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기의 로맨티스트’ 작곡가 윤이상
- 아내에게 보낸 수백 통의 연서 엮어
- 지휘자 금난새, 아버지 글 75편 추려
- 부친 닮아가는 자신의 삶도 되돌아봐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볼 때마다 마냥 아쉽고, 겨울바람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드는 요즘이다. 마음 한편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대한 설렘이 꿈틀거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시린 몸과 마음을 녹여줄 달달한 로맨스를 경험하거나 화수분처럼 샘솟는 내리사랑을 받는다면 이 헛헛함이 조금은 달래질 수 있지 않을까.
마침 부산에 연고를 둔 세계적인 음악가와 지휘자인 윤이상과 금난새가 책을 냈다. 한 명은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읽어도 가슴 ‘심쿵’한 연서를, 또 한 명은 지휘자 아들이 위대한 작곡가이자 성악가인 아버지를 그리며 써 내려간 가슴 절절한 사부곡(思父曲)이다.
‘사랑꾼’. 세계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손꼽히는 현대음악가 윤이상이 가난한 유학 시절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수백 통의 러브레터를 엮은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을 읽다 보면, 세기의 로맨티스트가 따로 없다.
1917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란 윤이상은 1956년 마흔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프랑스 파리(이후 독일로 감)로 유학을 떠난다. 유학길에 오른 첫날(1956년 6월 3일), 경유지로 들른 도쿄 호텔에서 짐을 챙기던 윤이상은 아내의 블라우스를 발견해 소포로 보낼까, 말까 고민한다. ‘이 길 잃은 당신의 꺼풀을 보내야 하겠는데, 블라우스를 하나 사서 같이 보낼까, 아니면 파리 가서 두고두고 당신의 냄새를 맡을까.’ 아내의 감동한 얼굴이 떠올라 미소가 번진다. 매번 편지 끝에 ‘열렬한 뽀뽀를 당신에게’ ‘당신의 영원한 애인이며 당신의 알뜰한 낭군’ ‘뽀뽀, 나의 마누라’ 등으로 마무리를 하다가도, 답장이 조금이라도 늦어질라치면 ‘이번에도 편지가 오지 않고 있소. ··· 당신이 밉구려!’라며 사랑 투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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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이상의 가족사진. 1950년 11월 딸 정이 태어나고 1953년 성북동으로 이사해 이듬해 1월, 아들 유경이 태어난다. 남해의봄날 제공 |
이후 5년간 아내에게 보낸 수백 통의 편지에 드러난 가족에 대한 사랑, 유학 생활의 외로움과 생활고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깊은 열망, 통영과 가족이 살고 있는 부산에 대한 향수 등 책을 통해 인간 윤이상의 성격은 물론 그의 음악 작품에 드러나는 세계관까지 엿볼 수 있다.
에세이집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은 금수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아들이 추려 다듬은 아버지의 글 75편에 아버지와 음악, 그리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금난새의 글 25편이 총 4장으로 실려 있다. 가곡 ‘그네’의 작곡가인 금수현은 1919년 김해군 대저면(현재 강서구 대저동)에서 태어나 경남여고 교감, 경남여중 교장 등을 거친 뒤, 문교부 편수관으로 근무하며 한국의 음악 용어를 한글로 바꾸는 데 공헌했다.
“얘야, 선 김에 맥주 하나 가 온나.” 금난새가 기억하는 아버지(금수현)의 말씀이다. 어렸을 때 목이 말라 우유나 주스를 마시려고 일어서면 누워 계시던 아버지가 던지는 위트 있는 표현이었다. “아버지의 이 말씀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권위적으로 심부름을 시키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어섰을 때를 이용해 애교 있게 부탁하는 스타일이었다.” 아들은 201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화폐 박람회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 참석했을 때, 아버지의 ‘선 김에’라는 말이 떠올랐고, 이왕 ‘간 김에’ 유럽 난민을 돕는 자선 콘서트를 열고 돌아왔다.
금난새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젊었을 때는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자꾸 글도 쓰고 싶고, 노래도 부르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늘어납니다. 천성이겠지요.”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