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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

첫 장편 영화로 트로피만 35개, 김보라의 날갯짓 이제 시작이다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19-12-17 18:44:16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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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한국사회 배경으로 한
- 사춘기 소녀 은희의 성장기
- 성수대교 붕괴, 그 상실과 애도
- 14만 관객에 위로와 공감 건네

- “아픔 견디며 단단해지는 주인공
- 이를 알아봐 준 관객에 감사해
- 앞으로 다양한 장르 만들고파”

‘한국 영화 100년’을 맞은 올해 영화계는 유독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눈에 띄는 한 해였다. ‘말모이’의 엄유나 감독을 시작으로 ‘보희와 녹양’의 안주영 감독,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 ‘벌새’의 김보라 감독, ‘메기’의 이옥섭 감독, ‘아워 바디’의 한가람 감독,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 등은 여성이 중심이 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충무로에서 여성 감독의 힘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들 중 첫 장편영화를 선보인 ‘벌새’의 김 감독은 ‘국제영화제 35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세계 영화계를 매료시켰다.

■세계 영화제를 사로잡은 여성감독

첫 장편영화 ‘벌새’로 국제영화제 35관왕에 오르며 세계 영화계를 사로잡은 김보라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벌새’의 국제영화제 수상 기록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과 관객상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올해 초부터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14 플러스 부문 그랑프리상을 비롯해 이스탄불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 시애틀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대상, 노르웨이 베르겐국제영화제 등 최근까지 국제영화제에서 무려 35개의 트로피를 안으며 세계 여행을 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영화감독조합의 감독들이 직접 투표하는 2019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올해의 비전상과 올해의 신인감독상을,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에서는 감독상을 받아 그 의미를 더했다.

최근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명상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인도 여행을 다녀온 김 감독은 “세계 영화제에 참석해 상을 받을 때 ‘벌새’라는 영화를 진정으로 응원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정말 고마웠다. 특히 국내에서 받은 상에 대해서는 “디렉터스컷 어워즈는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연출했는지를 더 잘 아는 감독님들이 주시는 상이어서, 또 여성영화인상은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녹록지 않은데 그런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분들이 지지한다는 의미로 주셔서 더 감사하다”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14세 소녀 은희와 ‘1994년’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14세 소녀 은희가 주인공인 ‘벌새’는 은희의 작지만 간절한 몸짓을 1초에 90번의 날갯짓을 하는 벌새에 빗댔다. 은희는 심하게 싸우다가도 금세 사이좋게 지내는 부모를 둔 떡집 둘째 딸(실제 김 감독의 아버지도 유명 떡집을 운영했다)로, 한문 학원 선생인 영지를 만나면서 삶에 활력을 얻는다. 하지만 의지했던 영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픔을 견디면서 은희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성장해간다.

소위 중2병이 생기는 시기인 14세 은희를 주인공을 한 이유를 물으니 “‘벌새’의 은희 모습이 자전적이기도 하다”며 “유년 시절 은희처럼 인생이나 삶, 사랑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시기에 정말 아팠는데, 그 시기를 중2병으로 가볍게 취급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그 시기를 지나고 있을 중학생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길 바랐다.

영화의 배경은 1994년이다. ‘1994년’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드라마 ‘응답하라 1994’였다가,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하니 성수대교 붕괴 사고, 김일성 사망 등이었다. 영화에서는 영지 선생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개인적으로도 마음의 짐이었고, 큰 진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사고의 피해자와 가족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에게 공동의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994년 10월 21일’이라는 날짜를 영화 안에 넣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그 날짜를 기억하고 싶었고, 제가 생각하는 방식의 애도였다.” 자칫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영화에 등장한다고 하면 연출 의도와 달리 선정적이거나 화제성을 이용하기 위해 대상화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을 터다. 김 감독은 “그런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최선의 존중을 하고 묘사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1981년생인 김 감독에게 1994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트라우마가 ‘벌새’로 조금이나마 씻겼으면 한다.

■고마운 ‘은희’ 역, 박지후

‘벌새’ 포스터.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와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영화과를 졸업한 김 감독은 2011년 리코더 시험을 잘 봐 가족에게 칭찬받고 싶은 9세 은희를 다룬 ‘리코더 시험’으로 주목받았다. 그 스토리의 연장 선상에서 ‘벌새’를 기획했다. 제작비 3억 원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캐치 대상 메가박스 상, 영화진흥위원회, 서울영상위원회, 성남문화재단 독립영화 제작 지원을 받았으며, 미국 IFP 내러티브 랩에 선정됐고, 선댄스영화제 후반 작업지원을 받아 완성했다. “독립영화는 제작 지원을 받는 것이 소중하다. 물론 제가 모은 돈도 들어갔다.”

촬영하면서는 은희 역을 맡은 박지후 양에게 정말 고마웠다. 2017년 촬영 당시 중1이었던 박 양은 연기를 너무도 하고 싶어 하는 소녀였다. “독립영화 촬영 현장은 열악해서 많이 힘들다. 거의 전 장면에 출연했던 지후에게 너무 고마웠다. 얼마 전에도 만나서 ‘지후야 고생했어’라고 말했더니 ‘저 고생 안 했는데요’라며 웃더라. 촬영을 마칠 때 스태프들이 꽃다발도 주고, 지후는 아쉬워서 울고 그랬다.” ‘벌새’에서 보여준 놀라운 연기로 트라이베카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던 박 양은 ‘벌새’를 정말 사랑하고, 이제는 소속사도 생겨 배우로서 더 성장할 기반을 마련했다.

■‘벌새’와 소통한 기적 같은 관객들

지난 8월 말 국내 개봉한 ‘벌새’는 지난 16일까지 14만 3000명의 관객을 모았고, 지금도 관객과 만나고 있다. 독립영화에서 10만을 넘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창작자로서 어떤 의도로 읽히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만들었는데, 관객분들이 그 의도를 읽어주고 받아들여 주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5만 관객만 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새’에 대한 팬덤이 생겨서 10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 가진 관객과의 대화 때 이벤트도 해주셨다. 정말 감사해서 저도 울고, 배우도 울었다”며 관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또 ‘벌새’가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준 영화 배급사 엣나인필름에 대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제 그는 서서히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작가들이 쓴 시나리오를 몇 편 보내주셨는데 이제 읽으려고 한다. 그리고 제가 작업하는 시나리오도 있어서 준비하려고 한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하고 싶고, 여성의 눈으로 역사를 본 대서사시를 하고 싶기도 하다.” 사람의 감정을 소중하게 다루고, 작은 움직임에서도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는 김 감독의 시선이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지 기다려진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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