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천동 ‘반딧불이’서 창작 활동
- 인생담 풀어내고 그림 직접 그려
- 김자미 동화작가가 기획 등 맡아
- 피난살이·쪽방·그리운 형제 등
- 해방기 부산 모습도 담아 소통
일하느라, 자식 키우느라 한글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았고, 그림이라고는 그려 본 적 없던 할머니들. 부산 감천문화마을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 여섯 분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그림책으로 나왔다. 강길순 할머니의 ‘남한테는 백 점 나한테는 빵 점’, 곽은희 할머니의 ‘나도 꿈이 있었어’, 김정식 할머니의 ‘금쪽같은 내 새끼’, 신면용 할머니의 ‘그리운 내 형제’, 임명옥 할머니의 ‘복덩이 며느리’, 황계순 할머니의 ‘청춘을 다 바쳐’(도서출판 해성) 등 6권이다. 70~80대인 할머니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일주일에 두 번 사하구 감천동 예술인 창작공간 ‘반딧불이 3호점’에 모여 이야기를 풀어놓고 그림을 그렸다. 부산문화재단이 지원하고 김자미 동화작가가 기획과 구술작업 등을 맡았다. 할머니들이 살아온 인생담을 직접 구술하면 이를 작가가 채집해 구어체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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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감천문화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펴냈다. 왼쪽부터 곽은희, 강길순, 신면용, 김정식, 임명옥, 황계순 할머니. 김자미 작가 제공 |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이야기다. 그리고 6·25전쟁과 피난살이, 이루지 못한 꿈과 손 한 번 잡히고 해야 했던 결혼, 노름꾼에 고주망태인 남편, 까다로운 시어머니와 시누이, 스무 번이나 이사를 하면서도 객식구를 달고 살아야 했던 이야기…. 그 시절을 지나온 한국 여성들의 어렵고 지난한 삶이 담겨 있다.
“학교를 못 다녔어, 까막눈이라. 뭘 알아야 들어가서 물건을 팔아도 팔지. 당구장인지 커피숍인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어. 그러다 공장에를 갔어. 공장은 즐겁더라고. 시키면 내 마음만큼 하면 되니까. 누구한테 사라 말 안 해도 되고, 어디 가야 할지 막막하지도 않고.”
“이사를 그렇게 다녀도 우리 식구 오순도순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방이 따로 있나. 방 하나에 일 년 살다 나가면 또 다른 사람이 오고.… 우리 신랑이 남한테는 백 점 나한테는 빵점이라. 객식구가 오면 안 된다는 말을 못 해.”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할머니들이 느끼는 기쁨은 독자에게 위로를 건넨다. 아이처럼 솔직하고 천진한 어투가 갖는 특유의 힘이 있고, 그러면서도 인생의 희로애락을 두루 거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와 웃음이 있다. 그림은 색감이 밝고 유쾌해서 보는 이의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든다.
“우리 영감이 구리무를 사 왔어. 그게 뭐라고 시누이가 질투하더라고. 우리 영감이 소소하게 잘했어! 나한테. 내가 시집와서 집이 날로 번창하니까 좋았겠지. 내가 곱기도 했고.”
“열댓 살 되었나. 태극도 믿는 아버지 따라 충청도 보은에서 부산 감천으로 왔어. 나는 끼가 많았던 모양이야. 파마하고, 뾰족구두를 신고 다녔어. 돈 벌어 집에는 주지도 않고 영화 보고, 옷 사 입고, 꽤 신식이었지.”
김자미 작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는 해방기 개인과 가족의 역사, 우리나라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번 그림책을 시작으로 복지관, 도서관, 어린이집에서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감천문화마을 ‘감내어울터’에서는 오는 28일까지 할머니들의 그림 전시회가 열린다. 잊힐 뻔한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