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171㎝ 가로 227㎝짜리 거대한 캔버스에는 파란색 물감을 흠뻑 묻힌 붓질이 꿈틀대고 있었다. 행위미술가 이건용(78) 작가의 ‘신체의풍경 76-1’이다. 이 그림은 작가가 캔버스 앞이 아닌 캔버스 뒤에서 오로지 ‘선’에만 집중하면서 나온 흔적이다. 작가의 개인전 ‘신체의 사유’가 열리는 데이트갤러리(부산 해운대구 중동)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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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용 작가의 ‘신체의풍경 76-1’. 데이트갤러리 제공 |
“화면 앞에서 그림을 만드는 게 아니라 화면 뒤에 가서도 선 긋기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더 본질적인 선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꼬마가 내 방법을 써서 그림을 그려도 비슷하게 나온다. 전문가 비전문가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만들고 싶었다.” 작가는 신체를 통해 그린다는 행위를 통해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가 휘두른 선에는 특유의 힘과 리듬감이 물씬 묻어났다. “선을 긋기 전에 ‘자신의 숨 소리를 들어보라’는 조언을 한다. 숨 쉬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너무 당연해서 무가치하다고 생각해 숨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호흡의 리듬을 따라가면서 선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신체가 허용하는 자연스러운 선을 긋는 게 선 긋기의 실체다.”
그에게 회화는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행위가 평면에 표현된 결과물이다. 작가가 이른바 ‘신체드로잉’을 하게 된 계기는 유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민족기록화가 대세였다. 위인들의 얼굴을 그리고 동상을 만들면 최고라고 인정받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이념과 정치적인 사상을 떠나서 근본적으로 그린다는 행위가 무엇일까, 작가가 그린다는 최초의 행위는 본원적으로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정부에서 예술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서 개입하려 하니까 이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했다.”
작가는 1973년 프랑스 파리비엔날레, 1979년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가한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였다. 전통적인 회화의 방법론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실험을 통해 조형적 해체를 추구했다. 한동안 잊히는 듯 싶었지만,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사상 처음으로 6개월 동안 개인전을 열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지난해 3월 열린 아트바젤 홍콩과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 등에서 작품이 나오기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다. 양팔을 크게 휘둘러 하트 모양을 그린 ‘드로잉의 방법 76-3-2010’은 추정가를 웃도는 약 1억4000만 원에 낙찰됐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