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여성 대통령 탄생했지만
- 女 국회의원 비율 IPU 118위
- 부울경, 예비후보 女 비율 낮아
- 20대 6.3%… 21대 23.7% 그쳐
- 지역 정치권, 인물 없다지만
- ‘공천=당선’인 곳 여성에 안줘
-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 배출 수
- 부울경 4번 vs 서울·경기 67번
- 자질 아닌 정당의 성편향 확인
올 11월 제4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항마가 될 민주당 후보이다. 미 뉴욕타임스는 유력 남성 후보를 모두 제치고 엘리자베스 워런과 에이미 클로버샤라는 두 여성에게 지지를 선언했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나 피트 부티지지에 밀려 두각을 나타내진 못하고 있지만, 미국 여성 정치인의 달라진 위상을 엿보게 하는 장면임은 분명하다. 얼마 전 그리스에서는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핀란드에서는 34세 여성 총리도 나왔다.
우리나라도 한중일 동양 3국에서는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여성 정치인의 저변이 넓다고 말하긴 아직 이르다. 국제의원연맹(IPU) 193개 회원국 중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 순위는 한국이 20대 기준(17%) 118위다. 스웨덴(46.1%) 노르웨이(41.4%) 네덜란드(36%)에 비하면 반토막이고 미국(19.6%)도 우리보다 높다. 부울경 상황은 더 열악하다.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된 지 72년이 지났지만 부산에서는 여성 국회의원 배출이 지역구는 4번(중복 당선 포함)에 불과하고, 울산과 경남에서는 한 번도 없었다. 21대 총선에서도 ‘여성 정치인의 무덤’이란 오명이 재연될까 아니면 변화의 바람이 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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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부산지역 5개 여성단체가 부산시의회에서 여성의 참여 확대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나서는 여성이 없다?
4·15 총선을 두달 가까이 앞둔 19일 현재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40개 선거구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은 모두 375명이다. 이중에서 여성은 부산 46명 울산 8명 경남 35명 등 총 89명으로, 예비후보의 여성 비율이 23.7%에 그친다. 여성 예비후보 전국 비율이 30% 가까이 되는데 비하면 낮다. 여야가 약속한 여성 국회의원 30%를 실현하려면 이 지역은 여성 후보를 모두 공천해도 부족하다는 얘기다.
“엘리트층에 포진한 여성 인력이 지역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건 맞죠. 민간기업을 조사해도 과장급 이상 고위직 여성 비율이 낮게 나와요. 인력 풀 자체가 좁은 건 사실입니다.”(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차재권 교수)
하지만 앞서 20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부울경 전체 예비후보 204명 가운데 여성은 13명으로 6.3%에 불과했다. 이번 선거에는 개정 선거법에 따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덕분에 정당이 난립하고 성별 구분 없이 예비후보도 어느 때보다 많은 영향이 없진 않다. 그러나 여성 예비후보 비율이 5~6%대에 머물던 예년에 비하면 여성의 정치 참여율은 확실히 높아졌고 당선 가능성에 대한 관심도도 뜨겁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언론인 의료인 대학교수 사회단체인 정당인 등 직업군도 다양하다.
“부울경이라고 왜 사람이 없겠습니까. 남자들이 경쟁자가 될 만한 여자는 공천하지 않으니까 그렇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는 여성에게 절대 안 주잖아요.” (익명 요청한 지역 대학 교수)
■될만한 곳은 여성에게 안줘
부울경에 여성 국회의원이 없는 이유에 대해선 분석이 비슷하다. ‘국회의원급에 노미네이트될 만한 사람이 없다’, ‘여성의 경쟁력을 낮게 보는 보수적인 성향 탓에 정당이 공천을 꺼린다’ 등이다. 결국 여성의 자질, 유권자의 성향, 정당의 문제로 압축된다.
“안 될 거니까 공천 안준다 그건 정당을 쥐고 있는 남성의 논리입니다. 당선이 될 만한 곳에 여성을 공천하면 왜 안되겠습니까. 최근 지역구에서 여성 의원 숫자가 급증하고 있는 서울 경기를 보십시요.”(한국여성정치연구소 김은주 소장)
20대 국회까지 여성 국회의원을 배출한 횟수는 총 295번(중복 당선 포함)이다. 이중 지역구는 97번이다. 서울에서 45번, 경기에서 22번 여성이 당선됐다.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의 69%가 서울과 경기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17개 특별시·도 중에서 울산 경남 인천 대전 충북 제주 세종 등 7곳에서는 여성이 지역구에서 당선된 적이 한번도 없다. 영남 호남 충청 등 전통적인 1당 독점 지역에선 여성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지역에선 공천이 곧 당선입니다. 그러니 여성을 공천할 리 없죠. 반면 서울이나 경기는 여러 정당이 경합하는 곳이라 여성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겁니다. 결국 국회의원의 성편향은 여성의 자질이나 유권자의 성향이 아니라 정당 때문인 거죠.”(김은주 소장)
■21대는 달라질까
지난 2000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법이 개정됐다. 정당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공천할 때 여성을 30% 포함시켜야 한다는 조항이 생겼다. 이른바 여성할당제다. 2005년에는 공직선거법에 비례대표의 50% 이상, 지역구는 3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라는 조항이 추가됐다. 각 정당은 이에 맞춰 당헌당규를 바꿨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의 경우 60% 이상, 지역구는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고 가산점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구 자유한국당도 비례대표는 5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도록 했다. 지역구는 별도 항목이 없으나 정치적 소수자를 배려하게 했다. 실제로 여성할당제 적용 전인 16대 땐 5.9%에 그쳤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7대 땐 13%로 뛰었고 20대엔 17%까지 높아졌다. 강제 할당의 힘이다. 문제는 관련법 규정이 의무가 아니라 권고사항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정당의 당헌당규도 지켜지지 않는다.
부산대 사회학과 김영 교수는 ‘왜 여성 정치인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일본 기업의 사례를 들었다. 이온이라는 유통업체는 원래 일본 내 점유율 3위에 그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소비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여성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작년 신입사원은 58%가 여성이었다. 그 결과 다이에와 세이유라는 1, 2위 기업을 제치고 지금은 일본 유통업계 전체를 접수했다.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고 여성을 단순히 대상화하면서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김영 교수)
“대한민국에서 소금의 역할은 여성이 맡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제는 프레임 자체를 바꿔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다양성을 담아내는 정치권의 변화가 정말 필요합니다.”(차재권 교수)
견고하던 부울경의 정치지형이 20대 때부터 깨졌다. 그 빈틈이 과연 여성 국회의원을 허용할 것인가. 650만 유권자의 선택이 곧 시작된다. 논설위원