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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ON <하> 사과받지 못한 그들부터 안자

인권유린 기억은 한평생 아픔… 가해자 사죄만이 응어리 풀 수 있어

  • 국제신문
  •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
  •  |  입력 : 2020-01-07 19:24:4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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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에 고통받은 위안부 피해자
- 日 정부 사과·배상이 먼저지만
- 단 20명 생존에다 모두 80~90대
- 치유받을 시간조차 얼마 안 남아

- 1975~87년 형제복지원 끌려가
- 강제노역·구타 당한 피해자 상당
- 원장은 횡령죄로만 징역 2년 6월

- 트라우마 상담 치료 더딘 데다
- 역사적 사실 기록·진상규명 미진
- 일부의 혐오 발언에 ‘이중 고통’
- 이들 상처부터 보듬는 사회 돼야

#한국과 일본 정부는 2015년 이뤄졌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원점으로 돌리고 이른 시일 내에 재협상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한국 측에 합의 이행을 거듭 요구했지만,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일제 위안부 피해자들 정신적·물질적 피해 배상을 해주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양국 내에서 혐한·반일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교역량이 급격하게 줄어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한 조처로 풀이된다. 올 상반기 안에 재협상을 마치면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의 사과와 실질적인 피해 배상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산판 ‘아우슈비츠’라고도 불리는 부산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 실태를 규명할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이 20대 국회 마지막 임시회에서 극적으로 통과됐다. 지난해 12월 10일 정기국회 종료일에도 여야가 극한으로 대립하면서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인권에는 여야가 없다”며 형제복지원의 진상을 규명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들의 경제적·정신적으로 치유하려면 법안 통과가 꼭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올렸다.


누구보다 사회적인 치유가 절실한 사람들이 바라는 ‘장면’이다. 부산형제복지원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당시 국가 에 의해 고통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받은 고통을 명상으로 다스리고 예술로 승화시키기에는 그 아픔의 크기가 너무도 크다. 사과와 배상이 먼저지만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 이들을 치유하지 못하는 사회를 두고 ‘그래도 따뜻한 세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지난해 10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방문해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치유할 시간도 없다… 부산엔 단 1명

일제 강점기 일본 정부의 관여·묵인하에 일본군은 식민지와 점령지 여성을 대상으로 강간 등 성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대만·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동티모르·미얀마·베트남·라오스·필리핀·캄보디아, 네덜란드 여성들도 강제로 끌려갔다. 전쟁이 끝나고 어렵게 귀국했지만, 일제에 부역했다는 오해와 편견으로 재차 고통을 받았다. 1939~45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일이라 생존 중인 피해자는 치유 받을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3일 기준 여성가족부 등록 현황을 보면 생존 피해자는 모두 20명에 불과하다. 지난해에만 전국에서 5명이 눈을 감았다. 부산에는 1명만 남았다. 생존자 모두 80~90대 고령이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들은 사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만 가해자는 묵묵부답이다. 화해라는 명목으로 어두웠던 과거를 덮어버리려는 지난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화해·치유의 재단’과 같은 시도는 피해자들을 더 괴롭게 했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혐오 발언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를 여는 부산여성단체연합의 변정희 대표는 “집회 때도 ‘위안부 문제는 일본과 합의를 해서 모두 끝난 게 아니냐’는 등의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할머니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사과를 받고 일제의 행위를 기록으로 남겨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을 만큼 피해 상황을 제대로 남겨야 하지만 아직은 피해자들의 증언에만 기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역사연구의 한 방법으로 증언을 채록해 역사로 재구성하는 것을 구술사학이라고 하지만, 수십 년 전의 기억에 대해서 정확한 증언을 바라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증언을 받고 사실 검증을 위해 문헌 자료를 찾아 역사적 사실을 정립하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미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권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를 다루는 입장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부산 남구) 박철규 관장은 “위안부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하지만 위안부와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구분해야 한다는 유족들의 인식이 강하다. 여성가족부에 문헌 자료가 있어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하려 해도 기관 사이에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포괄해 연구조사를 벌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이중 고통’

지난해 9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개의를 기다리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연합뉴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아 단속을 위해 발표한 1975년 내무부훈령 제410호에 근거해 부산에 개설,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고아·장애인뿐 아니라 밤늦게 역에서 TV를 보던 사람, 술 취해 거리에서 자는 회사원도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끌고 갔다. 훈령은 부랑인 단속 주체를 경찰과 시·군·구 공무원으로 규정했고, 실제 단속도 이들에 의해 이뤄졌다.

1987년 작성된 신민당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보고서’에 의하면 1986년 수용자 3975명 중 경찰이 3117명을, 구청이 253명을 수용 의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원생들은 어쩌다 탈출에 성공해도 공권력에 의해 다시 잡혀갔다. 형제복지원 서류로 밝혀진 공식 사망자만 513명. 1987년 35명이 집단 탈출하며 만행이 알려졌지만, 가해자인 원장은 횡령죄로 2년 6월의 징역을 사는 데 그쳤다. 가해자의 가족들은 수백억 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사회복지법인을 운영했다.

피해자 중 상당수는 이 사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책 ‘살아남은 아이’를 출간하면서 참상을 세상에 다시 알린 피해자 한종선 씨는 함께 끌려간 아버지와 누나를 정신병원에 찾을 수 있었다. 피해 신고센터는 지난해에야 겨우 부산 도시철도 2호선 전포역사에 들어섰다. 이곳을 찾은 피해자와 가족들은 165명으로 피해 신고만 했을 뿐 정신상담 등의 서비스는 못 받았다. 이달 말 KTX 부산역사에 피해자 종합지원센터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주하는 전문 상담사도 없고, 이들이 트라우마를 치료할 프로그램 계획조차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지원 사업예산은 지난해와 올해 각각 1억4000만 원, 1억5400만 원에 그쳤다. 이마저도 대부분은 시설 리모델링비와 직원 인건비 등 운영비로 나갔다. 인권유린 실태를 밝혀 가해자를 처벌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과거사법은 여야가 정쟁을 벌이면서 계류된 상황이다.

이들의 상황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과거사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치유 불능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는 동아대학교 남찬섭(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간보고서를 통해 내무부 훈령 제410호의 위헌·위법성을 지적하며, 수용 과정에서도 국가가 법을 위반하고 직접 개입해 경찰이나 공무원 외에도 부랑인 단속과 수용을 지시한 시장· 구청장·국무총리·대통령이 모두 법적인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피해자 대부분 어린 나이에 끌려가서 이유도 모른 채 구타당하고 공부할 기회를 박탈당한 아픔 등을 겪고 있다”며 “하루빨리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물론 부역했던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적절한 배상을 하지 않는다면 치유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


※일본군 위안부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상황을 그림으로 남겼다. 위 그림 3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순덕 할머니,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 아래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 씨 그림. 나눔의집·한종선 제공
강덕경 ‘책임자를 처벌하라’
김순덕 ‘만남’(왼쪽), 김순덕 ‘끌려감’
세 그림 모두 한종선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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