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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혜경의 도시와 미술 <3> 일상 속 걷기의 힘

얼음 9시간 미는 사람, 자본주의 일상 비틀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2-03 19:13:55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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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시스 알리스 ‘실천의 모순’
- 독특한 행위로 예술·일상 결합
- 비생산적 노동 ‘헛짓거리’ 통해
- 생산·효율의 극대화를 꾀하는
- 도시의 삶과 일상에 의문 제기

- 자본주의 쳇바퀴 도는 우리
- 짬을 내 걷는 등 작은 실천으로
- 잃어버린 일상·권리 되돌아보길

한 남자가 걷고 있다.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의 걷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때로 자석 신발을 신고 걷는다거나, 어떤 경우는 강아지처럼 생긴 자석 장난감을 끌고 걷거나, 또 어떤 경우에는 페인트 통에 구멍을 내어 들고 걸어가거나, 때로는 더운 여름날 목적지도 없이 여행가방 만한 얼음덩어리를 밀며 걷는다는 점이다. 걷기가 지속될수록 그의 신발과 장난감 강아지에는 지나온 거리와 도시의 잔해인 쇠붙이 조각들이 달라붙고, 그가 지나간 자리 위로 그린색의 페인트 자국이 남기도 한다. 더운 여름날 얼음 덩어리와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더위로 녹기 시작한 얼음의 얼룩만 남았다 사라지기도 한다. 이 독특한 걷기를 실행한 사람은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이다. 그는 걷기라고 하는 일상의 평범한 행위를 매개로 작업하며 그 걷기의 과정과 결과를 주목하게 한다. 만약 우리가 도시의 한 자락에서 프란시스 알리스처럼 얼음을 밀며 걷는 누군가를 마주한다면 아마도 대다수는 그 상황에 대해 그다지 고심하지 않고 곧 잊거나 아니면 참 허튼짓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이 작업을 수행하였던 멕시코시티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작가는 무더운 여름날 얼음을 밀며 9시간 동안 도시의 곳곳을 걸었고, 그 결과 얼음 덩어리는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조각으로 변했다.
프란시스 알리스의 미디어아트 ‘실천의 모순’의 한 장면.
‘실천의 모순(Paradox of Praxis)’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업에 작가는 ‘때로 무엇인가를 만들려는 행위가 어떠한 결과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Sometimes making something leads to nothing)’는 부제를 붙였다. 이른바 ‘헛짓거리’라고 할 만한 비생산적인 노동을 생산과 효율의 극대화를 꾀하는 도시의 시공간 속에서 진행해 그곳의 삶과 일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작업은 경제적 가치의 창출과 그것을 위한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도시의 일상에 개입해 도시가 작동하는 대원칙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도시의 일상을 비틀고 우리로 하여금 일상과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처럼 미술이 일상적인 행위나 요소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반응하고 관계를 맺고자 하는 태도는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매김했다. 20세기 초반 마르셀 뒤샹이 파운드 오브제 (found object) 개념을 통해 남성용 소변기 ‘샘’을 제작하거나, 피카소가 신문이나 벽지를 이용한 파피에 꼴레나 콜라주를 통해 이미 예술과 일상의 결합에 대한 단초를 제시했지만, 더 본격적으로 예술과 일상의 결합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후인 1970, 80년대였다. 우리의 경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와 시기를 같이하며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단선적 역사관에 대한 의문과 더 이상 민족이나 국가, 이데올로기와 같은 거대 담론으로는 자본이 주도하는 도시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에 관여하는 자본이나 다국적 기업의 힘을 살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도시의 일상과 그 일상성에 주목한 것이다.

도시의 삶과 일상에 예술이 개입한 이후에도 도시와 도시의 일상은 여전히 자본에 의해 통제되며 거대 자본에 의한 생산과 소비의 쳇바퀴를 맴돌고 있다. 그간 기울인 많은 노력에도 자본주의의 완승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도시는 우리가 터 잡고 살아가야할 터전이기에 그곳에 대한 대안적 생활방식을 모색하는 일은 지속돼야 한다.

이젠 일상 속 작은 실천을 도시의 구성원 스스로 행해야 할 때다. 잠시 짬을 내어 도시를 걸어보자. 프란시스 알리스식으로 도시의 생산방식에 대해 안티를 걸거나 예술로 승화된 걷기가 아닐지라도, 운동화 끈을 묶고 가까운 길로 나아가 천천히 걸어보자.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패러다임을 살피고, 나 아닌 다른 것과의 소통을 꿈꾸고 도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잃어버린 권리를 재확인해야 한다. 부산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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