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드넓어도
벼루 속을 오갈 뿐
가진 재주라고는
이 몸 갈아 진 내는 일
붓촉이 목축일 동안
땀 식히며 보고 있다
먹에 대한 묘사를 의인법을 사용해 자신을 많이 낮춘 자세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먹이 제 몸을 갈아 먹물이 된다는 설정으로도 그냥 시가 되는 작품이지만, 몸을 갈아 진을 낸다는 구절이 진한 감동을 울립니다. 제아무리 똑똑하고 권력이 막강한 사람이라도 알고 보면 너와 나 다 똑같은 먹 같은 존재, 인생사가 시간의 물에 차츰차츰 떠내려가는 모래알과 무엇이 다를까요? 소외된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 서민의 우직한 삶의 음화로도 읽히는 수작입니다. 변현상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