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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응급 편의점 /이알찬

아빠 ·할머니에게 이제 난 필요 없어, 엄마와의 추억이 안경 너머로 보여요

아빠가 다른 여자 만나서 엄마 잊으려나봐, 마음은 하나인데 어떻게 두 사람을 간직해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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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12-31 19:37:2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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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복도에서 아빠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연우야, 늬 아비 또 술 마셨나 보다, 어휴.”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방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와 책상 사이로 기어갔다. 마치 레고의 한 조각처럼 그곳에 정확히 내 몸을 끼워 넣었다.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으니 어쩔 수 없이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있으면 엄마가 들어와서 내게 물었는데.

“우리 연우 무슨 걱정거리 있어?”

그러면 나는 엄청 슬픈 척하면서 한 번쯤 입을 다물고 비싸게 굴었다. 그러면 엄마는 아예 철퍼덕 방바닥에 주저앉아 내 얘기를 오랫동안 들어줬다.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아빠는 마치 엊그제 장례식을 치른 사람처럼 군다.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자주 마셔서 할머니 속을 썩인다.

내가 제일 곤란할 때가 있는데 그건 아빠가 내 눈을 바라보다가 눈물을 뚝 흘릴 때이다. 차라리 엉엉 울지. 아빠는 목소리를 잃은 새처럼 아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린다. 할머니는 해가 거듭될수록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아가서 그럴 거라고 했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면 엄마를 더 닮아갈까 봐 나는 그것도 걱정이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할머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안 들어도 내용은 뻔하다. 술 좀 작작 마셔라, 연우 봐서라도 정신을 차려라, 이제 연우 엄마는 잊고 전에 말한 그 여자를 한번 만나 봐라, 딸은 돌봐줄 엄마가 있어야 한다, 뭐 이런 얘기일 거다. 아빠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을 테지. 할머니는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하다가 한바탕 서럽게 울 거다.

거실에서 할머니 잔소리가 금방 잦아들었다. 이건 전에 없던 상황이다. 나는 방문으로 기어가 바짝 귀를 기울였다.

“잉? 연우 아범 그거 참말이제?”

“네. 그 여자분이랑 얘기하다 보니 늦었어요. 어머니, 오늘은 주무시고 가세요.”

나는 방문을 벌컥 열고 거실로 나갔다.

“아빠! 무슨 소리야? 아빠가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

할머니가 내 팔을 잡으며 말렸다.

“느그 아비 취했다. 연우야 내일 할미랑 다시 얘기하자.”

할머니도 미웠다. 자꾸 다른 여자를 만나 보라고 했을 때에는 이 정도로 밉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무리 그래봤자 아빠가 절대로 그럴 리 없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할머니가 아주아주 미워졌다.

“아빠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난 엄마 같은 거 필요 없는데 아빠는 아닌 거야?”

“연우야, 느그 아비도 아내가 필요한 겨.”

드디어 할머니가 속마음을 내비쳤다.

“아하, 결국 아빠를 위한 거였구나. 언제는 내 걱정해서라더니! 할머니도 아빠도 다 필요 없어!”

눈물이 왈칵 쏟아질까 봐 눈에 힘을 주고 아빠를 노려보았다. 아빠의 변명을 들으면 더 화가 날 것 같아서 그대로 집을 뛰쳐나와 버렸다. 집안에서 따라 나오려는 할머니와 말리는 아빠 목소리가 뒤엉켜 현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래. 나는 더 이상 이 집 가족이 아니야.’

나는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와 무작정 큰길 쪽으로 달렸다. 구급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내 옆을 지나쳐갔다. 급하게 회전하는 빨간 불빛이 내 가슴속을 후벼 팠다. 구급차가 금세 전철역 근처 종합병원 쪽으로 사라졌다.

‘저기에 누가 탔을까? 저 사람도 죽는 걸까…?’

저 사람은 응급처치를 받고 금방 깨어났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에는 잠시 악몽을 꿨다며 대수롭지 않게 병원을 나서겠지.

나도 지금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2년 동안 꾸는 긴 꿈.

“연우야, 이러다가 정말 지각이야. 어서 일어나.”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엄마가 확 걷어주면 나도 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을 텐데.

엄마를 떠올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병원 근처 상가였다. 나도 모르게 구급차를 따라 걸어온 모양이었다. 짠맛이 났다. 콧물이 눈물과 범벅이 되어 윗입술 끝에 걸려 있었다. 흡! 코를 들이켜 봤지만 코가 막혀서 소용없었다.

