5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6. 66일 부산국제영화제 팡파르…사상 첫 화요일 개막
  7. 7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8. 8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9. 9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10. 10“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1. 1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2. 2‘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3. 3부울경 펀드인데 절반가량은 수도권 투자…제도취지 무색
  4. 4軍 “北 지뢰 터져 장병 부상” 결론…군사분계선 이남 제거작전 돌입(종합)
  5. 5장동혁, 육영수 생가 방문…‘암살자(들)’로 진보 맹공
  6. 6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7. 7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8. 8[속보] 李 대통령 지지율 37.4%.. 민주 42.5%, 국힘 38.4%
  9. 9[속보] ‘실탄 없이 경계 근무’ 사례 추가 확인, 국방부 기관 경고 방침
  10. 10‘盧 수사’ 與-한동훈 논쟁 확전…“석고대죄하라”-“성역화 말라”
  1. 1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2. 2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3. 3지역상품 우선구매 ‘부산이 삽니다’ 민간 확산 드라이브
  4. 4증권·산업계도 AI 해킹 포비아…휴일 반납 하고 긴급 점검
  5. 5누리호 7일 발사 앞두고 6일 기립(종합)
  6. 6SNS레시피가 제품으로…농심 스낵 ‘너구링’ 선봬
  7. 7[한 손 뉴스] 양양 송이 ㎏당 171만 원…생산량 줄어 역대 최고가
  8. 8“북항 더 핫하게” 시민과 명소화 모색
  9. 9주민번호 대량 유출 빈번, 최근 6년 505만 건 털려…‘온라인 번호’는 278만 건
  10. 10어선원 직불금, 60일 승선하면 받는다
  1. 1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2. 2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3. 3“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4. 4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5. 5“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7. 7김해시의원 활동비는 1만 원 깎였다
  8. 8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9. 9출소 한 달 만에 또…유치장 난동 40대 징역형
  10. 10“디지털농업·특화브랜드로 청년농부 유입 이끌 것”
  1. 1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2. 2“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3. 3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4. 4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7. 7“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8. 8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9. 9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10. 10‘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약학박사 연륜이 깃든 시조집 外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세연-Find Your Brave
박자현-꾸지 않는 꿈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6일 (음 8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5일 (음 8월 25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택당 이식이 가을의 찬 기운을 읊은 시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