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서 꿈 많은 여고시절 보내
- 창동 예전 같지 않지만 애정 여전
-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 청년의 신세타령 듣고 구상
- 1980년대 ‘조미료 전쟁’ 소재
- 계약직 애환 적나라하게 담아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취업에 관한 것이 가장 예민한 질문이다. 예민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다. 장성한 조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고 걱정돼도 마음 놓고 물어볼 수 없는 어른도 있고,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도 자식들의 안부를 묻기가 조심스럽다. 순수한 마음에서 주고받는 안부조차 자칫 마음을 상하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취업을 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원하던 직업인지,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정직원인지 계약직인지, 마음을 괴롭히는 일은 여전하다. 소설 ‘유니폼’은 취업준비생들이 즐비한 1990년생들에 바치는 장편소설이다. 박영희 소설가도 1990년대생 두 아이를 둔 어머니다. 경남 창원에서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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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예술촌에서 만난 박영희 소설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박영희는 1965년 경북 경주 감포읍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1시간 30분을 걸어가야 하는 학교 가는 길, 길가의 꽃을 꺾으며 놀다가 어느새 집으로 돌아오는 친구들을 마주치는 일이 여러 번이었던 호기심 많은 꼬마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경남 마산으로 이사를 왔다.
“아직도 창원이라는 지명이 낯설어요. 마산이 제 마음속에 가득하죠. 창동 거리를 누비고 다니던 여고 시절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그는 만날 장소를 정할 때도 ‘마산시외버스터미널’이라고 했고, 만나자마자 향한 곳도 창동 예술촌이었다. 창동 거리, 서점, 제과점, 아귀찜 식당, 찻집….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늘어선 골목을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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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폼- 박영희·북인·2019 |
“사람이 너무 많아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할 정도였는데, 예전 같지가 않아요. 그때처럼 번성하지 못해 조금 쓸쓸해도 여전히 저는 이 거리가 좋아요. 여기에 오면 뭔가 있을 것 같았어요. 재미있고 아름다운 거리, 늘 새로운 세계였지요.” 책 읽는 것 좋아하고, 음악다방에서 디제이에게 신청 음악을 보내던 여고 시절과 청춘의 한때를 이 거리에서 보낸 그는 지금도 창동을 사랑한다.
박영희는 창신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2016년 소설집 ‘고래의 맛’을 출간했다. 2018년 경남소설 제1회 작가상을 받았다. ‘유니폼’은 그의 두 번째 소설이며, 첫 장편소설이다.
그는 어느 날 족발집에서 청년 몇 명이 술을 마시는 옆자리에 앉았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 또래의 청년들이라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꼬질꼬질한 운동복을 입은 한 청년이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으며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는 말을 듣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
‘유니폼’은 계약직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담은 소설이다. 박영희 소설가는 자신이 취업했던 시절이나 자녀들이 취업하는 지금의 사회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취업준비생이 즐비한 1990년생들을 안타까워하며 이 소설을 썼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하루하루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힘들게 분투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중략) 그들의 말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었고, 그들의 하소연에 가까운 모든 이야기를 언제까지 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의 이야기 또한 들려주고 싶었다. 이렇게 너와 나 우리가 소통하고 공감하고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어떤 희망과 바람이 이 소설을 짓게 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사람 온기가 우리를 함께 걷게 한다
‘유니폼’은 정식직원과 계약직원의 유니폼이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계약직 여직원 정미정의 이야기다. 늘 푸대접받는 계약직원의 유니폼을 벗고 정식직원 유니폼을 입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견뎌야 하는 정미정의 눈물겨운 사투가 소설 전편에 펼쳐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두 회사는 천연 조미료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198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 소설의 소재다. 회사에서 원하는 판매량 달성, 상대 회사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목표의 최일선에 서 있는 계약직원의 일상은 눈물겹다. 좋은 진열대를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다가 급기야 몸싸움하는 장면도 있다.
첫 직장이 백화점·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회사였던 필자에게 그 장면은 낯설지가 않았다. 회사를 대신해 파견된 판촉직원들의 기 싸움이 얼마나 살벌했던지 시선을 돌리고 말았던 예전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소설을 한숨에 읽었다.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해낸 것이 궁금해 작가에게 실제로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저도 식품회사에서 잠깐 근무했는데, 그때 몸싸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전쟁이라고 할 정도였던 경쟁의 끝에 내몰렸던 건 본사 직원이 아니라 슈퍼를 돌아다니면서 제품을 관리하던 말단직원, 그것도 정식직원이 되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던 계약직원이었다.
정미정은 회사에 처음 출근한 날, 바로 위의 여주임이 상대 회사 직원과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그뿐이랴. 상사의 눈치를 보며 온갖 수모를 참아내야 한다. 고용불안을 안고 회사생활을 견디는 나날이 얼마나 힘들까. 정미정의 삶은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런 날을 살아내고 있을지 가슴이 시리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정미정은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다. 정미정은 동고동락해온 계약직원 동료들과 축제행렬을 따라 걷는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내 옆으로 다가온 걸음이 느린 이들과 함께 걸으니 지쳐 있던 기분이 점점 괜찮아진다. 그들에게서 전해져오는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내 곁의 사람들과 이렇게 함께 걸으면 된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함께하는 온기 하나만으로도 길 위에 선 나는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힘이 된다. 걸음이 좀 느리면 어떤가. 천천히,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걸어가는 길에서 옆 사람 손을 잡고 말해주고 싶다. “미정아, 수고했어. 힘내. 우리 함께 걸어가자.”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