마침 상가 건물 위에 ‘화장실’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흰색 사람 모양의 기호가 그 옆에 그려져 있었는데 네모난 검정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대충 닦으며 복도로 걸어갔다. 빵집과 화장품 가게, 카페가 늘어서 있었고 모두 노란 조명이 켜져 있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주인도 손님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가게 출입문마다 ‘영업 종료’라고 써진 팻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복도 끝까지 걸어가 보았지만 화장실은 없었다. 분명 이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상했다. 뒤돌아 나오는데 빵집 맞은편에 편의점이 하나 보였다.

‘아까 들어갈 때는 못 본 것 같은데.’

익숙한 브랜드의 편의점이 아니었다. 간판에는 아주 작은 크기로 ‘응급 편의점’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건물이 병원 응급실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아르바이트하는 분께 휴지를 조금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 벽에만 있는 상품 진열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로로 딱 한 줄뿐인 진열대 위에는 빵도 과자도 라면도 아닌 투박한 사각형 안경들이 올려져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응급처치를 합시다.”

갑자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나는 계산대 쪽을 휙 돌아보았다. 흰 가운을 입은 여자 한 분이 내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짧은 커트 머리에 얼굴에 화장기가 전혀 없었는데 오로지 입술만 붉은색이었다. 그분은 흰 가운의 앞 단추 사이에 커다란 사각형 안경을 걸치고 있었다.

“네? 응급처치요?”

“그래요. 지금 화장실 표시 보고 온 것 아닌가요?”

“아, 네 맞아요. 하지만 화장실을 못 찾았어요. 저는 소변이 급한 건 아니고….”

내가 화장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그 여자분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떨한 채로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급한 건 빨리 해결해야죠. 자, 코부터 빨리 킁!”

나도 모르게 시키는 대로 조심스레 코를 풀었다. 낯선 상황 때문에 머릿속은 복잡한데 그 여자분의 안경에 자꾸만 눈길이 머물렀다.

“자, 골든타임이라고 들어봤죠? 시간이 많지 않아요. 어서 어서!”

골든타임이라면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 인공호흡 등의 조치를 해서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알고 있었다.

여자분이 진열장을 가리켰다. 안경은 대충 헤아려도 오십 개가 넘어 보였다. 그 안경들은 모두 검고 두꺼운 안경테로 만들어졌는데 커다란 사각형 렌즈는 제각각 다른 무늬와 빛깔을 띠며 반짝이고 있었다.

“안경 렌즈를 들여다보면 손님을 위한 장소가 보일 거예요. 빨리 고르세요.”

나는 진열된 안경들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학교 교실, 놀이동산, 수영장, 승마장, 바닷가, 산 정상 등 다양한 장소가 핸드폰에 검색된 이미지처럼 또렷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이건 엄마랑 갔던 곳이에요!”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엄마와 내가 두 달 동안 함께 지냈던 지리산의 작은 시골집!

엄마가 첫 번째 항암 치료를 받고 얼마지 않아 나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지리산에 있는 작은 시골집을 빌렸고 나는 그곳에서 방학 내내 엄마와 지냈다. 아빠는 회사 때문에 할 수 없이 서울 집에 혼자 지내야 했는데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휴가를 얻어 우리를 보러 오곤 했다. 그런 날에는 아빠와 내가 서로 엄마 옆을 차지하려고 난리가 한판 벌어졌다.

“우리 아빠는 정말 엄마를 많이 사랑했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자분이 그 안경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자, 이제 치료를 시작합니다.”

내가 건네받은 안경을 쓰자 겉보기와 달리 내 얼굴 윤곽에 딱 들어맞았다. 곁눈질을 해도 안경 밖의 사물들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경에서 나는 ‘삐리릭’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시골집 전경이 펼쳐졌다. 단 몇 초 만에 나를 그 시골집 앞마당에 데려다 놓은 듯했다.

“이, 이건 가상현실 그런 거죠?”

내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아무려면 어떠랴 싶었다. 발을 한 발짝 내디뎠다. 마당에 깔린 잔디를 밟는 느낌이 생생했다. 나는 단숨에 마당을 가로질러 부엌을 향해 뛰었다.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는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그림=서상균 기자
“연우야! 이것 봐. 벌레가 배춧잎을 다 갉아먹었어.”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엄마 목소리라는 사실을 몇 초 후에 깨달았다.

