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문 사립고 세인트폴 관찰기
- 오페라 보고 랩 듣는 新엘리트
- 최고의 교육시스템·연줄 통해
-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하지만
- 노력의 결과로 성공했다 자부
“기회는 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2017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공정’이라는 단어가 호명되자 국민은 환호했고, 조금은 나아질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한국 사회는 특권계층의 일상화된 반칙 행위를 지켜보면서 ‘공정’은 가장 아픈 생채기를 남긴 말로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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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불공정’과 ‘기울어진 운동장’의 현실을 보여준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 |
이 책은 미국 사회 엘리트 계층의 구조 변동을 다룬 컬럼비아대 셰이머스 라만 칸 교수의 저서다. 파키스탄과 아일랜드 출신의 부모를 둔 저자는 1993년 미국 뉴햄프셔주의 명문 사립고 세인트폴에 들어간다. 세인트폴 스쿨은 500명 남짓의 아이들이 250만여 평에 이르는 부지에 늘어선 100개 이상의 고딕 양식 건물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다. 연간 학비는 4만 달러(4700여만 원)에 달한다.
외과 의사 아버지 덕에 이 학교를 다닌 칸이지만, 그 시간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학창 시절 엘리트 친구들 사이에서 불편했고, 그 근원이 ‘불평등’이었다는 점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왜 엘리트 학교 교육이 어떤 이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당연한 권리인데, 어떤 이에게는 악전고투해야 하는 일일까?’에 의문을 품는다. 대학 졸업 후 불평등과 계급 문제를 연구해오던 칸은 졸업 후 9년 만에 교사이자 연구자로서 모교로 돌아가 답을 찾는다.
모교에 온 칸은 충격적인 변화를 본다. 자신이 학교에 다닐 때처럼 여전히 백인 명문가 부유층이 지배적일 거라는 예상을 깨고, 인종적·계급적 다양성이 증가해 빈자와 부자, 흑인과 백인이 교실과 댄스파티, 기숙사 등에서 함께 청소년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미 성공의 열쇠를 쥔 듯 행동하는 특권층 아이들은 ‘세인트폴의 치부’로 여겨졌다.
문화적으로도 신엘리트는 기존의 엘리트(구엘리트)와 달랐다. 신엘리트들은 자신이 소유한 지식과 문화, 인맥 주변에 장벽을 두르고 고급문화·고급 취향을 구분 짓는 폐쇄적인 부류가 아니었다. 전용기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보고 와서랩음악을 즐기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개방성과 문화적 잡종성을 지니고 있었다. 대다수는 열심히 공부하고, 허드렛일을 하는 교직원들과도 격의 없이 지냈다. 신엘리트들은 그들의 성취가 노력에 따른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들이 쟁취한 성공은 맨땅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세인트폴은 거의 모든 학생을 몇 분야에서는 최상위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책의 하이라이트 격인 5장(‘공부’)에서는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의 실제 능력이 어느 만큼인지, 정말 노력하는지, 그리고 아이비리그 합격률이 왜 그렇게 높은지 등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500명에게 주어진 수백 개의 동아리와 수많은 교과목이 모든 학생이 어느 한 곳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조직돼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비리그 대학들과 오랜 연줄, 학교 입시 담당자들이 입학 시즌 때마다 각 대학의 구미에 맞는 애들을 짝짓기하는 것이 그들의 비결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공정’과 ‘능력주의’로 포장돼 있다.
“미국의 상류층 가문들이 아이비 캐슬이라는 문화 권력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계급과 지위를 재생산하는지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경희대 김종영 교수의 추천사처럼 부모로부터 대물림된 특권이 어떻게 개인의 능력이 됐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책은 소설처럼 쉽고, 흥미롭게 읽힌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