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의 첨병이 된 비엔날레
- 도시 마케팅 기수로 인식
-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이나
- 독자성 없인 사람들은 외면
- 상시 문화기관 전면 배치해
- 지속적 관리·시스템 개발을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상설전시되고 있다. 다다익선이라는 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인데, 대한민국은 이 용어를 비엔날레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한 미술 잡지에서 우리나라 미술계를 서술하며 시작한 문장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한국 미술에 대해 어느 정도 호의를 보여왔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를 살핀 후 위와 같은 평가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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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비엔날레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국제신문DB |
당시는 비엔날레가 세계인에게 도시를 문화적으로 각인시켜 도시 이미지 개선과 관광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서구를 중심으로 개최되던 비엔날레가 아시아 등으로 번져나갔다. 그 기운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 필두로 부산·서울·대구·인천·경기·청주 등 많은 지자체가 비엔날레를 개최하기 시작했고, 15년이 지난 오늘날은 그때보다도 훨씬 많은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일본 후쿠오카·아이치, 대만 타이페이, 중국 난징·상하이, 싱가폴 등지에서 개최되는 수많은 비엔날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화의 첨병이자 도시 마케팅의 기수로 인식되는 비엔날레가 미술계의 중요 전시제도로 작동하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부터다. 프랑스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헤랄드 제만 등 몇몇 큐레이터들이 등장해 기존 미술관의 전시 방식과는 다른 전시방식을 통해 이념·인종·소수자·이주·자본집중·환경과 같은 동시대의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이후 ‘비엔날레식’ 전시는 동시대 미술의 경향과 맞물리며 미술계의 담론을 주도하며 미술관 전시마저 변화하게 만들었다. 전시를 보러 도시 밖에서 수많은 사람이 유입되는 부대효과도 나타났다. 이탈리아 베니스처럼 이미 관광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경우는 물론, 인구 30만 명이 채 안되는 독일 카셀이나 뮌스터 같은 도시들은 5년 혹은 10년에 한번 개최되는 도큐멘타나 조각프로젝트에 도시 인구의 배가 넘는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 광주 비엔날레 역시 비서구권 지역이 경험한 식민과 냉전이데올로기, 내전, 군부독재, 그리고 그 속에서 일군 민주화를 개최지인 광주의 도시적 정체성으로 각인시키고 그것을 비엔날레의 지향점과 연동시키는데 성공해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자리잡기도 했다. 성공적인 비엔날레는 개최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 역사적 배경, 문화 정체성을 비엔날레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거나 혹은 카셀이나 뮌스터처럼 독자적 전시방식을 과감하게 선보였다.
이처럼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이 정립되려면 일시적인 행사가 아닌 상시적 문화기관이 주축이 돼야 한다. 도시의 기반시설로 문화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와 시스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어야만 지역성에 기반한 도시 정체성을 통해 글로컬 시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아무리 도시 마케팅을 전면에 배치하고 비엔날레를 열어도 도시의 문화 정체성과 해당 비엔날레의 독자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문화도시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올해는 아시아권 비엔날레의 해다. 부산·광주·서울·대구는 물론 중국 상하이, 대만 타이페이, 태국 방콕 등에서 비엔날레가 개최될 것이다.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이나 각각의 비엔날레의 독자적 특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도시마케팅이라는 문화산업의 현장으로 성급하게 내몰린 현장을 찾는 행렬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부산시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