“엄마! 엄마?”

내가 엄마를 부르자 텃밭 쪽에서 엄마가, 우리 엄마가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배춧잎과 상추를 잔뜩 담은 소쿠리를 안고서.

나는 엄마 품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엄마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어렴풋이 잊어가던 엄마 살결의 감촉까지 단번에 되살아나게 해주었다. 엄마가 내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

나는 만약에, 만약에 엄마를 다시 만나면 미처 못 했던 말들을 래퍼처럼 쏟아낼 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벌어지니 말문이 막혔다. 엄마는 마치 내 생각을 다 안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내 등을 계속 토닥였다.

“그래, 엄마가 다 알아. 그래. 그래.”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이제는 엄마를 잊으려나 봐.”

내 말에 엄마가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빙긋 웃었다.

“아닐 거야. 우리 연우도 이 다음에 남자 친구 생겨도 엄마 잊지 않을 거잖아.”

“당연하지. 내가 어떻게 엄마를 잊어? 엄마,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나는 엄마 품을 파고들며 힘주어 말했다.

엄마가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더 꽉 안아주었다.

“그래. 아빠도 엄마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다른 삶을 준비하는 걸 거야.”

“마음은 하나인데 어떻게 두 사람을 간직해?”

“연우야, 마음은 그렇게 좁지 않아. 우리 연우 마음속에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다 들어가 있잖아.”

“그거랑 그거랑 같아? 피이.”

엄마가 활짝 핀 국화처럼 웃었다.

나는 엄마가 정말 섭섭하지 않은지 알고 싶었다. 엄마 눈을 들여다보았다. 엄마 눈은 맑게 반짝이고 있었다. 더 이상 투병 생활할 때의 지친 눈빛이 아니었다.

“엄마,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보여.”

“그래. 우리 연우도 생각보다 잘 지내서 엄마 기뻐.”

“아빠는 안 그래. 만날 술만 마셔.”

“응. 엄마도 알아. 하지만 곧 예전처럼 다시 돌아갈 거야.”

나는 엄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밥상을 차려주었다. 나는 예전에는 반도 안 먹었던 된장찌개를 한 그릇 뚝딱 비우고 풋고추도 된장에 푹 찍어 뚝뚝 끊어 먹었다. 엄마가 하는 대로 다 따라 했다. 그렇게 하면 지금의 엄마 모습이 내 몸속 깊이 꼭꼭 간직될까 싶어서였다.

엄마가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며 나를 다시 안았다.

“연우야, 아빠도 할머니도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게 싫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나에게 엄마는 오직 엄마뿐이야. 엄마, 사랑해.”

고개를 들어 두 손을 뻗었다. 엄마 얼굴을 만졌다. 피부가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눈앞에서 엄마의 윤곽이 점점 흐릿해졌다. 지리산 시골집도 서서히 사라졌다. 모두 사라지고 엄마의 냄새만 내 코끝에 머물렀다.

내 얼굴에 딱 맞았던 안경이 ‘삐릭’ 소리와 함께 헐거워졌다. 안경 틈 사이로 가운을 입은 여자분이 보였다. 다시 편의점이었다.

가상현실이라도 괜찮았다. 엄마를 이렇게 만날 수만 있다면 나는 뭐든지 하고 싶었다.

“저, 이거 살 수 있어요?”

“아뇨. 응급처치는 매번 받는 게 아니에요.”

여자분이 내게서 안경을 받아 진열장 위에 올려놓았다.

“선생님은 누구세요? 과학자세요? 의사세요?”

내 질문에 그 여자분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아까 그 가상현실과 지금 제 현실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과학의 발달은 마법 같은 일들을 불러오죠. 그렇다고 마법 속으로만 도망치지는 말아요. 건강하게 현실을 이겨나가시길 바랍니다. 연우 학생.”

내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여자분은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계산대 앞으로 돌아갔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인사를 드린 뒤 문밖으로 나왔다.

나는 엄마의 눈빛과 살 냄새를 계속 떠올리며 복도를 걸어 나왔다. 나중에 다시 찾아오려고 화장실 표시가 있던 자리를 올려다보았다. 흰색 화장실 표시는 사라지고 없었다. 복도를 밝혀주던 상점의 노란 조명들이 숨기라도 하려는 듯 한꺼번에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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