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시립미술관 개관시절 구입
- 브라운관 수명 짧고 생산 중단
- 부정기적으로 켜놓는 바람에
- 대부분 제대로 감상 못하고 스쳐
- 다른 곳도 유사 작품 놓고 고민
부산시립미술관 로비에 전시된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작품이 관리·보전을 이유로 10년 이상 대부분의 시간 불이 꺼진 채 전시돼 있어 거장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관람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미술계에선 ‘원형 보전’을 이유로 작품을 ‘골동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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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준 작가의 미디어아트 ‘덕수궁’이 전원이 꺼진 채 부산시립미술관 로비에 전시돼 있다. 오른쪽은 전원을 켜도 몇 개 브라운관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덕수궁. 김성효 기자·권용휘 기자 |
9일 부산시립미술관에 따르면 1998년 개관을 기념해 ‘덕수궁’을 소장품으로 사들여 전시해오고 있다. 작가가 회갑을 기념해 1992년에 제작한 이 작품은 브라운관 TV 74대와 컴퓨터로 작동되는 네온 빛으로 이뤄졌다. 브라운관 TV 3대 만으로 이뤄진 작가의 1998년 작품 ‘티비 첼로 TV Cello’가 지난달 24일 열린 서울옥션 제31회 홍콩경매에서 한화로 약 2억4000만 원에 낙찰된 점을 참고하면, ‘덕수궁’에는 이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 매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작품 노후와 누전 위험 등을 고려해 전원이 차단된 상태로 전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립미술관 측은 부정기적으로 전원을 켜기 때문에 관람객 중 ‘불이 켜진 작품’을 감상하는 이는 극소수에 그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주 재료인 브라운관 수명은 10년 정도고, 브라운관 생산은 2000년대가 지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브라운관이 고장 나면 제대로 작동하는 제품을 중고시장에서 구하기 어렵고, 구하더라도 비용이 매우 비싼 경우가 많다. 게다가 수리할 수 있는 기술자도 세계적으로 소수고 부품을 구하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미술관 학예사 사이에 백남준의 작품은 ‘까다로운 작품’으로 통한다. 작품은 가치를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지만, 유지·보수가 어려워서다.
온전한 형태의 덕수궁을 감상하고 싶다는 관람객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자 시립미술관 측은 특정한 날을 정해 ‘덕수궁’을 상영하고, 브라운관을 유지·보수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정종효 학예연구실장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다익선’ 브라운관을 LED로 교체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의가 있었지만 원형 보전을 하기로 했다. 브라운관에서 나오는 영상의 형상이나 색감이 LED에서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반면 ‘원형 보전’을 이유로 적지않은 예산을 들여 사들인 미술품을 한시적으로만 가동하고, 보수가 필요한 경우 원형 보전을 고집하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남아 있다. 생전에 작가도 브라운관 수명이 짧다는 점을 알고, 작품의 핵심은 영상이미지이고 브라운관이 단종될 경우 영상이미지만 온전하게 내보낼 수 있다면 신기술을 적용해도 좋다는 의견을 주변에 밝혔다.
한편, 백남준의 작품을 소장한 다른 국내 미술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18.5m 높이의 영상탑 ‘다다익선’은 고장 등을 이유로 지난해 2월부터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한때 LED 패널로 교체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작품을 망친다는 이유로 미술관 측에서 원형을 유지하기로 했다. 2022년 전시 재개를 목표로 수리하는 데만 3년이 걸릴 예정이다. 경남 창원시 성산아트홀에 있는 ‘창원의 봄’(1999년 주문 제작)은 노후화로 인해 93개 모니터 중 몇 개 브라운관이 고장났다. 창원문화재단은 원형 보전하면서 수리하는 한편, 매주 수요일 오후 2~7시에만 가동키로 했다.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