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단, 학술제·전집 발간도 추진
- ‘꽃씨 백일장’ 부산교육감상 신설
- 문학상 20주년 권위 높이기 숙고
- 향토색 짙은 순수 서정을 노래
- ‘꼬까신’ ‘꽃씨’ ‘외갓길’ 등 남겨
- 문학정신과 삶 후배 작가에 귀감
‘꼬까신’ ‘꽃씨’ 등 한국적 순수 서정을 노래하며 맑고 높은 시 세계를 펼친 지역 대표 문인 최계락(1930~1970) 시인의 타계 50주기(2020년)를 맞아 그의 작품과 생애에 대한 재조명 사업이 다채롭게 펼쳐질 예정이다. ㈔최계락문학상재단과 국제신문이 2001년부터 공동 주최하는 부산을 대표하는 시 행사인 최계락문학상도 내년 20주년을 맞아 한국 문단에서 더욱 빛나고 위상 높은 문학상의 모습을 갖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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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국제신문사 4층 중강당에서 열린 ‘제19회 최계락문학상 시상식’에서 참석자들이 최계락 시인의 대표 동시 ‘꼬까신’ 낭송을 듣고 있다. 서정빈 기자 |
■최계락 타계 50주년 사업 활기
㈔최계락문학상재단은 내년 최 시인의 타계 50주기를 맞아 그의 고향 진주와 부산 등에서 기념사업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재단 측은 “50주기를 맞아 최 시인의 삶과 시 세계를 재조명하고, 젊은 층에 친숙하게 다가가는 대중화를 실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최계락 학술제’ 개최를 비롯해 백일장, 자료 전시, 창작동요제 개최, 동요집 출간, 전집 발간 등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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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이기대도시자연공원에 세워진 최 시인의 시비. 국제신문 DB |
이와 함께 유족 측은 남해고속도로 건설에 수용된 진주시 지수면 생가 자리에 표지석 설치도 추진하고 있다. 최 시인의 전집이 발간되고 표지석이 조성되면 최 시인의 삶이 제대로 알려지고 후학에게 문학적 가치도 제대로 전수될 것으로 보인다. 최 시인의 외아들인 최형림 동아대 경영대학장(최계락문학상재단 부이사장)은 “내년 50주기를 맞아 기념사업을 큰 틀에서 구상 중이다. 경남 진주시 생가 인근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계락문학상과 전국 최계락 꽃씨 백일장은 예년보다 풍성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계락문학상은 최 시인의 동생 최종락 씨가 문학상 운영기금을 출연, 중진 시인 언론계 지인 등이 주축이 돼 지난 2001년 제정됐다.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총 19회에 걸쳐 문단에 족적을 뚜렷이 남긴 문학인 27명에게 최계락문학상을 수여 했다. 내년 4회째인 최계락 꽃씨 백일장은 부산시교육감상을 신설해 상의 지명도와 평가를 높일 계획이다.
최원준 재단 총무이사는 “내년 재단 이사회 때 기념사업과 함께 최계락문학상의 수상 부문이나 상금 규모 등에 대해서도 재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부산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만큼 상의 권위를 높이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최계락 시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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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계락 시인(1930~1970). |
최계락 시인은 1930년 9월 3일 경남 진주시(당시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에서 태어났다. LG그룹 창업주 생가가 있는 곳이다. 진주고와 동아대 문과를 수료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고교 시절부터 문학 매체에 시를 발표하며 ‘소년 문사’로 이름을 날렸다. 1947년 아동문학지 ‘소학생’에 ‘수양버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48년 9월부터 경남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1951년 ‘낙화’의 시인 이형기와 함께 동인지 ‘이인’을 발간하는 등 진주에서 문학 활동을 했다. 경남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1956년 국제신문에 입사해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겸 정경부장, 사회부장으로 일하며 부산의 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1963년 부산시 문화상, 1967년 제3회 소천아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58년 아동문학가 이주홍과 함께 부산아동문학회를 결성하고 아동문학의 초석을 다졌다. 1970년 7월 4일 안타깝게도 마흔 살의 이른 나이에 요절했다. 묘소는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 부산시립공원묘지에 마련됐다. 2005년 ‘부산을 빛낸 인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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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시인의 ‘꽃씨 2’ 원고. |
최 시인은 ‘외갓길’ ‘꼬까신’ ‘꽃씨’ 등 맑고 아름다운 동시와 시를 남긴 정갈한 시인의 표상이었다. 소박하고 애틋한 감성적 언어로 일상 속의 인간의 삶과 꿈을 실어 노래했다. 그는 우리말의 빛깔과 맛, 그리고 흥겨운 가락 같은 멋으로 시를 일군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1950년대 혼란기를 겪으면서도 향토색 짙은 작품으로 시의 순수성을 추구했던 시인의 순결한 문학정신은 후배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최 시인의 삶은 문학과 다르지 않았다. 맑고 단순한 시처럼 그의 삶은 순수한 인정과 청빈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박일 동시인은 “최계락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의 정신을 받들어 부산의 아동문학가들이 배출된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최계락문학상의 수상자를 보면 성인 문학 쪽으로 가는 것 같아서 아동 문학인들이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크다. 내년 20주년을 맞아 아동문학 쪽에 대한 비중을 좀 더 높이고 문학 계파와 상관없이 부산의 문학인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는 행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 최계락문학상 주요 일지 |
2001년 3월 |
최계락문학상 운영위원회 구성, 전 국제신문 사장 이광우 씨를 회장으로 추대, 발족함 |
2001년 11월 6일 |
제1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자로 이기철 시인의 시집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를 선정, 시상함 |
2003년 3월 |
시인 김규태 씨가 제2대 회장으로 추대 |
2004년 9월 |
최계락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최계락문학상재단으로 변경 |
2010년 9월 |
경남 고성군 소재 가족묘원에 최계락 선생 시비 2기를 건립, 제막함 |
2013년 9월 |
시인 조영서 이사를 제3대 이사장으로 추대 |
2015년 |
최종락 이사를 제4대 이사장으로 추대 |
2019년 11월 26일 |
제19회 최계락문학상 시상식 개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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